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담배 시장 1위 KT&G(033780)가 영업망 축소에 나섰다. 한때 전국 각지에 130곳이 넘는 지점을 두고 전국 일시 공급·판매라는 시장 장악력을 내세웠지만, 축소로 돌아섰다. 정보통신(IT) 기술 도입으로 직접 관리 수요가 줄었고, 무엇보다 자산 효율화를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
15일 담배업계에 따르면 KT&G는 올해 들어 영업본부 산하 지역 지사·지점을 대폭 폐지했다. 지난 2월 말까지 2개월 동안에만 부산과 충남 영업본부 지사 2곳, 그리고 남서울본부 등 수도권을 포함한 전국 지점 9곳 등 총 11곳 지역 의 지사·지점 문을 닫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로써 KT&G의 전국 영업조직은 14개 지역 영업본부 산하 102곳 지사·지점만 남게 됐다. 2013년 14개 지역본부에서 135개 지점을 갖췄던 것과 비교해 24% 줄었다. 회사 측은 그동안 꾸준히 효율화를 진행했다는 설명이지만, 작년만 해도 영업본부 지사·지점은 113곳이었다.
KT&G가 지역 영업망 축소를 통한 운영 효율화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당장 지점 폐지 시 임대료를 줄일 수 있는 동시에, KT&G 소유 건물은 임대로 전환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KT&G는 작년 대전 동구에 있던 충남본부 동대전지사를 서구 자사 건물로 이전하기도 했다.
KT&G 관계자는 "문을 닫은 지사나 지점의 건물은 일부 임대를 내 수익을 내고 있다"면서 "지난해 영업 현장에 주문 애플리케이션(앱)을 새로 도입, 유선과 직접 방문으로 진행했던 담배 판매점 재고량 파악 및 소요량 주문을 전환한 것도 이번 영업망 축소로 이어졌다"고 했다.
다만 업계에선 KT&G의 이번 영업망 대폭 축소에 지난해 말 시작된 행동주의 펀드의 공세가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KT&G는 지난 1월 약 4조원의 투자를 통한 매출 확대와 주주 환원 정책 개선을 꺼냈는데, 재원 확보의 일환으로 전국 영업망의 부동산을 택했다는 것이다.
실제 KT&G는 보스턴컨설팅그룹과 손잡고 진행한 시장 분석 및 투자 계획안 도출 과정에서 부동산의 적극적인 자산 유동화 검토를 포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2027년까지 신규 투자 3조원을 포함해 총 3조9200억원 투입을 밝혔는데, 영업활동만으로 충당이 불가능해서다.
KT&G의 연결 기준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연간 1조원을 웃돌지만, 연간 6000억원 이상의 배당을 해야 하는 만큼, 영업활동만으로는 비용 충당이 될 수 없는 상황이다. KT&G가 그동안 무차입 경영을 이어왔던 만큼, 부동산은 차입 규모를 줄일 수 있는 대안으로도 떠올랐다.
KT&G가 지사·지점 폐지 후 해당 부동산 매각에도 나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KT&G는 이미 담배와 KGC인삼공사를 통해 영위하는 건강기능 사업 외에 부동산 임대·운영 사업을 하고 있다. 전체 매출의 약 10% 규모로, 공동주택·오피스텔 분양사업 등도 추진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1998년 정부가 보유 지분 매각으로 2002년 완전 민영화한 KT&G의 핵심은 사실 지역 영업에 쓰이는 지사·지점 건물"이라면서 "KT&G 로고가 붙은 지역의 작은 건물이 거의 KT&G 소유로, 이를 포함한 부동산 장부 가치만 1조원을 넘는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선 KT&G의 영업망 축소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전국에 갖춘 광범위한 영업망과 영업사원들이 구축한 판매점주들의 유대 형성이 KT&G의 경쟁력으로 통했기 때문이다. KT&G는 이를 통해 신제품 전국 일시 공급 경쟁력도 갖춘 채였다.
실제 시장에선 KT&G가 후발주자로 뛰어든 궐련형 전자담배 시장에서 단시간 1위에 오른 이유도 전국 영업망이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발 빠르게 출시한 궐련형 전자담배 기기를 전국 담배 판매점에 깔고, 또 매대 진열 중심에 올리는 힘이 거대 영업조직에 나왔기 때문이다.
담배업계 한 관계자는 "KT&G는 해외 시장 공략을 통해 작년 5조9000억원 수준 매출을 2027년 10조원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내놨지만, 되레 국내 시장의 축소를 겪을 수 있다"면서 "전국 동시 출시를 하지 않은 전자담배 '릴 에이블'의 경우 경쟁사에 다시 밀리고 있다"고 말했다.
KT&G 관계자는 "택배 시스템 도입 등 비대면 영업시스템을 고도화해 둔 상태"라면서 "본사 영업본부 산하의 영업조직인 지사·지점 수는 감소한 게 사실이지만, 실제 판매점 및 판매점주 대상 영업 서비스는 기존과 동일하게 제공되고 있으며 인력 감축도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