인생의 3분의 1은 잠자는 사이 지나간다. 2022년 기준 전 국민 평균 수명은 83세다. 각자 매트리스 위에서 28년 남짓한 시간을 보낸다.

길어진 수명만큼 침대 매트리스가 차지하는 위상도 높아졌다. 한때 침대 매트리스는 딱딱한 바닥을 피하기 위한 완충장치 정도로 여겨졌다. 최근에는 건강한 수면을 끌어내 보다 나은 삶을 결정짓는 한 요소란 인식이 커졌다. 혼수나 육아를 위한 수백만 원대 매트리스가 적지 않게 팔린다. 중형차 값을 호가하는 초고가 매트리스까지 등장하며 시장도 점차 고급화하고 있다.

지난 10일 오후 경부고속도로 안성 IC에서 빠져나와 국도를 잠깐 달리자, 퍼시스사거리가 나타났다. 퍼시스는 국내 사무용 가구 시장 1위 브랜드다. 1998년부터 안성에 자리를 잡았다. 대지 2만 평(약 6만6000㎡)이 넘는 공간을 오로지 퍼시스 그룹 브랜드만 사용한다. 입구에서 공장에 들어가기까지 의자 브랜드 시디즈, 소파 브랜드 알로소 제품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와 차곡차곡 쌓였다.

일룸 안성공장 헤이븐 매트리스 제조 공정. /일룸 제공

이 공장 4층은 침대 매트리스의 요람이다. 안성공장 2층과 4층에서는 퍼시스 그룹 생활가구 브랜드 일룸 이름을 단 침대 매트리스를 직접 만든다.

일룸은 이달 1일 국내 종합 가구 브랜드 가운데 이례적으로 자체 생산한 매트리스 ‘헤이븐’을 선보였다. 그동안 매트리스는 침대 전문 브랜드 전유물이었다. 일룸에 따르면 종합 가구 브랜드가 주문자생산방식(OEM) 대신, 자체 공장에서 기획과 설계, 생산에 이르는 모든 공정을 해내는 경우는 없었다.

4층으로 올라가니 수면제품개발팀 팻말이 보였다. 과거 가구공장 바닥에 가득했던 톱밥이 이 공장에는 없었다. 코를 찌르는 접착제와 도료 냄새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 공장은 건평이 1만2000평에 달한다. 공장 2개 층에서 이날 매트리스 공정을 40여 명이 관리한다. 많은 공장들이 침대에 자동화 시스템을 채택하는 데 반해 일룸은 침대 주요 공정만큼은 여전히 수작업을 고집했다.

충전재를 감싸는 니트 재단 공정, 매트리스 면이 울지 않게 고르게 퀼팅을 넣어주는 누빔 작업이 대표적인 수작업 공정이다. 침대 원단 올이 풀려 충전재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원단 끝단과 옆 단을 묶어 마감하는 과정도 숙련된 기술자들이 직접 손으로 미싱을 박아 완성했다.

김석진 수면제품 개발팀장은 “목재 공장 같은 경우 거의 전 공정을 자동화했지만, 침대는 특성상 고가 제품은 마감을 사람이 직접 해야 품질이 균일하게 나온다”고 했다.

그래픽=손민균

침대 매트리스를 간단하게 보면 촘촘히 배열한 스프링 판 위에 여러 층으로 내장재를 넣고 봉합한 제품이다. 퀸사이즈 침대 매트리스 하나에 스프링이 보통 700여 개 들어간다.

잘 만든 스프링을 사용하면 침대에 누워서 몸을 움직였을 때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좋은 내장재는 스프링이 가진 지지력을 편안하게 전달한다. 피부에 스프링 움직임이 느껴진다면 내장재를 제대로 쓰지 않았거나 내용물이 부실하다는 증거다.

