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에 안 간 지 1년이 넘은 것 같다. 둘이 먹을 음식을 사러 차를 끌고 5㎞ 떨어진 대형마트까지 가게 되지 않는다."

가정주부 김미선(63)씨는 일주일에 1~2번 집 앞에 있는 슈퍼마켓에서 장을 본다. 외아들이 결혼한 뒤 남편과 단둘이 살고 있는 김씨는 한번에 많이 사두면 상하는 야채와 과일은 조금씩 사서 먹는 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편의점에서 장을 보기에는 구비된 품목이 다양하지 않기 때문에 집 가까운 슈퍼마켓이 여러모로 가장 편하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자취를 하고 있는 직장인 공수연(25)씨는 집밥 대신 주로 외식을 한다. 슈퍼마켓에서 그는 간편식이나 과일을 구매하는 게 전부다. 공씨는 "냉동식품을 인터넷으로 배송시키면 포장지와 쓰레기가 음식의 2~3배 이상 나와서 죄책감이 들고 배송비 때문에 대량구매를 해야 한다"면서 "근처 슈퍼마켓에서 구매하면 배송도 더 빨라서 슈퍼마켓을 이용한다"고 했다.

그래픽=정서희

편의점·대형마트와 온라인·배달 애플리케이션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던 기업형 슈퍼마켓(SSM)이 근거리 쇼핑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전략들을 내세워 고령층과 젊은 세대, 특히 미래 세대 소비자로 각광받고 있는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 사이에서 주목받고 있다. 슈퍼마켓은 소포장, 신선식품, 1시간 내 배송서비스 등에 주력해 이들 소비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이는 고령층과 Z세대 모두 차량으로 이동해가면서까지 장을 보려고 하기 보다는 거주지 근처에서 걸어서 이용할 수 있는 쇼핑 장소를 선호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들 세대 입장에서 편의점은 점포 수가 많아 접근성은 좋지만 품목이 다양하지 않고, 그렇다고 대형마트까지 가서 굳이 대용량으로 포장된 물건을 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공통점이 없을 것 같은 고령층과 Z세대의 성향이 교차하는 곳이 바로 SSM이다. 고령층은 상대적으로 30·40대보다 온라인 쇼핑에 능숙하지 않고, Z세대의 경우 그 이전 밀레니얼세대에 비해 직접 보고 만지고 듣는 '체험'에 더 큰 가치를 두기 때문에 가까운 거리에서 바로 보고 살 수 있는 SSM을 선호한다는 분석이다.

김명구 모니터 딜로이트 파트너는 "신선식품은 빨리 먹어야 하는데 물류 가격 등 영업이익 측면에서 쿠팡같은 온라인 유통에서는 소량판매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생필품이나 공산품은 온라인으로 편리하게 구매하더라도 1~2인 가구가 많아지면서 신선식품은 동네 슈퍼 이용률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SSM 매출 2.2% 증가할 때 대형마트 1% 증가

조선비즈는 지난달 16일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 이경희 이마트 유통산업연구소장,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등 전문가들과 '인구 절벽에 따른 소비 지형 변화'에 대한 좌담회를 열었다. 전문가들이 제시한 유통 채널의 미래는 '대형 마트가 지고 기업형 슈퍼마켓(SSM)이 뜬다'는 것이었다.

실제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2023년 상반기 주요 유통업체 매출 동향'에 따르면 기업형 슈퍼마켓(SSM)은 작년 동기 대비 2.2% 성장했다. 같은 기간 대형마트의 매출 증가율(1%)을 웃돌았다. 지난 10월 기준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등 3사 대형마트의 전국 점포 수는 396개로 4년 연속 감소했다.

롯데슈퍼 삼성점. /롯데슈퍼 제공

전문가들은 이 같은 대형마트의 하향세와 SSM의 재도약을 불러온 원인 중 하나로 '고령화'를 꼽았다. 정 교수는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노인들이 다니기 편한 근거리 쇼핑이 각광받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지금 오프라인 기업들이 점포와 자산이 많은데 구조조정과 자산 유동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전했다.

문 교수는 "노인 인구의 증가로 발생하는 문제는 '움직임'의 제한이 생긴다는 것"이라며 "마트에 가려면 차를 몰고 가야하는데 운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상태가 나빠지거나 시력, 인지력이 떨어지는 문제가 생겨난다"고 말했다.

그는 "갈수록 대형마트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반면 근거리에 있는 SSM이나 아파트 단지 전문점, 과일 전문점, 정육점 등 더 전문화된 가게들이 성장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대형마트를 주로 중·장년층이 방문했다면 근거리 쇼핑 채널의 대표주자인 편의점은 특히 이동이 줄어든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시기에 Z세대에게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편의점은 슈퍼마켓에 비해 규모가 작아 판매할 수 있는 품목 개수가 제한적이다. 다양한 제품을 직접 보고 구매하고 싶어하는 Z세대에게 편의점에서의 경험은 한계가 있다.

