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번가가 ‘쿠팡식 성장’을 택했다. 상품을 직매입해 다음 날 배송하는 쿠팡의 핵심 사업모델 ‘로켓배송’을 이른바 ‘슈팅배송’이라는 이름으로 차용, 몸집 부풀리기를 본격화했다.

특히 납품단가 문제로 로켓배송서 빠진 ‘햇반’ ‘코카콜라’ 등 주요 상품을 슈팅배송에 채우고 있다.

11번가 로고.

23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11번가는 지난해까지도 일부 생필품에 그쳤던 직매입 익일배송 서비스 슈팅배송 상품군을 식품, 소형가전 등으로 확대하고 나섰다. 11번가의 익일배송 판매상품수(SKU)는 작년 1분기 4000여개 수준에서 4만3000여개로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11번가 측은 “생수, 세제 등 고객 구매가 많은 생필품을 일부 직매입해 수도권 중심으로 익일배송했던 것을 지난해 하반기 슈팅배송이라는 이름으로 확대·재편했다”면서 “지난 6개월여간의 운영 성과를 토대로 올해 규모와 물량 면에서의 본격 확장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11번가는 슈팅배송 마케팅도 대대적으로 진행중이다. 코카콜라, CJ제일제당(097950), LG생활건강(051900) 등과 손잡고 브랜드 전문관을 구축, 상품 할인 판매를 시작했다. 코카콜라의 씨그램 등 음료 할인 익일 배송을 시작으로 CJ제일제당의 햇반 등으로 행사를 어어 간다.

오픈마켓이 주력이었던 11번가가 외형을 불리는 수단으로 직매입을 택했다는 분석이다. 직매입은 상품 판매 수수료가 매출인 오픈마켓과 달리 물건값이 곧 매출이 된다. 분기 매출 7조3900원으로 ‘유통 공룡’ 이마트(139480)마저 추월한 쿠팡의 외형 성장에도 직매입이 자리했다.

이는 11번가가 올해 반드시 외형 성장을 이뤄야 하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2018년 국민연금, 사모펀드 운용사 H&Q코리아 등으로부터 5000억원 투자를 받으며 5년 내 상장을 약속한 탓이다. 올해가 마지노선으로 연내 상장 실패 시 8% 이자를 더해 돌려주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상장을 진행한다고 해도 11번가는 5000억원 투자 당시 맺은 계약에 따라 3조원 이상의 기업가치 평가를 받아야 한다”면서 “상장 불발로 지분 매각이 추진된다고 하더라도 현시점에서 11번가는 반드시 외형 성장을 이뤄야 한다”고 설명했다.

CJ제일제당(097950)LG생활건강(051900) 등 제조사들이 쿠팡과 갈등을 벌이고 있는 것도 11번가에는 호재다. 예컨대 CJ제일제당은 납품가를 놓고 쿠팡과 갈등을 빚다 지난해 말부터 제품 납품을 전면 중단했다.

LG생활건강도 쿠팡과 납품단가를 두고 협상을 벌이다 쿠팡을 유통업법과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한 후 납품을 하지 않고 있다. LG생활건강 자회사인 코카콜라음료도 덩달아 쿠팡으로 납품을 중단했는데, 11번가의 익일배송 확장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업계에선 이른바 ‘반(反) 쿠팡 연대’가 조직되는 모양새란 평가다. 익일배송 서비스를 키우고자 하는 11번가와 제조사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다. 익일배송 수요마저 뒷받침하면서 지난 16일 연 코카콜라 슈팅배송 브랜드관 거래액은 17일까지 이틀간 직전 이틀 대비 8배 늘었다.

그래픽=손민균

문제는 지속가능성이다. 직매입 익일배송은 외형 성장의 확실한 수단이지만, 그만큼 비용이 많이 든다. 물류센터 구축 비용은 물론, 운영 측면에서도 상당한 인건비를 소모할 수밖에 없다. 쿠팡은 로켓배송 물류망 구축 등에 비용을 쏟으며 6조원 누적 적자를 냈다.

실제 11번가는 슈팅배송을 시작한 지난해 연간 매출이 7890억원으로 전년 대비 41% 증가했다. 동시에 영업손실도 전년보다 2배가량 늘어난 1515억원을 기록했다. 경기도 파주 등에 익일배송을 위한 물류센터를 새로 임차하고, 3자 배송을 진행하며 비용을 쏟은 탓이 컸다

올해 들어 수익성은 더욱 악화하고 있다. 11번가는 지난 1분기 2163억원의 매출을 낸 것으로 집계됐다. 분기 매출이 2000억원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영업손실은 31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0억원이 늘었다. 같은 기간 직매입 거래액이 501% 늘어난 영향이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11번가는 슈팅배송 이전 ‘나우배송’, ‘쇼킹배송’이라는 이름으로 직매입 서비스를 냈다가 조용히 축소하기를 반복해 왔다”면서 “이유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던 탓인데, 이번 슈팅배송 역시 단기간 외형 성장을 이루는 수단에 불과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11번가는 외형 확대와 함께 수익성 개선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일부 할인을 제공하는 VIP 멤버십과 패밀리 구매 등급 혜택도 종료했다. 11번가 관계자는 “직매입 익일배송은 고객 구매 만족도를 위해서도 필요한 서비스”라며 “계속 키워갈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