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하노이 짱띠엔 거리에 있는 루이비통 플래그십스토어(대표 매장). /김은영 기자

베트남 하노이 호안끼엠 호수 인근에 있는 짱띠엔 플라자는 1900년 프랑스 식민지 시절 세워진 하노이 최초의 백화점이다. 이곳을 중심으로 형성된 짱띠엔 거리는 하노이 최고의 쇼핑 거리로 쇼핑객과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지난달 방문한 이 거리는 젊은이들과 가족 단위 나들이객으로 활기가 넘쳤다. 대로변은 한껏 차려입고 사진을 찍거나 춤을 추는 자유분방한 젊은이들이 차지했고, 골목 사이에 난 노천카페에는 커피나 브런치를 먹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시끌벅적한 거리를 조금 벗어나자 에르메스, 루이비통, 디올, 프라다 등 명품 플래그십스토어(대표 매장)가 나왔다. 발렌티노, 쇼메, 보스 등은 가림막을 설치하고 매장 개설을 위한 공사가 한창이었다. 메종키츠네, 마크제이콥스 등 글로벌 패션 브랜드들도 매장을 한 자리씩 차지한 채 고객들을 맞았다.

◇명품·호텔 몰리는 베트남... 동남아 럭셔리 허브로

하노이가 동남아의 럭셔리 쇼핑 허브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글로벌 패션 브랜드들이 새롭게 둥지를 틀거나 매장을 키웠고, 포시즌스, 페어몬트, 리츠칼튼 등 고급 호텔 브랜드들도 개관을 앞두고 있다.

명품업계가 하노이를 주목하는 이유는 성장 잠재력이 크기 때문이다. 베트남은 중산층과 고액 자산가가 증가하면서 명품시장도 지속적인 성장이 예상된다.

그래픽=정서희

맥킨지에 따르면 하루에 11달러(약 1만5000원) 이상을 소비할 수 있는 베트남 중산층은 2000년 10% 미만에서 현재 40% 수준으로 증가했다. 2030년에는 전체 인구의 75%를 차지할 전망이다.

부유층도 늘어나는 추세다. 영국 부동산 컨설팅 회사 나이트프랭크는 100만 달러(약 13억5800만원)의 유동자산을 보유한 베트남 고액 자산가가 지난해 기준 7만2135명이며, 2026년에는 그 수가 59% 이상 증가한 11만4800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순자산이 3000만 달러(약 407억원) 이상인 초부유층도 2017년 583명에서 2026년 1300여 명으로 불어날 전망이다.

연예인과 축구선수,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이나 인플루언서(인터넷 유명인)들이 명품이나 고급 자동차 등을 소셜미디어(SNS)에 자랑하면서 소비력을 가진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 사이에서 사치품을 선망하는 분위기가 커진 것도 시장 성장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는 올해 베트남 명품 소매 시장 규모가 9억5720만 달러(약 1조2999억원)이며, 2028년까지 연간 3.23%씩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래픽=정서희

그러나 긍정적인 시장 전망에 비해 고급 소매 공간은 부족한 상황. 하노이의 경우 백화점은 짱띠엔 플라자가 유일하다. 이렇다 보니 명품업계는 신개척지로 베트남을 주목하고 있다.

◇프리미엄 시장 선점 나선 롯데·아모레

롯데그룹이 부촌으로 떠오르는 하노이 서호(西湖) 지역에 초대형 쇼핑 상업단지를 개설한 이유도 베트남 프리미엄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다.

롯데그룹은 지난달 이곳에 복합 쇼핑몰 '롯데몰 웨스트레이크'를 정식 개장하고, 에르메스, 샤넬, 디올 등 명품 화장품의 대형 플래그십스토어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2026년 매출 17조원·영업이익 1조원'이라는 중장기 목표 달성을 위해 롯데쇼핑(023530)은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 시장을 '동남아 프리미엄 쇼핑 1번지'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정준호 롯데쇼핑 대표는 "롯데몰 웨스트레이크를 기점으로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등 성장성 있는 시장에서 롯데를 프리미엄 브랜드로 포지셔닝할 것"이라며 "쇼핑몰뿐만 아니라 마트, 아쿠아리움, 시네마까지 롯데그룹이 가진 콘텐츠를 복합몰로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하노이의 유일한 백화점 짱띠엔 플라자 내부. /김은영 기자

소비재 기업들도 베트남 프리미엄 시장을 정조준한다. 과거 중저가 화장품으로 베트남 시장을 공략했던 아모레퍼시픽(090430)LG생활건강(051900)은 자사의 고급 화장품인 설화수와 오휘를 내세웠다. 지난달에는 P&G가 운영하는 일본 고급 화장품 SK2가 호치민에 첫 매장을 냈다.

패션 기업 LF(093050)는 마에스트로와 헤지스골프로 각각 비즈니스 의류 시장과 골프복 시장 선점에 나섰다. 2017년 베트남에 진출해 프리미엄 골프복으로 포지셔닝한 헤지스골프의 경우 현재 7개 매장을 운영 중인데, 작년 매출이 전년 대비 50% 이상 증가했다.

◇무조건 한국산 안 통해... 한류 전략도 달라져야

이지연 베트남 비자인 캠퍼스 대표는 베트남인들의 소비 수준이 높아지면서 한류를 바라보는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고 짚었다. 여전히 한류를 선호하지만, 무조건 '한국산=좋은 상품'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2007년 CJ푸드빌의 베이커리 브랜드 '뚜레쥬르'를 베트남 시장에 진출시키는 일을 했고, 현재 베트남 비즈니스 컨설팅 회사를 운영 중이다.

그는 "5년 전만 해도 포장지에 한글이 적혀 있으면 좋은 브랜드로 인식했지만, 지금은 프리미엄이 아닌 상품을 프리미엄으로 포지셔닝 하면 실패한다"라며 "요즘과 같은 글로벌 연결 시대에는 투명하게 브랜드 본질을 유지하며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짱띠엔 거리의 한 노천카페에서 만난 젊은이들이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김은영 기자

한국의 유통 기업들이 베트남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브랜딩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베트남 기획투자부는 올 초 2050년까지 1인당 국민소득(GDP)을 3만2000달러(약 4346만원)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선진국 사례를 보면 GDP가 3만 달러를 넘으면 개성과 취향을 소비하는 라이프스타일 관련 시장이 성장한다.

이는 현재 화장품과 음식, 패션 등에 집중된 베트남 소비시장이 곧 리빙, 레저, 교육 등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는 걸 시사한다.

이를 반영해 스웨덴 가구 공룡 이케아는 하노이에 4억5000만 유로(약 6450억원)를 투자해 물류센터와 매장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또 지난달 롯데몰 웨스트레이크에 문을 연 어린이 직업 체험 테마파크 키자니아는 사전 멤버십 모집 3일 만에 1000명 이상의 가입자를 모은 데 이어, 향후 호치민에도 점포를 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