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업 경제’가 유통업계의 성공 전략으로 떠오르고 있다. 불황의 장기화 시대, 고객이 몰입할 수 있는 팝업스토어(임시 매장)를 열어 화제를 도모하는 전략이 상시화된 것이다. 소비자들은 왜 팝업스토어에 열광하는 걸까? 기업들은 팝업 열풍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조선비즈는 ‘팝업의 시대’를 사는 유통인들을 위해 4편에 걸쳐 그 해답을 찾아본다. [편집자 주]

그래픽=손민균

“아침부터 달려갔는데 케이크는 품절… 인증 사진만 건졌다.”

대학생 김유민씨는 새해 첫 인스타그램 게시물로 대형 토끼 조형물과 찍은 사진을 올렸다. 디저트 브랜드 누데이크가 걸그룹 뉴진스와 함께 출시한 한정판 케이크를 사러 갔으나, 실패했다는 글도 덧붙였다. 김씨는 “요즘 인스타 피드(Feed)에 많이 보이길래 다녀왔다”며 “팝업스토어가 끝나기 전에 뉴진스 케이크를 사러 다시 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임시 소매점을 일컫는 팝업스토어가 핫플레이스(명소)로 부상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주춤했던 야외 활동이 폭증하면서 몰입도가 높은 팝업스토어가 새로운 놀이터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짧게는 하루, 길게는 1년 이상 운영되는 팝업스토어는 최근 유통기업들에 빼놓을 수 없는 마케팅 전략이 됐다. 명품, 패션, 뷰티, 식품 기업은 물론 백화점과 편의점 등 전통 유통 채널도 팝업스토어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더현대서울은 올해 팝업스토어 입점 스케줄이 거의 찼을 정도다.

◇침대 회사도 백화점도… 팝업스토어 전성시대

팝업스토어란 짧은 기간 운영되는 오프라인 소매점을 뜻한다. 미국 대형할인점 타겟(TARGET)이 2002년 진행한 임시매장이 성공한 후 다른 기업들이 벤치마킹하면서 번졌다. 국내에서는 2009년 무렵부터 확산되기 시작해 유통업계를 중심으로 도입하는 사례가 늘었다.

코로나19로 주춤했던 팝업스토어는 지난해 엔데믹(풍토병화)을 기점으로 더 진화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과거 팝업스토어가 ‘특정 기간 제품을 판매하는 임시 매장’이라는 개념으로 통용됐다면, 최근엔 ‘한정된 기간 특별한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의미가 확장됐다.

지난해 8월 열린 더현대서울 뉴진스 팝업스토어에 입장하기 위해 대기 중인 사람들. /조선DB

시몬스의 그로서리스토어가 대표적이다. ‘침대 없는 침대 광고’로 유명한 시몬스가 지난해 2월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개장한 팝업스토어로, 디지털 전시장과 식료품점을 모방한 기념품(굿즈) 판매점, 햄버거 가게 등을 들였다. 침대를 전시하거나 팔지는 않지만 문을 연 지 두 달 만에 2만5000여명이 찾았다. 인스타그램에는 2만5000건이 넘는 게시물이 쌓였다.

김성준 시몬스 브랜드전략기획부문장(부사장)은 “MZ세대(밀레니얼+Z세대, 1980~2004년생)가 브랜드를 경험하는 공간으로 그로서리스토어를 만들었다”며 “고객 접점을 늘리고 팬덤을 구축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49년 역사를 지닌 가나초콜릿이 지난해 4월 서울 성수동에 문을 연 ‘가나초콜릿 하우스’는 한 달여의 운영기간 1만명 이상이 방문했다. 사전 예약제로 운영한 ‘나만의 초콜릿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은 대기자가 200명이 넘을 만큼 인기를 끌었다.

백화점도 팝업스토어 모객에 한창이다.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더현대서울은 지하 2층 공간에 팝업스토어 3곳을 운영한다. 지난해에만 200여개 브랜드의 팝업스토어가 열렸다. 디스이즈네버댓, 쿠어 등 패션 브랜드부터 걸그룹 뉴진스, 트와이스의 팝업스토어도 진행됐다. 지난해 8월 운영한 뉴진스 팝업스토어의 경우 20일 동안 1만7000여명이 방문했다. 매장 입장을 위해 6시간을 기다린 팬도 있었다.

프랑스 명품 디올이 서울 성수동에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유리 온실 모양의 매장. /디올

이외에도 명품 브랜드 디올은 서울 성수동에 유리 온실 모양의 팝업스토어를, 샤넬은 바다 건너 제주에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젠틀몬스터, 원소주, 메타, 펭수 등도 개성 있는 팝업 매장으로 고객들을 줄 세웠다.