편의점업계에 따르면 국내 편의점 평균 점포 면적은 약 20평(66㎡)으로 '편의점의 왕국'이라 불리는 일본 평균 점포 면적의 2분의 1 수준이다. 면적이 작기 때문에 일본과 달리 편의점이 판매할 수 있는 상품 종류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최철 숙명여자대학교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편의점은 슈퍼마켓이나 대형마트처럼 규모로 경쟁하기보단 빠르게 간편식을 먹거나 접근하기 어려운 시간대에 갈 수 있는 말 그대로 사람들에게 '편의'를 주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며 "순간적으로 필요한 물건을 편의점에서 살 수는 있지만 종류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장을 보거나 물건을 비교해보고자 할 때는 슈퍼마켓을 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오프라인 매장의 매력은 '다품목 소량판매'

근거리 슈퍼마켓은 쿠팡 등 온라인 쇼핑몰과 대형마트가 가질 수 없는 소포장·신선식품이라는 장점에 집중한다. 고령층과 Z세대 뿐 아니라 이는 1인 가구의 증가와도 맞닿아있다. 1인가구는 비교적 대량 판매를 하는 온라인 유통을 통해 신선식품을 구매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픽=정서희

문 교수는 "앞으로 온라인과의 경쟁에서 오프라인 매장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품목 소량판매'를 해야 할 것"이라면서 "눈으로 직접 보고 고르는 경험 그 자체가 오프라인 매장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이마트는 2020년 오프라인 매장이 줄 수 있는 경험을 극대화하고자 '토마토 뮤지엄'이라는 체험형 코너를 만들어 토마토 16종을 매대에 채웠다. 토마토뮤지엄을 연 지 1주일 만에 전년 동기 대비 토마토 매출이 약 20% 이상 올랐다. 허니 토마토, 애플 토마토 등 특수 품종은 40% 이상 신장했다.

롯데슈퍼는 지난달 14일 서울시 강남구에 위치한 삼성점을 그로서리 강화 매장으로 새단장했다. 이 매장은 사무실과 20·30대 1~2인가구가 많은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신선식품과 델리 등을 주력으로 판매한다. 이곳은 전체 면적의 90%를 소용량 채소·프리미엄 식품 등으로 채웠다. 다른 매장과 달리 델리 식품과 와인 매대를 매장 입구에 배치하기도 했다.

GS더프레시, 홈플러스익스프레스, 이마트에브리데이도 1~2인 가구를 고려한 소포장, 신선식품과 간편식에 중점을 두고 있다. 홈플러스익스프레스는 직영 매장의 60% 이상이 신선·간편식 전문 매장이다.

이처럼 이 소장은 1인가구와 고령인구가 증가하면서 슈퍼마켓에 간편하지만 건강하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제품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일본 마트나 슈퍼마켓에 가보면 오전에 노인들이 도시락이나 델리식품을 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서 "가정간편식(MHR), 밀키트 , 델리 상품 등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 세대 공략법은… 빠른 배송·여러 경험 즐길 수 있는 쇼핑몰

주로 중·장년층 고객에 집중돼있는 대형마트와 슈퍼마켓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미래세대를 공략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를 위해 유통업계는 젊은 세대까지도 고객층을 늘려갈 전망이다.

이 소장은 "대형마트도 5060만으로는 성장할 수 없기 때문에 형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면서 "몰(mall) 형태로 바꿔 그 안에서 물건을 사는 것 외에 친구도 만나고 운동도 하는 등 여러 가지를 즐길 수 있도록 한다"고 했다.

슈퍼마켓은 1시간 이내 배송서비스와 신선식품 확대는 온라인에 익숙한 젊은 세대도 슈퍼마켓으로 끌어들였다. 특히 슈퍼마켓의 1시간 이내 배송서비스는 아무리 빨라도 다음날 배송을 받아야 하는 온라인 쇼핑에 맞서 근거리 슈퍼마켓의 장점을 극대화한 전략으로 분석된다.

홈플러스익스프레스의 1시간 즉시배송 서비스를 이용하는 20~30대 고객 수는 올해 1~9월 기준 전년 동기 대비 21% 늘었다.

GS리프레시는 지난달 퀵커머스 배달 건수가 지난해 동기 대비 20배 증가했고 올해 1~9월 20~30대 비중이 전체 고객의 31.2%로 전년 동기 대비 5.6%포인트 상승했다.

이마트에브리데이는 1시간 내 배송을 확대하면서 올해 9월 이용고객의 20~30대 비율이 처음으로 30%대를 넘어섰다.

롯데슈퍼는 빠른 배송서비스를 중단했지만 올해 9월까지 20~30대 고객층의 비율이 25%로 지난해 대비 5%포인트 증가했다.

롯데슈퍼 관계자는 "20~30대의 고객구성비가 늘어났다"며 "신선식품과 즉석조리식품 등을 도입해 젊은 고객들의 수요가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슈퍼마켓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온라인 시장 강화와 빠른 배송에 집중해야 한다"면서 "작년 쇼핑소매액의 35%가 온라인 시장에서 발생했는데 향후 65%까지 장악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