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베트남 하노이 코트라 무역관에서 만난 이희상 동남아대양주지역본부장(하노이무역관장). /김은영 기자

“베트남 내 한류는 더 세분화되고, 진화하고, 빨라졌습니다. 소비시장에선 식품, 뷰티, 라이프스타일이 삼각 축을 형성하고 한류의 영향을 받고 있죠.”

지난달 22일 하노이 대한무역투자공사(이하 코트라) 무역관에서 만난 이희상 코트라 동남아대양주지역본부장(하노이 무역관장)은 베트남의 소비시장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베트남은 중국, 미국에 이어 제3위 교역국이자 최대 무역 흑자국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대(對)베트남 교역 총액은 877억 달러(약 119조원)로, 342억5000만 달러(약 47조원)의 무역흑자를 거뒀다. 아직은 중간재가 대부분이지만, 소비재 교역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산 화장품의 경우 베트남 국내 화장품 시장에서 약 30%의 지분을 점유하며, 유럽연합(23%) 및 일본(17%) 등에 비해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 들어선 글로벌 기업의 생산기지에서 세계가 주목하는 소비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베트남 공상부(MoIT)에 따르면 지난해 베트남 소매시장은 전년 대비 21% 성장한 1420억 달러(약 193조원)로 성장 목표치인 8%를 웃돌았다. 이는 베트남 1인당 가처분 소득의 증가와 관광 부문의 회복에 기인한 것으로, 당국은 베트남 소매시장 규모가 2025년 3500억 달러(약 475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는 베트남 국내총생산(GDP)의 59%를 차지하는 수준이다.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 전경. /롯데쇼핑

이에 따라 글로벌 유통기업들의 진출도 잇따른다. 태국 최대 유통기업 센트럴리테일은 향후 2027년까지 14억5000달러(약 1조9000억원)를 베트남에 추가 투자하고, 베트남 내 관할 지역을 기존 40개에서 55개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이온그룹도 베트남 내 복합쇼핑몰을 현재 6개에서 20개까지 늘릴 계획이다.

한국의 경우 롯데쇼핑(023530)이 지난달 하노이 서호 인근에 쇼핑몰과 호텔, 영화관, 아쿠아리움 등을 담은 대규모 복합상업시설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이하 롯데몰 웨스트레이크)를 공식 개장하며 “베트남의 프리미엄 소비 시장을 주도하겠다”라고 공표했다. 또 하이트진로(000080)는 베트남 타이빈성에 소주 생산 공장을 건립해 ‘소주 세계화’에 나서기로 했다. 이 회사가 해외에 소주 공장을 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본부장은 “아직 베트남을 소비시장으로 보기는 이르지만 성장 가능성이 높다”라며 “한국기업이 베트남 소매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현지화와 디지털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 본부장과의 일문일답.

─베트남에서 한국 기업이나 제품에 대한 위상은 어떤가.

“높은 편이다. 우리 부모 세대처럼 삼성에 다닌다고 하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웃음). 예전엔 한국 식자재를 사려면 한국 식품점에 가야 했는데, 이전 어디를 가나 한국 식자재나 과일을 판매한다. 식품, 뷰티, 라이프스타일이 삼각 축을 형성하고 한류의 영향을 받고 있다.

화장품의 경우 한국의 미백 화장품 등 기능성 화장품에 대한 선호가 크다. 최근에는 화장하는 남성들이 늘면서 남성용 화장품도 인기를 끌고 있다.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의 부상과 궤를 같이하는 양상이다.”

─베트남 소비시장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나.

“베트남 소비자들은 한국과 기질이 비슷한 면이 많다. 더운 나라지만, 열심히 살아가고 부자가 되겠다는 욕심이 있다. 젓가락을 쓰기 때문에 손재주도 좋다. 생산성 측면에서 동남아 국가 중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아직 소비시장으로 접근하기는 이르지만, 1억 명이 넘는 인구에 연간 7%에 달하는 GDP 성장률, 여기에 디지털 환경까지 고려하면 시장이 빠르게 성장할 걸로 본다.

원래 동남아는 쇼핑몰 문화가 발달해 있다. 베트남과 1인당 GDP가 비슷한 필리핀도 쇼핑몰이 잘 조성돼 있다. 하지만 베트남은 소비력이 급부상하는 데 반해 쇼핑몰은 발달하지 못했다. 하노이에서 백화점은 짱띠엔 플라자가 유일하다. 말레이시아 쇼핑몰 팍슨의 경우 지난 4월 파산신청을 하고 베트남에서 철수했다.

