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현대백화점 아트콘텐츠팀장(수석)이 지난달 30일 무역센터점에서 열린 '프리다 칼로 사진전'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현대백화점

서울 여의도 더현대서울 6층에 위치한 복합문화예술공간 알트원(ALT.1)은 오는 4일 개막하는 ‘다비드 자맹’ 전시 준비로 한창이다. 프랑스 태생의 다비드 자맹은 ‘현대미술계의 감정술사’라는 별명을 지닌 작가로, 입장권 판매와 동시에 전시 예매 사이트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알트원은 2021년 2월 더현대서울 개장과 함께 개관한 미술품 전시 공간이다. 그동안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 사진작가 테레사 프레이타스 등 6개 전시로 누적 관객 60만 명을 동원했다.

백화점 안 미술관이지만, 최근엔 미술 전문 전시관으로 자리를 잡는 모양새다. 오는 5월 프랑스 3대 미술관과 협업해 개막하는 전시의 경우 국내 대형 전시관과 경쟁을 벌인 끝에 알트원에서 열기로 최종 확정됐다.

알트원 기획을 총괄한 이해찬 현대백화점(069960) 문화콘텐츠팀장(수석)은 “기존의 미술 전시장은 목적성을 가진 관람객이 많지만, 알트원은 쇼핑하다가 전시장을 찾는 관람객이 많다”라며 “백화점 내 조성돼 접근성이 우수하다는 이유로 전시 업계에서도 주목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이 수석은 2002년 현대백화점에 입사해 마케팅 관련 업무를 담당했으며, 2021년부터 문화콘텐츠 팀을 이끌고 있다. 현대백화점의 문화와 예술, 이벤트 등을 기획하는 그는 ‘알트원’이라는 이름을 지은 작명가이기도 하다. 알트원은 ‘예술은 삶을 한 단계 더 나아가게 한다(Art Makes Life Take 1 step forward)’는 뜻을 담고 있다.

조선비즈는 지난달 30일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서 이 수석을 만나 현대백화점의 아트(예술) 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난해 더현대서울 알트원에서 열린 패션 사진 전시 '매직샷' 전경. /현대백화점

현대백화점의 아트 사업의 역사는 얼마나 되나.

“현대백화점은 1985년 압구정 본점 개점 당시 현대갤러리를 열며 미술품 전시에 뛰어들었다. 경쟁사에 비해 시작은 늦었지만, 이탈리아 천재 화가로 불리는 모딜리아니 전시를 선보일 만큼 미술 업계에선 전문성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얻었다.

2021년 더현대서울에 개관한 업계 최대 규모(약 1157m²)의 전시장 알트원을 포함해 현재 전국 10여개 점포에서 전시 공간을 운영 중이다. 지난해에는 한국화랑협회와 업무협약(MOU)을 맺고 국내 최대 미술 장터인 키아프(한국국제아트페어·Korea International Art Fair) 서울을 공식 후원했다.”

유통업체가 아트 사업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현대백화점그룹의 미션이 ‘고객을 행복하게, 세상을 풍요롭게’다. 아트 사업도 여기서 출발한다. 물리적인 풍요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풍요를 추구하는 것이 인류(고객)의 최대 관심사이며, 이에 문화와 예술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관련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고객의 ‘행복’을 위해 아트 사업을 한다니, 자세한 설명을 해달라.

“현대백화점은 영업전략실 내에 행복을 연구하는 테스크포스(TF)를 꾸리고, 서울대 행복연구센터와 행복을 정량화해 서비스에 적용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조사 결과 고객들이 백화점에서 느끼는 행복한 감정은 10가지가 있는데, 우수 고객(VIP) 집단일수록 예술적 경험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고객의 윤택한 삶의 방식을 지원한다’는 비전으로 관련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물론 VIP만을 대상으로 하는 건 아니다. 백화점의 전 공간에서 문화와 예술적 감성을 체험할 수 있는 콘텐츠를 제안해 고객을 만족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일년에 두 번 현대백화점 판교점에서 진행되는 예술 작품 전시·판매 행사인 '아트 뮤지엄'. /현대백화점

특히 더현대서울의 알트원이 존재감이 돋보인다.

