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석 쿠팡Inc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쿠팡

쿠팡이 세계 최대 명품 의류 플랫폼 ‘파페치(Farfetch)’를 인수했다. 19일 쿠팡의 모회사인 미국 쿠팡 Inc는 파페치홀딩스를 인수하고, 5억 달러(약 6500억원) 규모의 자금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쿠팡이 글로벌 기업을 인수한 건 2020년 싱가포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체 훅(hooq)을 인수한 데 이어 두 번째다.

쿠팡은 “쿠팡의 탁월한 운영 시스템과 물류 혁신을 럭셔리 생태계를 이끈 파페치의 선도적인 역할과 결합해 전 세계 고객과 부티크, 브랜드에 최고의 경험을 선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2007년 영국에서 출범한 파페치는 3대 명품인 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을 비롯해 글로벌 명품 브랜드 400여 개가 입점해 있는 명품 플랫폼이다.

미국, 영국 등 전세계 190국에 판매되고 있으며, 지난해 약 3조원(약 23억1668만달러)의 매출을 거뒀다. 또 오프화이트 등을 보유한 패션 의류 기업 뉴가드그룹과 미국 스타디움 굿즈 등을 인수해 운영 중이다.

업계에선 쿠팡이 이마롯쿠(이마트·롯데·쿠팡)의 경쟁 구도에서 백화점까지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쿠팡이 파페치를 인수한 이유는 크게 3가지로 풀이된다.

① 명품 패션 역량 강화... 이제 백화점과 맞선다

먼저 부가가치가 높은 명품, 패션 사업 역량을 확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들의 취향이 강하게 반영되는 패션, 화장품 같은 품목은 종합 몰보다 무신사와 같은 버티컬 커머스(전문몰)에서 구입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이유로 그동안 쿠팡은 해당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이에 버티컬 플랫폼을 인수해 해당 역량을 키우려는 것이란 관측이다. 앞서 쿠팡은 지난 2020년 동남아 OTT 플랫폼 훅을 인수한 후 자체 OTT 쿠팡플레이를 출범해 성공한 바 있다. 유료 멤버십 가입자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쿠팡플레이는 출범 당시만 해도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으나 스포츠, 예능 등 독자 콘텐츠를 선보인 결과 현재는 넷플릭스에 이어 월간활성사용자수(MAU)가 많은 OTT로 성장했다.

김범석 쿠팡Inc 창업자는 “파페치는 명품 분야의 랜드마크 기업으로 온라인 럭셔리가 명품 리테일의 미래임을 보여주는 변혁의 주체”라며 “앞으로 파페치는 안정적이고 신중한 성장을 추구함과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독보적인 브랜드에 대한 고품격 경험을 제공하는데 주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쿠팡이 인수한 명품 패션 플랫폼 파페치.

② K패션으로 해외 진출 기반 마련

글로벌 명품 패션 플랫폼을 통해 해외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려는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쿠팡은 뉴욕증시에 상장했지만, 매출 대부분이 한국에서 나온다. 앞서 일본 시장에 진출했으나 2년 만에 철수했고, 진출 초기 단계인 대만은 시장의 긍정적인 평가가 있긴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먼 상황이다.

이에 아직 온라인 침투율이 낮은 온라인 명품 시장을 공략해 글로벌 성장 기반을 마련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베인앤컴퍼니와 이탈리아 명품협회 알타가마 조사에 따르면, 글로벌 개인 명품 시장은 올해 약 4000억 달러(약 520조원) 수준으로, 온라인 침투율은 2022년 약 20%에서 2030년 30%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파페치에는 명품뿐 아니라 국내 디자이너들도 다수 입점해 있다는 점에서 패션 사업의 확대도 수월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영미(WOOYOUNGMI)와 송지오(SONGZIO), 김해김(KIMHEKIM), 이명신(로우클래식), 스튜디오톰보이(신세계인터) 등 10개 이상의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가 입점해 있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가 발표한 올 1분기 섬유 패션 동향에 따르면 의류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4.4% 증가한 5억1500만 달러(약 6727억원)를 기록하며 2004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의류 수출액이 증가하는 만큼, 파페치를 활용해 해외 시장에서 성장 기반을 마련할 거란 관측이다.

③ 명품도 로켓배송... 쿠팡 물류 역량과 시너지

쿠팡은 이번 인수를 통해 “쿠팡의 물류 역량을 파페치와 결합하겠다”고 밝혔다. 국내에서 전국 30개 지역, 100개 이상의 물류망을 거느린 만큼, 쿠팡이 자랑하는 로켓배송 서비스를 명품 분야에서도 선보일 것으로 보인다.

쿠팡이 지난 7월 출범한 로켓럭셔리. /쿠팡

파페치의 경우 그동안 뉴욕·파리·밀라노 등 브랜드 부티크 인근에선 ‘90분 배송’이나 ‘당일 배송’을 해왔지만, 한국 등 국경을 넘은 일반적인 배송은 최대 5일가량 소요됐다. 하지만 국내 물류망과 결합하면 고객 배송 속도가 크게 단축될 거란 전망이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명품 시장 규모는 168억 달러(약 20조8000억원)로 전년보다 24% 증가했고, 1인당 명품 소비액은 325달러로 미국(280달러), 중국(55달러)보다 월등히 높은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이에 파페치의 방대한 명품 라인업이 국내 소비자 저변을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는 해석이다.

쿠팡은 “회사는 이번 인수로 4000억 달러(약 520조원) 규모의 글로벌 개인 명품 시장에서 리더로 자리매김하게 됐다”며 “1인당 개인 명품 지출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뽑히는 한국의 방대한 명품 시장에 파페치의 엄청난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라고 했다.

업계에선 이번 파페치 인수로 쿠팡이 지난 7월 출범한 럭셔리 뷰티 브랜드인 ‘로켓럭셔리’의 중장기 전략이 강화될 거란 전망이 나온다.

일각에선 이른바 ‘이마롯쿠’의 경쟁 구도에서 백화점까지 쿠팡의 영향력이 확대될 거란 평가도 나온다. 파페치가 판매하는 대부분의 명품이 백화점에서 판매되고 있고, 함께 인수하는 뉴가즈그룹의 브랜드 오프화이트도 백화점 입점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번 인수는 쿠팡이 플랫폼 포지셔닝을 고급화하고, 전문화된 영역을 강화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라며 “소비시장이 양극화되는 만큼 쿠팡도 이번 인수를 계기로 하이엔드(고급) 시장에 대한 전략을 만들어 갈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