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 과일 판매대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4·10′ 총선이 범야권의 압승으로 끝난 가운데 정부가 추진 중인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 개정안과 플랫폼공정경쟁촉진법(플랫폼법) 제정 등 유통 관련 민생법안의 향방에 관심이 쏠린다.

업계에선 규제 완화 기조에 초점을 맞춰온 정부·여당의 입법과제 처리에 난항을 겪게 될 거란 전망이 나온다.

1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대형마트의 주말 의무휴업 규제를 완화하고 새벽 배송을 허용하는 유통법 개정안은 지난 21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한 채 상임위원회에 계류된 상태다.

유통법은 2013년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활성화를 위해 시행됐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오전 12시(자정)~오전 10시’까지 대형마트 영업시간을 제한하도록 하고, 매월 이틀은 의무 휴업일을 지정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동안 많은 지자체가 대형마트 의무휴업을 공휴일로 지정해 왔으나, 지난 1월 민생토론회에서 정부가 생활 규제 개선안으로 대형마트 영업규제 개선 방안을 발표한 후 분위기가 반전됐다. 지난 2일 기준 대구시와 충북 청주, 서울 동대문구와 서초구, 부산시 등 전국 기초 지자체 76곳에 대형마트 의무 휴업일을 평일로 전환하기로 했다.

그러나 유통법으로 인해 대형마트가 온라인으로 주문받은 상품을 비(非) 영업시간에 배송하는 것은 여전히 금지된 상황이다.

정부는 22대 국회가 문을 열면 유통법 개정안을 다시 발의할 예정이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해당 개정안에 부정적이어서 난항이 예상된다.

앞서 국회 소관 상임위인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회의록에 따르면 여당 의원은 “대형마트에 대한 온라인 규제로 쿠팡만 좋아지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야당 의원은 “이 법을 처리하면 이마트 매출은 좀 오를지 모르겠지만, 전통시장이나 재래시장은 다 죽는다”며 맞섰다.

그래픽=이민경

업계에선 온라인 시장이 급성장한 현실에서 오프라인 유통업체에 대한 규제를 고집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란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산업부가 발표한 ‘2023년 연간 유통업체 매출 동향’을 보면 지난해 온라인 유통 시장 규모는 전체 유통 매출 비중의 50.5%를 차지하며, 처음으로 오프라인을 앞질렀다.

오프라인을 기반으로 한 유통업체와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업체의 성패도 뒤바뀌었다. 빠른 배송(로켓배송)을 앞세운 쿠팡은 지난해 영업이익 6174억원을 내며 첫 연간 흑자를 기록했지만, 대형마트 업계 1위 이마트는 영업손실 469억원을 내며 적자로 전환했다. 이마트(139480)는 지난달 창사 이래 처음으로 전 계열사 대상 희망퇴직을 공고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지자체들이 휴일 규제를 풀고 있긴 하나, 온라인 중심으로 시장이 바뀐 만큼 휴일 온라인 영업이 가능한 상황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면서 “야당의 중소상인 보호 의지가 강해 22대 국회에서도 규제 완화가 쉽지 않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연초 논의가 중단된 플랫폼법의 재추진 가능성도 주목된다. 해당 법은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를 지정해 끼워팔기 등 반칙행위를 차단하는 내용을 답은 특별법이다. 그러나 미국 상공회의소가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한 데다, 알리익스프레스·테무 등 중국 이커머스의 공습이 거세지자 정부는 이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다.

이커머스 업체 한 관계자는 “총선 후 플랫폼법 재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규제를 하자니 국내 플랫폼이 어려워지고, 자율 규제로 맡기자니 알리·테무를 규제할 수 없어 정부도 고민이 될 듯”이라고 말했다.

조춘한 경기과학기술대 유통연구소장은 “유통법 개정과 플랫폼법 제정이 지지부진한 이유는 뚜렷한 목적이 없기 때문”이라며 “해당 규제들은 이를 통해 보호할 대상이 명확하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동차, 반도체는 글로벌 스탠다드를 말하면서 유통은 내수시장에만 초점을 두고 정책을 펼치는 것이 문제”라면서 “규제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내수 싸움이 아니라 글로벌에서 경쟁력을 갖는 방향으로 규제하고 지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