하노이의 유일한 백화점 짱띠엔 플라자 내부. /김은영 기자

그 와중에 롯데그룹이 하노이에 롯데몰 웨스트레이크를 냈으니 ‘소비혁명’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거 같다. 기존 쇼핑몰들은 그냥 고급 상품을 갖다 놓고 팔았지만, 롯데몰은 Z세대를 겨냥해서 다양한 콘텐츠를 넣었더라. 베트남 소비시장의 주체로 떠오른 Z세대는 디지털에 익숙하고 가치 소비나 건강, 환경을 생각하는 성향을 보인다. 롯데몰을 보고 현지 소비 문화를 선도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한류는 여전한가.

“베트남에서 한류 인기는 여전하다. 과거엔 드라마만 봤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K팝도 듣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예능도 보고, 소셜미디어(SNS)로 아이돌의 일상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어 전파 속도가 빠르다. 넷플릭스에서 ‘오징어 게임’이 방영되면 현지 카페에서 달고나 커피를 팔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나오면 김밥이 유행하는 식이다. 한국 프랜차이즈가 아니라 현지 카페에서 그렇게 판다.

일각에선 한류가 수그러들었다는 평도 나오지만, 베트남의 한류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더욱 세분화되고, 진화하고, 빨라졌다.”

─중소기업 제품도 반응이 좋은가.

“베트남 소득 수준이 향상하면서 화장품이나 향수 등의 판매가 늘고 있다. 특히 미백 제품의 반응이 좋은데, 베트남에는 미의 기준을 가리키는 말로 ‘긴 다리 흰 피부’를 뜻하는 ‘쩐 자이 자 짱(Chân dài da trắng)’이라는 관용적 표현이 있을 정도다.

올 초 코트라 하노이무역관의 사업에 처음 참가한 아주화장품의 경우 미백 크림 단일 품목으로 9만2000달러(약 1억2498만원) 수출에 성공했다. 보통 국내 중소기업 화장품(단일 제품)이 첫 수출 계약에서 500만원~1000만원 수준의 주문을 받는 걸 고려하면 큰 성과다. 이 회사는 내년에 연간 100만 달러(약 13억5500만원) 이상의 수출이 예상되고 있다.

여성용 청결제와 향수를 제조하는 라오가닉의 경우 2019년 처음 베트남 시장에 진출한 이래 지난해 수출 200만 달러(약 27억1800만원)를 달성했다. 올해는 300만 달러(약 40억7700만원) 규모의 수출이 예상된다.”

베트남 10~20대 여성을 공략해 SNS 마케팅을 펼친 한국 색조화장품 블랙루즈. 이 브랜드의 페이스북 베트남 공식계정 팔로워 수는 149만 명에 달한다. /블랙루즈 페이스북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기업 현황은.

“현재까지 삼성전자(005930), LG전자(066570), 효성(004800), 포스코 등 9000여 개의 한국 기업이 진출해 있고, 고용자 수는 70만 명이 넘는다. 1986년 도이머이(Doi Moi, 개혁·개방) 정책 이후 외국인 투자 금액 집계가 시작된 1988년부터 올해 9월까지 한국은 9786개 프로젝트에 약 830억 달러를 투자했다. 단순 금액 기준으로 전체 베트남 외국인직접투자(FDI)의 약 18%를 차지하며, 싱가포르(2위)와 일본(3위)을 앞지른다.

개인적으로 코트라에서 일한 지 31년이 됐는데, 베트남이 이렇게 각광받은 적이 없던 거 같다. 동남아 지역에서 코트라 무역관이 3개가 있는 국가는 베트남이 유일하다. 코트라 동남아 지역본부도 싱가포르에 있다가 2018년 하노이로 이전했다. 그만큼 한국 기업의 진출이 활발한 곳이라 할 수 있다.”

─베트남에 진출하려는 한국 기업이 갖춰야 할 성공 조건이 있다면.

“무조건 ‘메이드 인 코리아’만 붙여서 나가면 안 된다. 현지 소비자의 니즈(요구)를 반영하고, 젊은 소비자가 많은 만큼 디지털 전략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 또 베트남을 생산기지나 소비 국가로만 볼 게 아니라 같이 성장하는 동반자로 여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끼떡볶이는 현지화에 성공한 사례다. 한국엔 없는 러우(lẩu, 베트남식 샤브샤브)를 메뉴에 넣고, 현지인이 선호하는 뷔페를 접목했다. 또 CJ제일제당(097950)은 현지 입맛에 맞춰 ‘고수김치’를 출시했고, 오리온(271560)은 ‘수박 맛 초코파이’를 내놨다.

그런가 하면 한국 화장품 기업 디앰엔씨의 색조 화장품 ‘블랙루즈’는 10~20대 여성을 겨냥한 립스틱을 출시하며, 현지 인플루언서를 활용한 마케팅을 펼쳐 큰 인기를 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