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랑 립스틱이 제일 잘 팔려요. 파운데이션이나 컨실러, 핸드크림도 많이 찾는 제품입니다. 20대 사회초년생부터 60대 어머님들에게까지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것 같아요.”
지난 16일 오후 1시 30분 서울 중구에 위치한 신세계백화점 1층 명품 브랜드 화장품 매장. 30대 직원 김 모씨는 “명품 가방 등을 전시한 명품관에 비해 매장을 찾는 사람들이 2~3배는 많은 편”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매장에서 향수를 구입한 프리랜서 이진영(30)씨는 “고물가 때문에 접심 도시락을 싸서 다닌다. 그렇게 아낀 밥값으로 내가 사고 싶은 걸 살 때 짜릿하다”라고 말했다.
불황에도 ‘스몰 럭셔리’는 인기몰이 중이다. 스몰 럭셔리는 명품이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한 제품을 뜻한다. 몇백만원부터 몇천만원대까지를 아우르는 명품 가방이나 의류 등을 판매하는 브랜드에서 출시한 몇십만원대 향수를 구매하거나 한우, 스시 오마카세보다 저렴한 차(茶) 오마카세를 즐기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스몰 럭셔리 소비 시장은 점점 커지는 추세다. 신세계백화점에 따르면 올해 4월 말 기준 화장품(브랜드 향수 포함)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9% 증가했다. 롯데백화점도 같은 기간 럭셔리 화장품·향수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5% 늘었다. 같은 기간 현대백화점의 브랜드 향수 매출과 화장품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1%씩 증가했다.
명품 브랜드의 가방이나 의류, 신발 등에 비해 같은 브랜드의 향수나 화장품은 낮은 가격대로 인식된다. 직장인 류지영(28)씨는 “지난주 재고가 없어 사지 못했던 향수를 주문하고 갔다. 오늘 제품이 왔다고 연락을 받고 재방문했다”며 “고물가에 오르지 않는 건 내 월급뿐인데 ‘나를 위한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몇백만원짜리 명품 가방은 못 사도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날 매장에서 립스틱을 산 조향숙(53)씨는 “작년 생일 때 딸이 ‘조향숙 여사’라고 립스틱에 각인해서 선물해 줬는데 그 기억이 좋았다. 맨날 ‘유정 엄마’라고만 불리다가 제 이름을 찾은 기분이었다”라며 “매장에서 해주는 서비스인 걸 알고 그때부터 가끔 립스틱을 사고 싶을 때 명품 매장을 찾게 됐다”라고 말했다.
소비자들이 스몰 럭셔리를 찾는 건 명품 뷰티업계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고가의 한우·스시 오마카세 또는 코스 요리보다 저렴한 차·커피 오마카세에도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서울 마포구에서 찻집을 운영 중인 박 모(35)씨는 “4만2000원짜리 차 오마카세를 운영하고 있는데 하루 3번, 한 타임에 최대 8명 정도 받고 있다”라며 “평일보다는 주말에 2배 정도 예약이 많은데, 부모부터 대학생까지 다양하게 차를 즐기러 온다”고 했다. 실제로 이날 오후 1시 타임은 전날 예약이 마감됐다고 한다.
차 오마카세를 즐기기 위해 연차를 쓰고 왔다는 유 모(30)씨는 “시그니엘 호텔 애프터눈 티 세트 패키지를 구매해서 어머니와 함께 다녀온 적도 있다. 2인 기준 16만원이었는데 그곳보다 여긴 4만원 정도라 더 합리적”이라며 “장소가 주는 여유와 좋아하는 사람과의 시간을 산다고 생각하면 돈이 아깝지 않다”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고물가와 경제 불황에도 스몰 럭셔리가 흥행하는 이유로 ‘가심비(가격에 비한 심리적 만족도)’를 꼽는다. 작은 사치로 본인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전미영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모든 세대가 경기 불황에서 ‘짠테크’로 지출을 아끼면서도 본인이 쓸 수 있는 지출 한도 내에서 최적화된 소비 전략을 펼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경제적 압박으로 인한 우울감을 해소하기 위한 마지노선”이라며 “고물가로 지출 압박이 큰 상황에서 스몰 럭셔리로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