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6위 롯데그룹이 올해 정기 임원 인사에서 젊은 인재와 글로벌 전문가를 앞세워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이번 인사는 신동빈 회장이 '2030부산세계박람회' 유치전에 직접 나서는 등 일정을 소화하느라 예정보다 보름가량 늦어졌다.
롯데그룹은 6일 38개 계열사의 이사회를 열고 '2024년 정기 임원 인사'를 확정했다.
이번 인사의 최대 관심은 '인사 폭'이었다. 앞서 경쟁사인 신세계그룹이 계열사 대표이사 40%를 교체하는 물갈이 인사를 단행한 만큼, 롯데 역시 인사 폭이 클 거란 관측이 우세했다. 더불어 신 회장이 최근 2~3년간 영입한 외부 인사들의 성적표가 어떻게 나올 지도 관심사였다.
신 회장은 이번 인사에서 세대교체에 방점을 뒀다. 60대 롯데 계열사 대표이사 8명이 퇴진했고, 이를 포함한 계열사 대표이사 14명이 교체됐다.
롯데그룹 화학군 총괄대표 김교현 부회장이 용퇴하고, 후임으로 롯데지주(004990)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혁신실장인 이훈기 사장이 부임한다. 1967년생인 이훈기 사장은 1990년 그룹 기획조정실로 입사해 2010년 롯데케미칼 기획부문장, 2019년 롯데렌탈 대표이사를 역임했으며, 2020년부터는 롯데지주 ESG경영혁신실장을 맡아 인수합병(M&A), 미래 신사업 발굴을 총괄했다.
이 사장은 전략·기획·신사업 전문가로, 기존 사업의 역량 제고 및 사업 포트폴리오 완성을 통해 화학 계열사의 시장경쟁력을 강화하고 글로벌 사업 다각화를 추진할 인물로 평가받는다.
또 롯데헬스케어 대표이사로 우웅조 상무(승진)를 선임하면서 이원직 롯데바이오로직스 대표, 정현석 에프알엘코리아 대표와 함께 40대 대표이사 3명이 선출됐다.
더불어 고수찬 롯데지주 경영개선실장 부사장, 고정욱 롯데지주 재무혁신실장 부사장, 정준호 롯데백화점 부사장 등 총 3명이 사장으로 승진했다. 사장 직급의 평균 나이는 전년 62세에서 57세로 5살 젊어졌다.
이 과정에서 30년 넘게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과 신동빈 회장의 비서를 맡았던 류제돈 롯데물산 대표(1960년생)와 화학군 총괄대표 김교현 부회장 등이 용퇴했다.
외부 출신 인사 영입으로 체질개선을 시도한 유통군은 김상현 유통군(HQ) 총괄대표 부회장과 정준호 대표, 강성현 롯데마트·롯데슈퍼 대표 등 핵심 사업부 임원의 임기가 모두 유임됐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변화는 크지 않으나 지난해 대비 주요 경영진이 대폭 교체됐다"라며 "혁신을 지속하기 위해 젊은 리더를 전진 배치하고, 외부 전문가 영입을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HQ 체제는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롯데그룹은 2022년 정기 임원 인사에서 기존 비즈니스 유닛(BU·Business Unit) 체제로 운영되던 각 계열사를 6개 사업군(식품·쇼핑·호텔·화학·건설·렌탈)으로 유형화하고, 이 중 주요 사업군인 식품·쇼핑·호텔·화학 사업군에 총괄대표를 선임했다.
그러나 HQ가 비대해지면서 '옥상옥(屋上屋)' 조직이 됐다는 비판이 나온 데다, 지난 7월 이완신 전 호텔군 총괄대표가 일신상의 이유로 사임하고 해당 조직이 재무와 ESG 담당 정도로 축소되면서 HQ 해체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에 롯데지주 관계자는 "유통군만 해도 마트와 슈퍼의 상품 통합을 통해 원가 절감을 실현했고, 통합 마케팅도 성과를 내고 있다"라며 "내부적으로 HQ 체제 하에 사업군별로 시너지를 내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올해 롯데는 재계 순위(작년 말 자산 기준)가 13년 만에 5위에서 6위로 밀려나고, 계열사 신용등급이 하락했다. 그룹 전체 매출의 34%를 차지하는 핵심 계열사인 롯데케미칼(011170)의 실적이 부진하면서 자체 현금창출력이 저하돼 재무 부담이 커진 게 원인이다.
그룹에서 두 번째로 매출 비중이 큰 롯데쇼핑(023530) 역시 소비 침체와 유통업 불황으로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3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감소한 데다 온라인 소비의 확대로 오프라인 시장 점유율이 하락하고 있다.
롯데쇼핑은 지난 9월 최고경영자(CEO) IR 데이에서 '2026년 매출액 17조원, 영업이익 1조원'이라는 목표를 제시했다. 증권가가 추산하는 올해 영업이익 5000억원대에서 2배가량을 2년 만에 늘리겠다는 포부인데, 유통업계 경쟁이 심화하고 있어 뚜렷한 전략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롯데지주 관계자는 "이번 인사의 핵심은 세대교체"라며 "이번에 승진한 신유열 전무의 경우 내년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경영 행보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