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의 인사 시계가 빨라질 전망이다. 일각에선 헤드쿼터(HQ·Head Quarter) 체제로 전환한 지 2년여 만에 조직 체계를 다시 손볼 거란 관측도 나온다.

14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롯데그룹은 예년보다 빠른 다음 달 정기 임원 인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통상 롯데그룹은 11월 말 정기 임원 인사를 발표하고 12월 1일 자로 발령을 냈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롯데건설 유동성 위기 등이 발생하면서 12월 중순 인사를 단행했다.

올해는 그룹 주요 계열사의 수익성이 악화하면서 임원 인사가 빨라질 거란 전망이 나온다.

내년 3월 사내이사 임기가 끝나는 대표는 김상현 유통군 총괄대표 겸 롯데쇼핑(023530) 대표이사 부회장, 정준호 롯데쇼핑 대표, 이영준 롯데케미칼(011170) 대표, 최홍훈 호텔롯데 월드사업부 대표, 노준형 롯데정보통신 대표 등이다.

미등기이사인 나영호 롯데온 대표도 2021년 롯데쇼핑에 영입될 당시 3년 임기를 보장받고 와 이번 임원 인사 대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 지난해 정기인사에서 롯데케미칼 상무보에서 상무로 승진한 신동빈 회장의 장남 신유열 상무의 승진 여부도 주목된다.

내년 3월 임기가 끝나는 롯데그룹 계열사 사내이사들. 김상현 유통군 총괄대표 겸 롯데쇼핑 대표이사 부회장, 정준호 롯데쇼핑 대표, 노준형 롯데정보통신 대표, 최홍훈 호텔롯데 월드사업부 대표, 이영준 롯데케미칼 대표(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 /롯데

올해 롯데는 재계 순위(작년 말 자산 기준)가 13년 만에 5위에서 6위로 밀려나고, 계열사 신용등급이 하락했다. 그룹 전체 매출의 34%를 차지하는 핵심 계열사인 롯데케미칼이 5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면서 자체 현금창출력이 저하돼 재무 부담이 커진 게 원인이다.

신용평가 업계는 롯데케미칼 신용등급을 기존 'AA+(부정적)'에서 'AA(안정적)'로 하향 조정했다. 여기에 계열사의 지원 가능성이 고려되면서 지주사인 롯데지주(004990)롯데렌탈(089860) 등 계열사 신용등급도 한 단계씩 하락했다.

그룹에서 두 번째로 매출 비중이 큰 롯데쇼핑 역시 올 상반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가량 늘며 불황에도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매출액은 6%가량 줄어 성장이 정체된 상황이다.

이에 업계에선 롯데그룹이 실적 부진 극복을 위해 이번 정기 임원 인사에서 강도 높은 인적 쇄신을 단행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

롯데그룹은 최근 2~3년간 외부 인사를 적극 중용하며 쇄신을 시도했다. 2021년 말 정기 임원 인사에서 롯데는 오랜 순혈주의를 깨고 P&G 출신 김상현 유통군 부회장과 신세계(004170) 출신 정준호 백화점 대표, 놀부 출신 안세진 호텔롯데 대표(현 롯데미래전략연구소장) 등을 영입했다.

지난해 인사에서는 이창엽 전 LG생활건강(051900) 사업본부장과 김혜주 전 신한은행 상무를 롯데제과(현 롯데웰푸드(280360))와 롯데멤버스의 대표이사로 각각 내정하며 젊은 롯데로 변신을 시도했다.

하지만 뚜렷한 성과가 나지 않자, 외부 인재 영입에 대한 회의론과 함께 HQ를 해체해야 한다는 의견이 그룹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롯데그룹은 2022년 정기 임원 인사에서 기존 비즈니스 유닛(BU·Business Unit) 체제로 운영되던 각 계열사를 6개 사업군(식품·쇼핑·호텔·화학·건설·렌탈)으로 유형화하고, 이 중 주요 사업군인 식품·쇼핑·호텔·화학 사업군에 총괄대표를 선임했다.

그러나 지난 7월 이완신 전 호텔군 총괄대표가 일신상의 이유로 사임하면서, 해당 조직을 축소했다. 기존 호텔HQ에 있던 80명가량의 인력 중 재무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담당 20명 정도만 남기고 나머지는 현업으로 재배치했다.

HQ 체제를 통해 중장기 사업 전략을 수립하고 재무·인사 등의 통합을 통해 시너지를 꾀하겠다는 당초 계획이 1년 8개월 만에 무산되다시피 하자 다른 HQ도 축소·재편되는 것 아니냐는 회의론이 커지는 상황이다.

롯데그룹 한 관계자는 "호텔HQ를 없앤 건 아니지만 해당 조직을 크게 축소하면서 그룹 조직구조 개편 가능성에 대한 말이 도는 건 사실"이라며 "그룹 정책본부가 더 강화될 거란 전망도 나온다"라고 했다.

일각에선 HQ가 '옥상옥(屋上屋)' 조직이 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각 사업부를 총괄한다는 명목으로 상위 조직인 HQ가 비대해져, HQ를 운영하는 데만도 많은 자원과 인력이 소요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전략컨설팅사의 인사조직전략 전문가는 "HQ의 역할은 여러 계열사를 조정하고 전략을 만들어 시너지를 추구하는 것"이라며 "그 외에 너무 많이 관여하면 사업부의 힘을 빼거나 실행력이 떨어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다만, 경영 위기 시엔 대대적인 조직개편이 적절치 않다는 시각도 있다. 특히 최근과 같이 핵심 기술을 중심으로 경영 트렌드가 빠르게 변하는 시기에는 무리한 조직개편이 현업의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다.

한 인사 전문가는 "어떤 조직구조가 정답이라 단정할 순 없다"면서도 "조직 체계의 근간을 바꾸는 게 자칫 에너지 낭비나 리스크로 돌아올 수 있다"라고 충고했다.

롯데지주(004990) 관계자는 "올해 인사는 예년대로 11월 말에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며 "아직은 인사 시점을 논하기 이른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