◇팝업스토어+핫플레이스=팝플레이스

현대차그룹 마케팅전략연구소인 이노션인사이트의 김나연 그룹장은 팝업스토어를 일상에서 즐기는 일종의 ‘놀이’로 봤다. 그는 저서 ‘친절한 트렌드 뒷담화 2023′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고 일상이 회복되면서 팝업스토어가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부상하고 있다”며 팝업스토어를 ‘팝플레이스(팝업스토어+핫플레이스)’라고 명명했다.

팝업스토어에 열광하는 이들은 10~20대에 집중된다. 이노션인사이트그룹에 따르면 2021~2022년 사이 팝업스토어에 대한 연령대별 검색량은 20~24세, 25~29세, 13~19세, 30~34세 순으로 증가했다. 성별은 여성이 69%, 남성이 31%로 2배 이상 많았다.

그래픽=손민균

이들은 팝업스토어와 함께 사진, 공간, 카페, 경험, 전시, 포토존 등의 단어를 언급했다. 실제 사진 인증 소셜미디어(SNS) 플랫폼인 인스타그램에서 팝업스토어 관련 게시물은 38만 개에 달한다. 취향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SNS에서 팝업스토어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것은, 팝업스토어가 ‘나’를 표현하는 매력적인 수단으로 젊은이들에게 인식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일부 팝업스토어는 미리 예약하거나 긴 시간을 대기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 이에 인스타그램에는 팝업스토어 소식을 공유하는 계정도 등장했다. ‘팝업스토어가자 팝가(@popupstorego)’의 경우 구독자 수가 1만2000명이다.

◇‘리테일 미디어’로 진화한 팝업스토어… 발신자가 된 소비자

빅데이터 전문가인 송길영 바이브컴퍼니 부사장은 팝업스토어가 부상하는 추세를 ‘리테일 미디어’의 등장으로 진단했다. 매체가 다양해지고 구매 행위가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오프라인 매장이 판매 창구에 머무르지 않고 브랜드의 정신과 경험을 알리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팝업스토어를 단순히 제품 판매의 창구가 아니라 ‘브랜드(기업) 정신의 발신지’로 봐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송 부사장은 “매장을 방문한 사람은 자신이 느낀 감정을 본인의 매체를 통해서 전달한다”며 “따라서 기업들은 매장 방문객 수가 몇 명인가 보다 그들이 SNS에서 가진 영향력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GS25의 플래그십스토어(대표 매장) 도어투성수 매장에서 선보인 뵈르비어(버터맥주) 팝업스토어를 찾은 방문객들. /GS리테일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도 상업 공간을 ‘매체’라고 정의하며, 고객 경험을 연출하는 ‘공간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를 예로 들어 “혁신적인 공간에서 감성적으로 자극받은 소비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자발적으로 퍼뜨리도록 바이럴(Viral)을 활성화함으로써 브랜드의 자본력을 높였다”라고 평가했다.

이를 조합하면 팝업스토어는 경험 경제를 구현한 공간으로 볼 수 있다. 경험 경제를 설파한 제임스 길모어와 조지프 파인은 “재화와 서비스의 홍수 속에서 비즈니스를 차별화하는 힘은 경험을 연출하는 것”이라고 했다. 경험 경제에서 판매자는 연출가로서 기능이나 혜택을 뛰어넘는 놀라운 경험을 줘야 한다.

하지만 팝업스토어가 범람하는 시대, 팝업스토어를 만드는 것만으로 고객을 끌어모으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이유로 팝업스토어 컨설팅을 전문으로 하는 플랫폼도 성행한다.

송 부사장은 “처음엔 시도만으로 가치가 있었지만, 시도가 반복되면 밀도 싸움으로 가야 한다”며 “발신자가 된 소비자들은 브랜드 정신을 어떻게 담고, 어떤 작가와 협업하고, 어떤 카페를 들이느냐 까지 살펴본다”고 했다. 더 깊은 고객 경험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온라인이나 가상공간으로 팝업스토어를 확장해 시너지를 꾀하는 방법도 주목된다. 젠틀몬스터는 지난해 3월 팝업스토어 ‘젠틀 가든’을 열기 한 달 전 모바일에서 동명의 게임을 선보여 이목을 끌었다.

김 교수는 “유통기업들은 오프라인에서 제공했던 고객 경험을 가상공간이나 메타버스에서 새롭게 각색해 고객에게 보여줘야 하는 시대를 맞고 있다”며 “향후 기업들은 가상경제와 이어지는 메타커머스를 완성해 고객의 경험 몰입도를 극대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