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700억원을 투자 받고도 1150억원 규모의 적자를 낸 국내 에그테크(농업기술) 스타트업 그린랩스에 결국 투자사들이 전환사채(CB) 방식으로 500억원의 자금을 추가 수혈하기로 했다.
다만 창업자의 지분을 차등 감자(減資)하는 조건이 따라 붙었다. 그린랩스의 대규모 적자가 경영진의 경영실책과 일부 임직원의 부정에 따른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린랩스는 스마트팜 솔루션과 데이터를 기반한 농산물 도매유통업을 큰 축으로 하는 농업기술 스타트업이다. 작년 1월 170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면서 기업가치가 8000억원 가까이 올라 주목을 받았다.
6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고 고강도 구조조정에 들어간 그린랩스에 미국 블루런벤처스의 아시아투자 플랫폼 BRV캐피탈매니지먼트가 300억원, 스카이레이크가 200억원을 투자한다. 이같은 내용은 지난 3일 주주 협의에 따라 제안됐다. 8일까지 전체 주주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거치고 오는 9일 주주총회가 열릴 예정이다.
이에 따라 그린랩스가 3월 이후 연말까지 돌아오는 차입금을 상환하는 데 큰 무리가 없을 전망이다. 이 회사에 따르면 올해 그린랩스가 상환해야 할 차입금은 365억원이고 이 중 3월 이후부터 순차로 257억원을 상환해야 한다.
투자사들의 자금은 CB 형식으로 조달된다. BRV는 1회차(3월 10일)에 150억원, 2회차(6월 30일)에 150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스카이레이크는 1회차에 100억원, 2회차에 100억원을 투입한다. 만기는 2년이다.
IB업계 관계자는 "추가 투자유치나 기업상장(IPO) 등에 대비한 전환가 재조정(리픽싱) 조건을 마련, 이해관계자 전부가 동의한다면 추가 투자가 이뤄지게 된다"면서 "이번에 이뤄지는 CB투자를 제외한 나머지 투자는 모두 보통주로 전환되는 만큼 주주들도 고통 분담을 한다"고 했다.
이번 투자는 초기 창업자(신상훈·최성우·안동현) 중 2명 지분에 대한 차등감자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초기 창업자 최성우 대표의 감자 전 주식 수는 4만8917주(19.56%)지만 감자 후 주식 수는 4891주로 2.6%로 줄어든다. 최성우 대표는 옐로모바일의 중간지주사 옐로쇼핑미디어의 대표 출신이다.
안동현 대표는 1만7849주(7.13%)에서 0주로 감소한다. 경영 실책과 비위에 대한 책임을 묻는 조치다. 지분이 전부 사라진 안동현 대표는 모바일 핫딜 플랫폼 쿠차를 창업한 인물이다. 안 대표는 각자 대표로서 스마트팜 시행 등 사업 부문을 총괄했다. 최근 중부지방국세청은 도심형 스마트팜 신축·자재사업부문에서 시행사 등 다른 업체들 사이 자전거래와 가공세금계산서 등 수수 정황을 인지해 세무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창업자 3인방 중 신상훈 대표의 지분만 차등감자 대상에 들어가지 않았다. 신 대표는 그린랩스의 단독 대표를 맡고 회사를 이끌어나갈 계획이다. IB업계 관계자는 "차등감자는 오는 4월 15일 이전까지 완료될 것"이라고 했다.
그린랩스는 고강도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2월부터 희망퇴직 신청을 받기 시작했고 희망퇴직으로 인력 구조조정이 효율적으로 진행되지 않을 경우 4월 15일부터 정리해고에 들어갈 계획이다.
회사는 비용 절감을 위해 일차적으로 대표이사 급여를 삭감했고 법인카드 한도 감액, 직책 수당 폐지, 재택근무 식대를 폐지했다. 또 공유 오피스 사용을 중지하고 지난 1일부터 재택근무도 전면 폐지했다.
그린랩스 경영상황이 급격히 악화된 데는 무분별하게 사업을 확장하고 인프라를 강화하면서 비용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일부 임직원의 비위도 있었다.
그린랩스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사업을 확장하면서 무리한 데다가 채권시장이 얼어붙으면서 타격이 있었다"면서 "스마트팜을 건립하는 과정에서도 무분별한 대출이 이뤄지는 등 비위가 있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