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센터 직원들이 빨리 뛰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데이터를 통한 최적화와 자동화로 효율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난 2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컬리 본사에서 만난 허태영 컬리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지난해 물류센터 두 곳을 신설해 비용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고, 선순환 모델을 구축해 영업 손실을 줄였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2015년 온라인 장보기 애플리케이션(앱)을 출범한 컬리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신선식품 새벽배송(샛별배송) 서비스를 선보였다. 밤 11시 전에 주문하면, 다음날 7시에 받아볼 수 있는 서비스다.
국내 장보기 문화를 바꿔 놓을 만큼 혁신적이라는 평을 얻었지만, 이를 위해 단행한 대규모 투자로 인해 컬리는 매년 수천억원의 적자를 감내해야 했다. 2015년 53억원 수준이던 영업손실은 2022년 2334억원까지 불어났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이후 4개월 연속 월간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 기준 흑자를 내며 손익분기점(BEP) 달성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영업손실도 전년 대비 40%가량 줄어든 1436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매출은 2조774억원으로 2%가량 증가했다.
허 부사장은 “2020년부터 물류 부문을 내재화하고, 기술과 데이터를 통한 기반 마련에 집중한 결과 작년부터 이익을 내는 구조가 갖춰졌다”면서 “적용 범위를 확대하면 물량 증가에 따라 이익도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컬리의 수익성이 개선세를 보이자, 기업공개(IPO) 재개 여부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앞서 유가증권시장 상장예비심사까지 통과한 컬리는 지난해 1월 “기업가치를 온전히 평가받을 수 있는 최적의 시점에 상장을 재추진하겠다”며 상장을 무기한 연기한 바 있다. 2021년만 해도 4조원으로 평가된 컬리의 기업가치는 지난해 5월 2조9000억원 수준으로 내려갔다.
이에 허 부사장은 “EBITDA 기준 월간 흑자를 내면서 현금이 쌓이는 구조를 만들었으니, 시장 상황을 보면서 상장 시점을 결정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조선비즈는 허 부사장에게 컬리의 실적 개선 비결과 향후 비전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허 부사장은 LG화학 배터리 연구소, 맥킨지 서울 사무소, 두산(000150) 등을 거쳐 LF(093050) 식자재 유통 자회사 모노링크에서 대표이사를 지낸 후 2020년 컬리에 최고물류책임자(CLO)로 합류했다.
그는 도급(아웃소싱)으로 운영되던 컬러의 물류를 내재화하고 안정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6월부터는 COO로 컬리의 물류와 고객 서비스 2개 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다음은 허 부사장과의 일문일답.
―지난해 영업 손실을 크게 줄였다. 작년 12월부터는 EBITDA 기준 월간 흑자를 내고 있는데, 실적 개선 요인은 무엇인가.
“구조적 효율화와 기술과 데이터 활용 확대 2가지를 꼽을 수 있다. 지난해 송파 물류센터의 운영을 중단하고, 창원과 평택에 물류센터를 새로 열면서 기존 물류센터가 가진 구조적인 한계를 해결했다. 신규 물류센터는 설계부터 컬리의 프로세스를 반영해 구현했는데, 기존 송파 물류센터 대비 15%가량 효율성이 개선됐다.
과거엔 사람의 경험치로 했던 공정을 기술과 데이터로 전환한 결과다. 예컨대 새로운 알고리즘을 도입해 필요한 만큼만 발주하고, 제고 운영이나 인력, 차량 배송 등도 최적의 수준으로 맞춰 주문 처리 비용을 낮추는 식이다.
2022년부터 기반 마련에 집중했고, 지난해 이를 현장에 적용하면서 실질적 효율이 나고 있다. 더불어 지난해 거래액 3000억원을 달성한 뷰티컬리 등 신사업 매출 증가 등도 실적 개선에 영향을 미쳤다.”
―평택과 창원 물류센터의 성과는?
“창원 물류센터를 열면서 샛별배송 권역을 동남권까지 확대했다. 포항과 경주만 보면 일반 택배를 보내던 시절과 비교해 주문 물량이 160%가량 증가했다. 물류센터를 개소하면서 서비스 권역이 확대되고, 주문량이 늘고, 고정비 등 단가가 낮아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 현재 물류센터 가동률은 약 70%으로, 주문 물량이 더 추가되면 최적의 분배가 일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새 물류센터가 필요한 시점은 2~3년 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신규 물류센터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
“’선택적 자동화’를 통해 생산성을 향상하고 있다. 물류 프로세스에서 기계가 도움되는 부분도 있지만, 현재 기술로는 사람이 더 잘하는 부분이 많다.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물류센터도 여전히 사람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근로자가 효율적으로 일하도록 업무 환경을 자동화했다. 예를 들어 외부 온도에 민감한 신선식품의 특성상 포장이 중요한데, 우리가 사용하는 포장법만 100가지가 넘는다.
