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와 벨기에 브뤼셀, 미국 라스베이거스 정도로 압축됐던 마이스(MICE) 도시 지형이 변화를 맞게 됐다. ‘카지노 성지’로까지 불렸던 마카오가 자국 내 복합리조트 운영사 샌즈 차이나와 손잡고 마이스를 마카오의 신(新) 핵심 산업에 올리고 나섰기 때문이다.

기업회의·포상관광·컨벤션·전시회 등을 포괄하는 마이스 산업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엔데믹에 따른 대면 행사 재개로 현재 호황을 맞았다. 오는 2030년이면 마이스 산업 규모가 2000조원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싱가포르 마리나베이 샌즈(MBS) 엑스포&컨벤션 센터. /배동주 기자

마카오 정부 기관인 마카오무역투자진흥국, 마카오정부관광청은 샌즈 차이나와 함께 지난 8일 싱가포르 마리나베이 샌즈(MBS) 엑스포·컨벤션 센터에서 ‘마이스 앤 럭셔리 포럼’을 개최, 마카오의 핵심 기간산업으로의 마이스 강화를 공표했다.

빈센트 유(Vincent U) 마카오무역투자진흥국장은 이날 ‘무엇이 세계적 수준의 마이스 장소를 결정하는가’라는 포럼 세션에 참석해 “마카오는 싱가포르만큼의 숙박시설은 물론 전기차라는 친환경 운송 인프라까지 구축, 마이스 역량을 확보한 상태”라고 말했다.

앞서 샌즈 마카오는 마카오무역투자진흥국, 마카오정부관광청의 지원에 힘입어 지난 7일 마카오 내 식문화, 패션, 예술·문화를 알리는 관광 기획전 ‘마카오 쇼케이스’를 MBS에서 열기도 했다. 숙박·운송 인프라 외에 관광 상품을 마이스 산업의 경쟁력으로 키우기 위해서다.

마카오는 마이스 산업으로 제2의 싱가포르가 된다는 포부다. 싱가포르는 1997년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를 겪은 뒤 복합 리조트를 유치, 이를 다시 마이스 산업으로 확장했다. 복합 리조트는 호텔과 전시장뿐 아니라 대규모 쇼핑몰과 극장·박물관·카지노까지 갖춘 곳이다.

2010년 싱가포르는 재차 남쪽에 위치한 인공섬 센토사를 개발해 리조트, 골프장, 해수욕장, 유니버설스튜디오, 워터파크, 전시관, 레저시설을 들였다. 관광을 결합한 일명 BT(business travel) 마이스 모델로, 싱가포르에서 마이스 산업의 부가가치는 4조원에 달한다.

유은정 싱가포르 공과대학 비즈니스·커뮤니케이션 클러스터학과 교수는 “마이스 행사는 통상 연회장, 식음업장, 객실 등 리조트 내 모든 시설을 이용하는 행사인데 더해 수익성도 좋다”면서 “카지노만이 발달한 마카오 입장에선 마이스가 좋은 대안일 것”이라고 말했다.

싱가포르 마리나베이 샌즈(MBS)에서 열린 '마카오 마이스 앤 럭셔리 포럼'에 참석한 빈센트 유 마카오무역투자진흥국장(오른쪽). /배동주 기자

마카오는 1990년대 포르투갈에서 중국으로 주권이 반환된 특별행정구다. 2002년 외국인 대상 카지노 시장을 개방, 카지노를 중심으로 한 6개의 대형 복합 리조트가 들어섰다. 카지노가 핵심 사업일 뿐 마이스로 전환이 가능한 숙박·운송 인프라를 이미 갖추고 있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19 엔데믹으로 미뤄뒀던 대면 행사가 재개, 마이스 산업은 전에 없던 호황을 맞았다.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를 대표 행사로 하는 스페인 바르셀로나만 해도 올해 전 세계에서 약 9만명이 찾았다. 코로나19 전인 2019년과 비교해 23% 늘었다.

이는 코로나19 엔데믹 전환에도 마카오의 카지노 시장이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중국 정부가 마카오 카지노를 찾는 고객들에게 도박 자금을 빌려주던 중개업자들을 원정도박 알선 혐의로 체포하는 등 규제 수위를 강화, 마카오도 위기를 맞았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마카오 내 6개 카지노 리조트의 지난 4월 매출은 147억 파타카(약 2조43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445% 늘었지만,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4월의 70%에도 미치지 못했다. 세수의 80%를 카지노에서 충당했던 마카오로서는 위기인 셈이다.

반면 마이스 시장은 꾸준한 성장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리서치앤드마켓은 전 세계 마이스 시장 규모는 2030년 1조5623억 달러(약 2021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해 8764억 달러(약 1134조원)였던 것과 비교해 약 두배로 커지는 셈이다.

마리아 헬레나 드 세나 페르난데스(Maria Helena de Senna Fernandes) 마카오정부관광청장은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국제 행사나 전시회 수요가 많은 지금이 마이스 산업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적기라고 봤다”면서 “정부 차원의 마이스 유치 판촉도 늘려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손민균

마카오의 마이스 강화로 한국은 위기를 맞게 됐다. 2000년 서울 강남구에 코엑스를 증축, 마이스 산업 확장에 나섰던 한국은 이후 20년 넘게 추가 설비 투자를 멈췄다. 이대로라면 마카오가 서울의 국제회의, 전시회 수요를 가져갈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마카오 정부의 마이스 산업 강화 첨병에 선 곳이 샌즈 차이나라는 점도 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샌즈 차이나는 은광촌이었던 미국 라스베이거스를 카지노 도시로, 이제는 세계 최대 규모 가전전시회 CES가 열리는 마이스 산업 중심지로 키워낸 라스베이거스 샌즈의 자회사다.

마카오정부관광청이 지난해 말 발표한 마카오 내 복합리조트 운영사 신규 투자 계획에 따르면 샌즈 리조트는 향후 10년간 전시장과 식물원 건설, 국제행사 등 유치에 총 34억 달러(4조4404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매년 4000억원을 마이스 산업에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진홍석 한국마이스융합리더스포럼 회장은 “서울은 국제협회연합(UIA)의 컨벤션 개최 수 기준 싱가포르, 브뤼셀에 이은 마이스 다개최 도시지만, 서울 하면 떠오르는 행사가 없는 게 사실”이라면서 “투자가 어렵다면, 서울을 드러낼 수 있는 행사를 만들어 내야만 하는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