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면세점들이 중국 보따리상(다이궁)에 지불하던 송객수수료를 일제히 삭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거치며 송객수수료가 40%대로 치솟자 '수수료 정상화'라는 고육지책에 나선 것이다.
7일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올해 1월 외국인 면세점 매출액은 5964억원으로, 지난해 12월(1조1804억원)과 비교해 반토막 났다. 매출이 급감한 이유는 주요 면세점들이 올해 1월부터 40%에 달했던 송객수수료를 20~30%대로 낮췄기 때문이다.
송객수수료란 면세점이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면세품을 소규모로 거래하는 다이궁에게 지불하는 수수료를 의미한다. 처음엔 중국 관광객인 유커를 유치하기 위해 여행사에 송객수수료를 지불해 왔으나, 2017년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사태, 2020년 코로나19 사태 등을 거치며 다이궁에게 지불하는 수수료가 40%대 후반까지 올라갔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지난 2016년 9672억원이던 송객수수료는 2021년 3조8748억원으로 4배 이상 급증했다. 지난해 송객수수료는 4조원을 넘은 것으로 추산된다. 작년 국내 면세점 매출이 17조8163억원임을 고려하면, 전체 매출의 22% 이상이 다이궁의 주머니로 들어간 셈이다.
면세점 업체 한 관계자는 "줄어든 송객수수료만큼 매출이 빠진 것"이라며 "이익이 안 나는데, 송객수수료가 무슨 의미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당장 매출이 줄더라도 시장의 정상화를 위해 매출 감소를 감내한다는 게 업계의 입장"이라고 전했다.
업계에 따르면 송객수수료 문제는 2017년 무렵부터 제기돼 왔다. 송객수수료가 1조원대로 치솟고, 업체들의 다이공 의존도가 커지자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그러다 코로나 사태 이후 면세점 실적이 곤두박질치고, 지난해 관세청이 신규 특허 심사 시 송객 수수료 절감 노력을 평가에 반영하기로 하면서 정상화 움직임이 본격화했다.
면세점의 주요 거래처인 글로벌 명품 업체들이 다이궁 문제를 지적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한 면세점 관계자는 "명품 업체들이 다이궁 문제를 심각하게 보면서, 한국 면세점의 이미지까지 나빠지고 있다"며 "이번 기회를 다이궁 의존도를 낮추는 기회로 삼고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 루이비통을 운영하는 프랑스 명품회사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지난 1월 실적 발표회에서 "일부 거래처들이 펜데믹(감염병의 대유행)에 많은 매출을 거두고자 해외에서 제품을 구매한 뒤 이를 중국에서 할인된 가격에 되파는 리셀러(재판매자)에게 물건을 파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며 다이궁과 한국 면세업체들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바 있다.
이 회사는 앞서 다이궁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시내 면세점이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린다며 부산롯데, 제주롯데, 제주신라 등 시내 면세점에서 루이비통 매장을 철수하고, 향후 공항 면세점에 집중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면세점들은 '탈(脫) 다이궁' 정책으로 내국인 모객과 해외 시장 개척에 공을 들이고 있다. 롯데면세점은 해외여행 수요 증가에 대비해 내국인 대상 프로모션을 확대한다. 이 면세점은 올해 1~2월 내국인 매출이 전년 대비 550% 증가했다.
또 해외 점포 확대에 집중한다. 올 상반기 중 임시 운영 중인 싱가포르 창이공항 면세점을 정식 개장하고, 6월에는 호주 멜버른 공항 면세점 운영을 시작한다. 하반기에는 베트남 하노이에 시내점을 열 예정이다. 이들 매장을 모두 열면 해외에서 총 15개 점포를 운영하게 된다.
신세계면세점도 내국인 고객 모객에 주력한다. 이 일환으로 이르면 6월 출시되는 신세계 그룹 유료 멤버십에 면세점 혜택을 추가한다.
신세계면세점 관계자는 "면세점은 이용 빈도가 낮기 때문에 타 유통 채널에 비해 충성도가 낮은 편"이라며 "백화점 및 그룹 계열사의 혜택과 엮어 내국인 록인(묶어두기) 전략을 시도할 방침"이라고 했다. 이와 함께 중국 왕훙(인터넷 유명)인과 태국 유명 연예인 등을 초청해 관광객 대상 마케팅에도 집중한다.
신라면세점은 업계 최초로 유료 멤버십 '신라앤'을 도입했다. 현재 3차에 걸쳐 회원을 유치했다. 회사 관계자는 "내국인 중심의 충성 고객 및 팬덤 창출을 위해 멤버십을 도입했는데 반응이 좋다"며 "글로벌 지불 결제 서비스 등을 도입해 돌아올 관광객을 위한 편의성도 높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진협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이 본격화되면서, 지난해까지 수요자 중심의 면세점 업황이 공급자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1~2월 업황은 면세점 사업자들이 진행하는 수수료율 축소 움직임에 따라 매출이 줄어들지만, 다이궁 보유 재고가 축소되고 현지 소비가 개선되는 시기에 다이궁의 리스토킹(재고 재축적)이 본격화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