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CJ(001040)올리브영에 19억원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당초 최대 5800억원 부과가 가능하다고 예상됐지만, 올리브영의 시장지배적 지위가 인정되지 않아 그 규모가 최소화됐다. 위원회는 CJ올리브영이 경쟁하는 시장이 오프라인 매장 뿐 아니라 이커머스 등 여러 채널을 포괄하고 있다고 봤다.

막대한 과징금을 우려하던 CJ올리브영 입장에선 최선의 결과를 받아든 셈이다. 알짜 계열사로 꼽히는 올리브영이 CJ그룹 승계 작업을 위한 캐시카우 역할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향후 기업공개(IPO) 등 가능성을 앞두고 중대한 고비를 벗어났다는 것이다.

유통업계도 희비가 갈렸다. 경쟁사였던 GS리테일(007070)의 랄라블라나 롯데쇼핑(023530)의 롭스 담당자들이 피해를 직접 진술하고 나섰지만, 사실상 CJ올리브영이 승리했기 때문이다.

협력업체에게 독점 거래나 우대 조건를 요구하는 것은 CJ올리브영뿐만 아니라 많은 유통 채널들의 관행이라 납품업체들 사이에선 이들 갑질이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일 서울 중구 '올리브영 명동 타운' 색조 코너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상품을 살펴보고 있다./뉴스1

◇ “시장지배 아냐” 올리브영 승리… 상장 절차 순항하나

7일 공정거래위원회는 CJ올리브영의 납품업체들에 대한 ▲행사독점 강요 ▲판촉행사 기간 중 인하된 납품가격을 행사 후 정상 납품가격으로 환원해 주지 않은 행위 ▲정보처리비 부당 수취행위에 대해 시정명령 및 과징금 18억9600만원을 부과하고, 법인 고발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다만 위원회는 이와 같은 CJ올리브영의 EB(Exclusive Brand, 독점적 브랜드) 정책이 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적지위 남용행위(시지남용)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심의 절차 종료를 결정했다. EB정책은 경쟁사인 랄라블라, 롭스 등과 거래하지 않는 조건으로 납품업체에게 광고비 인하, 행사 참여 보장 등 경제적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다.

위원회는 “올리브영의 행위가 지속된 약 10년의 기간 동안 화장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선호가 빠르게 변화해 온 점과 이로 인해 여러 형태의 화장품 소매유통 채널이 역동적으로 등장해 성장 및 쇠락하는 현상이 관찰됐다”면서 “특히 근래에는 오프라인 판매채널과 온라인 판매채널 간 경쟁구도가 강화되는 상황인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관련 시장은 H&B 오프라인 스토어보다는 확대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CJ올리브영이 시지남용을 통해 경쟁사를 몰아낸 것이 인정되면 같은 행위라도 위법이 중대해지기 때문에 과징금 규모가 매우 커진다. 이 기간 매출 10조원에 기반해 최대 5800억원 과징금 규모가 예상된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위원회가 상황을 더 지켜보겠다며 사실상의 무혐의 처분을 내리면서 CJ올리브영은 한숨을 돌리게 됐다.

CJ올리브영은 높은 현금창출력을 기반으로 CJ의 알짜 계열사로 꼽힌다. CJ올리브영 지난해 매출은 2조7809억원을 기록했고,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714억원, 순이익은 2056억원을 기록했다.

헬스앤뷰티(H&B) 시장점유율도 올해 1분기 기준 71.3%다. 특히 한한령 해제에 따른 유커(중국 관광객)가 귀환함에 따라 회사는 올해 상반기 별도기준 매출액 1조7966억원, 순이익 1797억원으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회사의 성장세에 시장에서는 CJ올리브영이 내년 상반기 기업공개(IPO)를 재추진할 가능성이 유력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공정위 조사와 제재라는 가장 큰 장애물도 넘기면서 다시 상장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IPO시 2조~4조원에 점쳐지던 기업 밸류(가치)도 최대 5조원까지 거론됐다. CJ올리브영은 작년 7월 IPO를 무기한 연기했다.

◇ 올리브영 승리에 희비갈린 유통업계

사건을 주시 하던 유통업계는 희비가 갈리는 모습이다. 경쟁사였던 GS리테일(007070)의 랄라블라와 롯데쇼핑의 롭스 담당자들이 올리브영의 독점 행위에 대해 직접 진술하는 등 피해 고발에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위원회 결정을 돌리지는 못했다.

다만 많은 유통업체들이 은밀히 EB정책과 비슷한 관행을 가지고 있는 터라 이번 처분에 숨을 돌리는 모습도 보인다. 이번 사건은 유통업체에 시지남용을 적용한 첫 번째 사례였는데, 공정위가 시장 획정에 관대한 모습을 보이면서 향후 이런 전략을 유지하더라도 처벌 강도가 세지 않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반면 화장품 제조사 등 협력사 측에서는 CJ올리브영의 이런 갑질이 다시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올리브영 등에 입점된 한 화장품 브랜드 관계자는 “공정위 조사와 처분 기간 동안 올리브영이 협력사들 눈치를 보면서 조심조심 행동했는데, 약한 처벌을 받았으니 다시 독점 조건을 매우 강하게 요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최근 국내 1위 패션 애플리케이션(앱)인 무신사도 협약서를 통해 협력사에 독점 혜택을 제공하는 등 부당 계약 조건을 강요한 사실이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알려졌다. 이 역시 올리브영의 EB정책과 같이 배타조건부 거래를 요구하는 행위라 대규모유통업법 위반 가능성이 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차별성과 경쟁력을 위해 협력사에 독점 입점이나 유리한 조건을 원하는 것은 어느 채널이나 마찬가지”라면서 “화장품 업체들은 초반에는 무조건 올리브영에 들어가야 하니 이런 조건을 들어주는 것이고 CJ의 집중 투자를 받은 올리브영이 이런 전략을 제일 잘 구사하면서 경쟁에서 승리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공정위는 CJ올리브영의 시장지배적지위 남용행위에 대해서는 이례적으로 심의 절차종료를 결정했다. CJ올리브영이 시장 지배적 사업자인지 현 단계에서 불확실하지만 화장품 소매유통 채널에서의 위치가 강화되고 있고, EB 정책도 계속 확대되고 있어 시장경쟁을 저해하는지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하겠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