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저녁, 서울 성동구 서울숲 일대의 한 건물. 멋지게 차려입은 젊은이들 사이로 래퍼 빈지노가 등장했다. 250여 명의 관객 중 상당수는 약속이라도 한 듯 ‘N’ 로고가 들어간 운동화를 신고 환호성을 질렀다.
이곳은 이랜드월드의 스포츠 의류·용품 브랜드 뉴발란스가 대표 운동화인 ‘990′의 6번째 시리즈 ‘990v6′ 출시를 앞두고 이날부터 19일까지 여는 팝업스토어(임시매장) 행사 현장이다.
1982년 처음 출시된 프리미엄 러닝화 990은 고유의 디자인과 기능성으로 40년간 정상을 지켰다.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등이 즐겨 신은 것으로 유명하다.
운동화 트렌드가 빠르게 변하는 와중에도 6차례에 걸쳐 업그레이드하며 정상을 지킨 이유는 정체성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많은 기업이 원가 절감을 위해 제3국으로 생산 이전을 추진했을 때도 뉴발란스는 ‘메이드 인 USA’를 고집했고, 여전히 990을 미국에서 만들고 있다. 20만 대 후반이라는 높은 가격대에도 ‘없어서 못 사는’ 신발로 인기를 끈다.
박상호 뉴발란스 마케팅 부서장은 “990은 뉴발란스를 상징하는 신발이자, 브랜딩을 책임지는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뉴발란스는 국내에서 지난해 연 매출 7000억원을 돌파했다. 2020년 연 매출 5000억원, 2021년 6000억원으로 매년 1000억원씩 외형을 키우며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백화점에선 이미 지난 2021년 뉴발란스가 나이키에 이어 국내 스포츠 시장 2위를 지켰던 아디다스의 매출을 제친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해엔 뉴발란스가 전체 매출로도 아디다스를 넘어 업계 2위를 수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뉴발란스는 2008년 이랜드월드가 미국 본사와 국내 독점 계약을 맺으며 판매를 시작했다. 당시 연 매출은 250억원 수준이었으나, 14년 사이 30배 가까이 성장했다. 같은 기간 매장 수는 84개에서 370개로 늘었다.
2014년 매출 4000억원대에 진입한 이후 한동안 성장 그래프가 둔화했으나, 2020년부터 성장 속도가 다시 가팔라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도 급성장한 이유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 1980~2004년생) 사이에서 뉴발란스 운동화가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뉴발란스 전체 매출에서 운동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60%에 달한다. 지난해 운동화 상품군의 매출이 전년 대비 35% 증가했다.
회사 측은 한정판 운동화를 수집하는 마니아 시장은 물론 대중화 시장까지 장악한 것이 성장을 이끌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뉴발란스의 한정판 운동화를 추첨 판매하는 래플(Raffle) 이벤트에 응모한 고객은 230만 명에 달했다. 530, 480 등 100만 족 이상 팔린 모델도 다수였다.
박 부서장은 “운동화 시장의 트렌드 주기가 짧아지고 있지만, 뉴발란스의 인기는 5년째 이어지고 있다”며 “운동화 마니아와 대중을 두루 만족시킨 것이 성장 흐름을 지속한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아동, 여성 상품군 등 카테고리를 확장한 전략도 주효했다. 국내에서 기획되는 뉴발란스 키즈는 지난해 매출 1500억원으로 국내 아동복 시장 1위를 점하고 있다.
전 피겨 스케이트 선수 김연아를 모델로 내세워 출시한 여성 상품군도 레깅스 열풍 등을 주도하며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갔다. 지난해에는 속옷과 골프화 등의 상품군을 추가했다.
올해는 각 카테고리의 역량을 강화해 성장세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신발의 경우 100만 족 이상 판매되는 히트 상품을 지속 배출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574가 부활할 조짐을 보인다. 574는 2009년 가수 이효리가 착용하면서 주목받은 후 현재까지 450만 족 이상 판매된 ‘국민 운동화’다.
온라인 판매도 강화한다. 지난해 뉴발란스 공식 온라인 쇼핑몰의 매출은 1000억원을 넘어섰다.
박 부서장은 “밀리언셀러가 됐다는 건 주 고객인 20~30대 10명 중 1명이 신었다는 걸 의미한다”며 “프리미엄 상품군인 990을 위시한 다양한 마케팅으로 마니아와 대중을 균형 있게 공략해 매출 1조원까지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