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출시돼 국내 수제맥주 시장을 '협업맥주 밭'으로 바꿔버린 '곰표 밀맥주'가 다시 나왔습니다. 곰표 밀가루로 유명한 대한제분(001130)이 '곰표 밀맥주'를 함께 만든 수제맥주 회사 세븐브로이의 손을 놓고, 대신 제주맥주를 새로운 제조사로 오늘(21일) 출시했습니다.

시장의 관심은 BGF리테일(282330)이 운영하는 편의점 CU로 쏠렸습니다. 과거 곰표 밀맥주 단독 판매처로, '오픈런'까지 누린 CU가 곰표 밀맥주 재출시를 놓고 고심했기 때문인데요. CU는 곰표 밀맥주 재출시를 하루 앞둔 전날 오후에야 뒤늦게 판매처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편의점 CU 수제맥주 매대에 진열됐던 세븐브로이 생산 '곰표 밀맥주'. /BGF리테일 제공

2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CU의 참여로 제주맥주가 만드는 곰표 밀맥주는 주요 편의점 4사(CU, GS25, 세븐일레븐, 이마트24)에서 모두 팔리게 됐습니다. 이날 점포별 발주를 시작해 이르면 오늘 오후, 늦어도 내일이면 매대에 진열될 예정입니다. 그런데 CU는 왜 고민했을까요?

업계에선 대한제분과 세븐브로이 간 다툼에서 원인을 찾고 있습니다. 지난 3월 계약 종료 당시 세븐브로이가 "제품은 우리가 개발했으니 다른 이름으로 내겠다"고 밝히자, "그럼 디자인을 바꿔라"라며 소소하게 다퉜던 양사의 갈등이 최근 법정 싸움으로까지 번졌기 때문입니다.

세븐브로이는 지난 15일 대한제분을 '거래상 지위 남용 행위 금지와 사업 활동 방해행위 금지 위반'으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습니다. 세븐브로이는 대한제분이 자신들이 진행했던 곰표 밀맥주 수출을 탈취했고, 또 성분분석표와 영양성분표까지 가져갔다고 주장했습니다.

아울러 세븐브로이 측은 제주맥주가 만든 곰표 밀맥주가 세븐브로이가 생산한 제품과 동일한 것임을 확인했다며 대한제분이 세븐브로이의 사업 노하우와 맥주 성분을 탈취한 뒤 경쟁사를 통해 동일한 제품을 출시했다고 전했습니다.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까지 제기했습니다.

CU 입장에선 난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CU는 지난 4월 세븐브로이가 곰표 밀맥주 포장을 바꿔 '대표 밀맥주'를 출시하자 단독 판매처를 자처하고 나선 채였습니다. 출시 당시 CU는 "'곰표'를 떼고 캐릭터를 호랑이로 교체했지만, 맛과 향은 그대로"라고까지 했죠.

세븐브로이는 대표밀맥주(왼쪽) 포장을 대한제분의 항의로 교체(오른쪽)했다. /세븐브로이 제공

다만 CU가 곰표 밀맥주를 완전히 외면할 수는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곰표 밀맥주는 밀맥주 특유의 깊고 부드러운 맛과 은은한 열대 과일 향으로 탄탄한 마니아층을 형성하며 2020년 첫 출시 이후 5850만캔의 누적 판매고를 올린 '수제맥주의 신화' 같은 제품입니다.

대한제분이 제주맥주와 손잡고 새로 낸 곰표 밀맥주도 맛에서 큰 차이를 낼 것으로 보이진 않는 가운데, CU를 제외한 편의점 전체가 곰표 밀맥주 판매를 확정하기도 했습니다. 상품 기획을 놓고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는 편의점 업계에서 곰표를 버리기 어려웠던 것이죠.

편의점업계 한 관계자는 "사람들은 곰표 밀맥주를 세븐브로이가 만든다는 것보다 곰표라는 브랜드로 더 많이 기억하고 있다"면서 "수제맥주 인기가 과거에 비해 덜하다고는 하지만, 곰표로 인기를 끌었던 CU가 곰표 밀맥주를 포기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CU 매장에선 되레 재밌는 광경이 펼쳐지게 됐습니다. 곰표 밀맥주를 처음 출시했다가 '곰표' 상표권은 지워진 세븐브로이의 밀맥주와 곰표를 새로 챙긴 제주맥주의 밀맥주가 같이 진열될 전망입니다. CU 측은 "일단은 두 맥주를 모두 취급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곰표 밀맥주를 둘러싼 대한제분과 세븐브로이 간 갈등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입니다. 당장 세븐브로이가 대한제분을 향해 제기한 판매금지 등 가처분 신청에 대한 법원 판단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의 가처분 신청 심문기일은 오는 28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