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국내 이커머스 기업을 선도하던 11번가가 콜옵션 행사를 포기하면서 향방에 관심이 쏠린다.

2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11번가 최대주주인 SK스퀘어(402340)는 이날 이사회에서 재무적투자자(FI)가 보유한 11번가 지분(18.2%)에 대해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의결했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과 새마을금고, 사모펀드 운용사 H&Q 등으로 구성된 FI 컨소시엄은 SK스퀘어가 보유한 11번가 지분(80.3%)까지 함께 매각할 수 있는 동반매도청구권(드래그얼롱)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11번가의 운명이 FI 손에 맡겨진 셈이다.

11번가 CI. /11번가 제공

앞서 SK스퀘어는 2018년 5년 내 기업공개(IPO)를 조건으로 ▲국민연금 3500억원 ▲사모펀드(PEF) 운용사 H&Q의 블라인드 펀드 1000억원 ▲새마을금고 500억원 등 총 5000억원을 투자받았다.

조건을 이행하지 못할 시 SK스퀘어가 원금에 연이율 3.5%의 이자를 더한 약 5500억원에 FI 지분을 되사오는 콜옵션 조항이 포함됐다. 이를 포기하면 FI가 대주주 SK스퀘어의 지분까지 제3자에 매각할 수 있는 동반매도청구권(드래그얼롱)도 보장했다.

11번가는 지난해 한국투자증권과 골드만삭스, 삼성증권을 상장 주관사를 선정하며 IPO 채비에 나섰지만 유동성 악화 등 영향으로 지체돼 결국 9월 30일까지였던 상장 기한을 넘겼다.

이후 IPO 보다 FI 투자금 회수에 무게를 두고 싱가포르 이커머스 플랫폼 큐텐과 매각 협상을 벌였지만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해 최종 결렬됐다.

SK스퀘어의 콜옵션 기한은 다음 달 4일 만료될 예정이었다. SK스퀘어의 올 6월 말 기준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9126억 원으로 콜옵션을 이행할 수 없는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오랜 기간 부침을 겪고 있는 회사 지분을 수천억원을 들여 매입하는 데 부담을 느꼈던 것으로 전해진다.

매각 주체가 FI로 넘어가면서 11번가의 향방에 관심이 쏠린다. 11번가의 몸값이 얼마가 될지도 관건이다. 11번가는 2018년 투자 유치 당시 2조 75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지만 최근 큐텐과의 협상에서 거론된 기업가치는 3분의 1 수준인 약 1조원에 불과했다.

시장에서는 11번가 투자자들이 드래그얼롱을 행사해 경영권 매각을 추진할 수 있지만 오랜 기간이 소요되고 법적 다툼의 소지가 있을 것으로 본다.

11번가와 비슷하게 기업이 투자 유치를 하면서 IPO를 조건으로 내걸었던 현대두산인프라코어 중국법인(DICC)의 경우 IPO를 하지 않아 투자자가 2015년 매매대금 지급청구 소송을 제기했으나 6년이 지나 대법원이 사측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은 당시 드래그얼롱 행사를 결정했지만, 두산인프라코어 측이 자료 제공 등 협조를 하지 않아 매매대금을 지급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협조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 만으로는 드래그얼롱을 거부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소송 과정에서 두산그룹은 두산인프라코어를 HD현대중공업에 매각했고, 현대두산인프라코어 측이 투자자 지분을 3080억원에 되사기로 했지만 투자금액(3800억원)을 밑돌아 결과적으로 손실을 봤다. 당시 DICC에 투자한 FI들은 당초 지분 확보에 투입한 금액보다 적은 3050억원에 지분을 매각했다.

매각 대상을 찾는 것도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큐텐 외에 아마존과 알리바바도 인수 후보자로 지속해서 거론되지만, 뚜렷한 움직임은 없다.

11번가가 아마존과 협력하고 있지만 직구 서비스 협력에 그치는 등 사업 시너지 효과가 크지 않았고, 알리바바 역시 한국에 직접 물류센터를 지으려는 등 사업 확장세가 빨라 11번가 인수 필요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큐텐이 다시 나설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큐텐은 물류 자회사인 큐익스프레스의 나스닥 상장을 위해 티몬과 위메프 등 국내 이커머스 기업을 잇달아 인수했다. 티몬과 위메프 셀러가 겹쳐 큐텐 입장에서는 11번가 인수가 여전히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큐텐이 이미 인수한 티몬과 위메프, 인터파크커머스의 오픈마켓 점유율은 3사를 전부 합산해도 4.6%에 불과하다. 반면 11번가는 7%로 3사를 합산한 것보다 더 높다.

이날 이사회에 앞서 지난 27일 11번가는 창사 이래 첫 희망퇴직을 받았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11번가가 매각이 여의치 않자 장기 경영을 위해 몸집 줄이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