예전엔 기온에 맞춰 포장법을 일일이 교육을 해야했지만, 지금은 근로자 애플리케이션(앱)인 ‘컬리로(Kurlyro)’에 송장을 찍으면 ‘포장은 어떻게 하고, 냉매는 뭘 넣어라’라는 안내가 떠 별도의 교육을 할 필요가 없다. 또 선반이 사람에게 오는 ‘굿 투 펄슨Good to person)’ 시스템으로 사람이 많이 움직이지 않고도 상자에 물건을 담을 수 있게 됐다.”
―적자를 줄였지만, 매출 성장률이 2%에 그친 건 아쉽다는 평가다.
“이전보다 성장 속도가 둔화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달리는 버스에서 어려운 상황을 개선하기란 쉽지 않다. 일단 버스를 멈추고 의자를 재배치한 후 사람을 태워야 한다. 컬리는 출범 후 계속해서 성장 챌린지를 받다가, 작년부터 효율 챌린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기존 연비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어 물류센터 신설 등 수익성 기반 마련에 집중했다. 기반을 마련한 만큼 다시 시작하면 더 빠르게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영업이익 흑자 시기는 언제로 예상하나.
“월 EBITDA 흑자 달성은 컬리가 영업 활동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는 걸 의미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영업이익을 내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흑자 시점도 중요하지만, ‘건전한 성장을 이루자’는 게 회사의 기조다.
현재 누적 가입 고객 수가 약 1200만 명인데, 이들이 더 많은 구매를 하도록 좋은 경험을 만들 계획이다. 수도권의 경우 과거 신규 고객 유치에 포커스 맞췄다면, 앞으론 고객들이 자주 구매하게 하는 게 목표다. 지난해 새벽배송을 시작한 동남권은 아직 갈 길이 먼 상황이다.”
―실적 개선세에 따라 상장 재추진에 대한 기대도 나오는데.
“상장 시기를 선택을 할 수 있는 입장이 됐다. 현금이 바닥 난 상황이라면 상장밖에 답이 없지만, EBITDA 기준 흑자를 내면서 현금이 쌓이는 구조가 됐다. 문제는 시장 상황이다. 1분기 국내 증시가 저점을 통과했다는 평가 나오지만, 유통시장이 과거보다 좋아진 것이지 아직 투자자들의 여력은 확인되지 않았다. 시장 상황을 보면서 적당한 상장 시점을 결정할 방침이다.”
―퀵커머스에도 진출하는 것으로 안다.
“올 상반기 출범을 목표로 퀵커머스 사업을 준비 중이다. 고객 관점에서 빠른 배송에 대한 요구가 있어 시도하게 됐다. 상온, 냉동, 신선까지 취급할 계획이다.
국내에서 퀵커머스로 성공한 사례가 없다 보니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컬리가 가진 역량을 보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퀵커머스는 음식 배달을 하다 마트로 사업 영역을 확대한 것이지만, 우리 사업은 ‘좋은 품질의 식자재를 빨리 받아보고 싶다’는 고객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배송 시간이 달라지고, 빨라지는 것 뿐이다.
앞서 ‘저녁 딜리버리’ 서비스로 퀵커머스 수요를 확인했다. 지난해 서울 지역에서 점심시간에 라이브 방송을 통해 주문하면 당일 저녁 밀키트 세트를 배달했는데,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 중국 이커머스의 공습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C-커머스는 품질보다 최저가를 지향하기에 우리가 영향받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본다. 컬리 고객들은 대체로 가격이 안 싸도 좋으니 고객 경험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컬리가 가격 측면에서도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만, 규모 면에서 그들을 이길 순 없다. 이에 가격보다 신선도와 품질, 주문 처리 과정, 고격 경험 등을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 물론 C-커머스의 성장을 예의 주시하고는 있다.”
―올해 중점 계획은 무엇인가.
“컬리의 모든 전략은 VOC(Voice of Customer·고객의 소리)에서 출발한다. 제품이 입점되는 단계부터 물류 처리, 배송 과정, 고객 피드백을 반영하고 개선하면서 지금의 컬리가 만들어 졌다. 화장품 전문 몰인 뷰티컬리도 VOC의 요구로 시작해 지난해 거래액 300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패션 상품을 파는 것도 마찬가지다. 반응이 좋으면 뷰티컬리처럼 버티컬 플랫폼으로 확장할 여지가 있다.
물론 이런 방식이 비용 효율적인 사업 방식은 아니다. 그러나 수익을 내겠다고 포기하면 컬리의 정체성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지난해 고객 경험이 손상되지 않는 선에서 비용 개선을 이뤄내면서 희망을 얻었다.
작년에 다이어트를 했다면, 올해는 근육을 키워 체력을 단련하는 걸 목표로 삼았다. 고객이 컬리를 방문해야 할 이유를 더 많이 제공할 방침이다. 신선식품, 고품질이라는 컬리의 코어(핵심)는 유지하돼, 고객들에게 더 많은 재미와 발견의 기쁨을 선사할 계획이다. 상품은 물론 고객 서비스까지 기술적 요소를 동원하고, 그동안 쌓인 데이터를 활용해 개인화 추천의 적중률도 높일 것이다.
더불어 상반기 중 출범할 퀵커머스를 비롯해 입점 셀러(판매자) 대상 풀필먼트 서비스인 풀필먼트 바이 컬리를 확대할 계획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