김 팀장은 “일룸 이름을 건 매트리스를 만드는 모든 과정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스프링 설계에 특히 공을 많이 기울였다”며 “일반적인 원통형 스프링 대신 무게에 따라 하중 값을 다르게 받는 프로그레시브 스프링을 구리와 알루미늄으로 도금해 설계했다”고 말했다.

그는 공장 한편 스프링 제조 공정으로 이끌었다. 거대한 강철선 한 덩어리가 눈에 들어왔다. 스프링 제조기는 이 강철선을 압축시키고 회전시키면서 중간 부위가 좁고 상·하단부는 넓은 와인잔 혹은 콜라병 형태 스프링을 만들었다. 이 스프링들은 커버에 하나하나씩 담겨 포켓 스프링으로 탄생했다.

일룸 안성공장 헤이븐 매트리스 포켓스프링 제조 공정. /일룸 제공

여기에 조닝(구획화·zoning) 공정을 마친 우레탄 폼이 얹혔다. 스웨덴 릴헤이건 임상병리연구소에 따르면 하룻밤 동안 성인 1명이 뒤척이는 횟수는 평균 80~100회에 이른다. 수면의 질을 높이려면 얕은 수면(렘수면)과 깊은 수면(비렘수면)이 오가는 와중에도 불편함을 최소화해야 한다.

일룸은 우레탄 폼을 이용자 신체 굴곡과 무게중심을 고려해 각각 탄성과 지지력이 다른 7개 구역으로 나눴다. 머리와 목 부분은 자면서 호흡할 때 생기는 진동을 흡수할 수 있도록 탄성을 줄인다. 어깨 부위는 뒤척임에 대한 저항을 잡아줄 수 있게 탄성을 높여 만든다. 허리와 무릎은 체형을 유지하고 근육 긴장을 줄일 수 있도록 중간 정도 탄성으로 만들었다.

공장 곳곳에 자리한 매트리스 공정을 살피다 보면 매트리스 테스트 연구소와 소재 개발 연구소가 나온다. 이들 연구소에서는 제품 내구성과 안전성에 대한 각종 테스트는 물론 포괄적인 수면 환경 연구를 한다.

김 팀장은 “한국 공인 인증 기준 7배가 넘는 56만 번 수직 반복 압축 테스트와 인체 뒤척임을 묘사한 10만 번 롤링 테스트까지 통과한 매트리스에만 완제품 자격을 부여한다”고 말했다.

일룸 안성공장 매트리스 전문 테스트 설비. /일룸 제공

한국 수면산업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수면 시장은 2011년 4800억 원에서 2020년대 들어 3조 원대로 6배 이상 커진 것으로 추정된다. 수면의 질을 개선하는 제품에도 소비자들은 아낌없이 지갑을 열고 있다. 고급 매트리스 소비가 늘면서 전 세계 매트리스 시장은 2017년 270억달러에서 2020년 326억달러 규모로 커졌다. 한국도 2011년 3000억원대 규모이던 매트리스 시장이 2022년엔 1조8000억원에 달했을 것으로 업계는 추정한다.

헤이븐 매트리스는 일룸이 창립 26년 만에 고급 매트리스 시장에 낸 첫 도전장이다. 핵심 기술을 모두 적용한 헤이븐 매트리스 시그니처 등급은 퀸사이즈 기준 269만원 정도다. 백화점과 대리점, 인터넷 쇼핑몰에 따라 가격이 다른 경쟁 브랜드와 달리 전 유통 채널 가격을 일원화해 소비자 혼란을 줄였다.

이승아 일룸 마케팅팀 매니저는 “유해 물질 테스트를 통과한 제품에만 부여하는 유럽 오코텍스 1등급 인증 소재를 피부가 직접 닿는 최상단 패드에 사용할 만큼 ‘깨끗하고 편안한 잠’을 강조했다”며 “종합 가구 브랜드로 그동안 쌓은 전문 기술과 인력, 설비를 모두 동원해 믿을 수 있는 제품을 만들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