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제일제당(097950)의 스팸은 국내 가공육 제품 중 부동의 1위 제품이다. 누적 매출은 5조원을 넘겼다. 처음 만들어진 미국에서는 스팸 메일이란 말이 만들어질 정도로 싸구려 식품이란 인식이 강하지만 한국에서는 국민 밥 반찬으로 명절 선물로도 각광을 받는다.

CJ제일제당은 ‘따끈한 밥에 스팸 한 조각’으로 요약되는 마케팅 전략으로 싸구려 캔햄 이미지를 탈피하고 한국인이 좋아하는 밥 도둑 이미지를 구축했다. 그냥 먹기엔 짠 스팸이 흰밥과 함께 먹으면 조화롭다는 점을 강조한 점이 시장에 먹혔다.

서울 한 대형마트에 설 선물 세트가 진열돼 있다./뉴스1

스팸은 통조림햄을 부르는 대명사가 됐다. 다른 브랜드 통조림햄을 스팸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부지기수고, 계란말이나 김밥 같은 메뉴 레시피 이름에 아예 스팸이 붙는 경우도 있다. 김치찌개나 부대찌개에도 활용되니 이제는 의문의 여지가 없는 어엿한 한식 식재료다.

스팸의 지난해 말 기준 국내 누적 판매량은 20억5000만개에 달한다.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스팸 약 40개를 먹은 셈이다. 올해 말까지 누적 판매량은 21억개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군 전투식량이 한국 밥 반찬으로

스팸은 양념 된 햄을 뜻하는 ‘조미 햄(Spiced Ham)’을 줄인 말로, 조지 호멜이 1891년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설립한 정육 업체 ‘호멜 식품’에서 1937년 개발한 제품이다. 인기가 없는 부위인 돼지 목심을 소모하기 위해 개발한 것이 제2차 세계 대전을 통해 군용 식량으로 보급되면서 알려졌다. 전투식량 이미지가 강해 지금도 미국이나 유럽에선 싸구려 식품 취급을 받는다.

스팸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오게 된 것도 1950년 6·25 전쟁 시기와 맞물린다. 미군 부대는 휴대성과 보존성이 높은 스팸을 전투식량으로 삼았는데, 이때 우리 국민들에 미국 병사들이 먹는 식자재로 알음알음 퍼져나갔다.

BBC에 따르면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스팸, 소시지, 베이컨 등은 귀한 음식 재료가 됐고 이것을 매운 국물에 넣고 끓인 게 오늘날 한국 ‘부대찌개’의 기원이 됐다”고 했다. 전후 산업기반이 모두 파괴된 한국에서 스팸은 고급 식자재로 취급된 것이다.

우리 국민에게 본격적으로 스팸이 보급된 건 CJ제일제당(당시 제일제당)이 1987년 개발사인 호멜과 기술제휴를 맺은 뒤 판매·유통을 시작하면서다.

그래픽=정서희

이후 CJ제일제당은 새로운 브랜딩 전략을 펼쳤다. 스팸은 전쟁 보급품 이미지에서 벗어나 서서히 명절 선물의 대표주자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스팸은 출시 첫해인 1987년에만 무려 500t이 팔렸다. 금액으로는 70억원에 달한다.

이후 2002년 ‘따끈한 밥에 스팸 한 조각’이라는 문구를 쓰며 스팸이 간편한 밥반찬이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 성공하면서 판매량이 급격하게 늘었다. 그냥 먹기엔 다소 짤 수 있으나 흰밥과 같이 먹으면 조화가 훌륭해 인기를 끈 것이다.

스팸 매출액은 1987년 70억원에서 1997년 520억원으로 10년 사이 7배 넘게 늘었으며 2017년 3300억원, 2018년 4190억원, 2019년 4200억원, 2020년 4500억원, 2021년 4900억원을 달성했다. 시장점유율은 60%를 넘어서며 독보적인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설·추석에는 스팸 세트… 품질도 美와 차별화

스팸은 매년 명절 선물에 빠지지 않는 제품이기도 하다. 스팸 판매의 상당수는 명절 기간에 이뤄진다. 식품업계에 따르면 스팸 매출액의 60%가 명절 기간 선물세트 판매에서 나온다. 설을 앞두고 대형마트는 물론이고 주택가 중·소형 마트 진열대에서도 스팸 등 선물세트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스팸이 명절선물로 인기를 끄는 것은 활용도가 높고 호불호가 적다는 점이 작용한다. 가정에서 밥 반찬으로 쓸 용도가 많고, 보존이 용이해 재판매 등도 쉽다. 당근마켓 등에서는 명절 이후에 스팸을 판매하는 글들이 잔뜩 올라온다.

CJ제일제당의 ‘프리미엄 마케팅’도 한몫했다. 유명 연예인을 광고 모델로 기용해 인지도를 높이는가 하면, 고급 상자에 포장해 설날·추석 등 명절에 주고받는 고가의 선물로 자리매김했다.

한국 스팸의 고급화는 단순한 마케팅 요소만은 아니다. 제품 생산 과정에서도 해외 스팸 제품과는 차별화된 공정을 쓴다. 일례로 기존 호멜의 스팸은 고기를 4mm 단위로 분쇄한 뒤 설탕, 소금, 기타 조미료 등을 섞어 특유의 맛을 내는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충북 진천에 있는 CJ제일제당 스팸 공장은 훨씬 미세한 3mm 분쇄육을 사용해 식감을 높였다.

또한 다른 스팸 공장에는 없는 1일간의 ‘저온 숙성’ 과정을 거쳐 맛을 끌어 올렸다. 호멜의 원조 스팸은 제조 과정에 전분을 섞지만, 한국 스팸은 ‘저렴한 햄’이라는 인식을 덜어내기 위해 전분을 제외했다. 돈육이 90% 이상으로 맛을 최우선에 뒀다.

한국인의 입맛을 맞춘 특화 제품을 출시해 프리미엄 시장을 선도하는 것도 비결이다. 일례로 기존 스팸에서 염분을 줄인 ‘스팸 라이트’는 2020년 출시된 한국의 오리지널 스팸이다. 길쭉한 형태로 가공돼 김밥 햄으로 이용 가능한 ‘스팸 김밥햄’ 제품도 있다.

최근에는 건강을 중시하는 트렌드에 맞춰 소비층을 넓히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2022년에는 고단백·저칼로리 등 건강을 중시하는 트렌드에 맞춰 세계 최초로 닭가슴살로 만든 스팸을 선보였다. 이 제품의 100g 기준 단백질 함량은 17g으로, 200g 한 캔만으로 하루 영양성분 기준치의 60%를 섭취할 수 있다. 칼로리와 지방 함량도 낮아 비교적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스팸은 차별화된 맛 품질과 소비자 니즈에 맞춘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며 캔햄 카테고리에서 1위를 유지하고 있다”며 “다양한 세대의 취향과 눈높이를 만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