“알트원은 개관 2년 만에 60만 명 이상의 방문객을 동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기간 열었지만, 많을 땐 하루에 6000명이 방문할 만큼 인기를 끌었다. 더현대서울 설계 당시부터 미술품 전시가 가능한 공간으로 구성했지만, 이렇게 큰 반응을 얻으리라 예상하진 못했다. 내부적으로 알트원을 기점으로 현대백화점의 아트 사업도 전환기를 맞았다고 판단한다.”

알트원이라는 이름을 직접 지었다고?

“일주일 정도 고민한 끝에 만든 이름이다. 예술은 삶을 한 단계 더 나아가게 한다는 의미 외에도 키보드 자판 ‘알트(alt)와 다른 탭을 누르면 다른 창이 열리듯, 변화무쌍하게 새로운 세계로 가자는 뜻을 담았다. ‘예술(Art), 삶(Life), 기술(Tech)’을 의미하기도 한다.

초기엔 더현대서울의 집객을 위해 조성됐지만,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만큼 전문 전시 공간으로서 위치를 확보할 계획이다. 전시 내용도 기존엔 소위 말하는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좋은)한 전시가 주를 이뤘지만, 명화 등을 유치해 격을 높일 방침이다.”

미술 작품도 판매 중이다. 성과는 어떤가.

“미술 장터인 아트페어와 아트 뮤지엄 등을 연간 10회 열고 있는데, 지난해 총 40억원가량의 매출을 거뒀다. 작품명을 밝힐 순 없지만 3억원짜리 작품이 거래되기도 했다. 미술품을 판매하는 온라인 플랫폼도 운영 중인데,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10배 이상 성장할 만큼 꾸준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5월 대구점에서 '국제대구아트페어(iDaf 22) 프리뷰 인 더 현대' 전경. /현대백화점

유통업계의 아트 사업 경쟁이 치열하다. 현대만의 차별화 전략은 무엇인가.

“누군가 A사는 세일즈(판매)가 잘 되는 작품만 다루고, B사는 전시 품질이 들쭉날쭉하고, 현대는 좋은 작품은 많은데 홍보를 못 한다고 평하더라 (웃음).

아무래도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이 미술품 판매보다 전시, 도서관 운영 등을 통한 문화 저변 확대여서 그런 말이 나온 거 같다. ‘행복’과 ‘풍요’를 지향하는 그룹의 미션에 맞춰 미술품 판매보다는 고객과 ‘향유’하는 걸 목적으로 두고 있다.

판교점에 조성된 현대어린이책미술관(MOKA), 산업 디자이너 하이메 아욘과 함께 꾸민 현대프리미엄아울렛 스페이스원과 더현대대구점의 문화·예술 공간 등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유통 사업에서 아트의 역할은 무엇일까?

“명품의 끝이 리빙이라면, 화룡점정은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일각에선 백화점의 역할이 바뀌었다는 말도 나오는데, 백화점은 그 시대의 가장 새로운 콘텐츠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과거엔 그것이 상품이었다면, 지금은 문화와 예술로 바뀐 것뿐이다. 앞으로도 문화·예술에 대한 고객 니즈(요구)가 확대될 것으로 보고, 관련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향후 목표는?

“알트원의 경우 대관 사업을 확대해 예술의전당,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전문 미술 전시관으로 키울 방침이다. 다행히 전시 업계에서도 알트원의 시설과 소비자 접근성 등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공개하긴 이르지만, 오는 5월엔 프랑스 3대 미술관과 협업한 명화 전시도 선보일 예정이다.

백화점 전 점포를 활용해 문화와 예술을 경험하는 공간을 선보일 계획도 갖고 있다. 최근 오프라인 유통에서 브랜드 팝업스토어(임시공간)가 화제를 모으고 있는데, 점포 내 유휴 공간을 활용해 휴식과 문화를 즐기는 팝업 공간을 꾸밀 예정이다. 또 더현대서울의 프리미엄 문화센터인 ‘CH1985′ 등을 통해 갤러리 투어, 아트 테크강좌 등 관련 콘텐츠도 확대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