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조선비즈와 만난 최재붕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 /김은영 기자

"메타버스는 미래를 여는 열쇠다."

최재붕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지난달 28일 조선비즈와 만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가 인류의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며 "인류가 선택한 표준 문명인 디지털 생태계인 메타버스에 빠르게 올라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작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에서 스마트폰을 신체의 일부처럼 쓰는 디지털 신인류의 등장을 조명해 '문명을 읽는 공학자'라는 별명을 얻은 최 교수는 최근 출간한 저서 '메타버스 이야기'에서 "산업 생태계의 전환이 늦어지면 디지털 신대륙의 진출 경쟁에서 뒤처지게 된다"고 했다.

그가 보기에 메타버스는 현실 세계와 가상의 디지털 세계가 혼재된 현재 인류의 생활 터전으로, 이미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이자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미래의 땅이다.

실제 세계 10대 기업 중 5개 기업(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알파벳(구글), 메타(페이스북), 엔디비아)이 메타버스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고, 페이스북은 아예 메타버스로 돈을 벌겠다며 사명을 메타(Meta)로 바꿨다.

이들이 주목하는 것은 메타버스를 지배하는 Z세대(1995년 이후 출생자)다. 로블록스, 제페토, 마인크래프트 등 소위 아바타를 중심으로 가상 현실 속에서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의 80%가 25세 이하다.

최 교수는 "메타버스 기술이 아니라 메타버스 세계관이 초래할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며 "지금은 과거처럼 세계 최초 기술로 성공하는 게 아니라 애플이나 테슬라처럼 제품과 서비스를 결합시켜 '좋은 경험'을 제공해야 성공하는 시대"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코로나19 이후 '표준'이 달라졌다고.

"코로나 기간 인류가 감염을 피해 디지털 신세계로 피신하면서 디지털 문명의 대전환이 빠른 속도로 일어났다. MS 분석에 따르면 코로나 이전과 비교해 코로나 이후 20배 속도로 디지털 전환이 이뤄졌다. 불가능하리라 여겨졌던 재택근무, 원격교육, 원격 의료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강제로 경험하게 된 디지털 문명이 일상을 바꾼 계기가 된 것이다.

내가 알고 있던 일상과 정상, 표준이 모두 바뀌는 뉴노멀(새로운 표준)이 시작됐다. 단지 스마트폰을 잘 쓴다, 못 쓴다의 문제가 아니라 문명이 통째로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 사실 외부로부터의 충격에 의해 '강제된' 변화는 인류의 본능이다. 누가 뭐래도 인류가 선택한 표준 문명은 디지털 신세계다."

지난 7월 삼성전자가 메타버스 플랫폼 로블록스에 선보인 '삼성 스페이스 타이쿤',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타이쿤) 형식을 활용해 참가자들이 우주에서 외계인 캐릭터와 삼성전자 제품을 직접 생산하고 아이템으로 즐길 수 있는 가상공간이다. /삼성전자

-메타버스는 무엇이고, 왜 갑자기 주목받게 됐나.

"메타버스란 우리가 살고 있는 땅 위의 현실 세계와 가상의 디지털 세계가 혼재된 현재 인류의 생활 터전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미 디지털로 거래하고, 근무하고, 교육하고, 대화하고, 삶의 기록을 남기는 메타버스 시대에 살고 있다.

많은 이들이 메타버스 하면 증강현실(AR) 안경부터 떠올리지만, 그건 새로운 경험을 만들기 위한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메타버스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 컴퓨터-인터넷-스마트폰 혁명의 연장선에서 전개되는 디지털 신대륙의 확장으로 이해해야 한다.

원래 있던 기술이 갑자기 주목받게 된 이유는 과거에 전문 영역에서만 사용되던 메타버스 기술이 오늘날 플랫폼을 중심으로 융합되면서 거대한 생태계를 형성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특히 메타버스는 Z세대를 중심으로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다. 로블록스, 제페토, 마인크래프트 등 아바타를 중심으로 가상 현실 속에서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의 80%가 25세 이하다. 이들이 자라나면 결국 메타버스가 대세가 될 것이기에 애플, MS, 알파벳, 메타 등 세계 최고 기업들이 투자에 나선 것이다."

-메타버스 산업을 신기루나 거품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최근 메타의 실적이 부진하고 주가가 떨어지니 망했다고 하는데, 이걸 메타버스가 망한 거라고 판단해선 안된다. 물론 망하는 곳들도 많을 것이다. 얼마나 성공을 거둘지 나도 의문이다. 분명한 건 인류는 이미 국경 없이 디지털과 땅이 혼재된 초월적인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TV 대신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보고, 은행 업무도 디지털로 한다.

일각에선 메타버스를 게임으로 치부하는 경향도 있지만, 제페토에서 아바타의 옷을 만드는 크리에이터 렌지는 월 1500만원 이상의 수익을 벌고, 메타버스 창업 오피스 게더타운은 1년 만에 2조원 가치의 기업이 됐다. 메타버스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창의성을 확장한 결과 부를 창출하게 된 것이다.

문명이 뒤바뀌는 시기는 필연적으로 위기를 초래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된다. 우리가 인류 문명의 대전환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메타버스 시대엔 세계 최초 기술이 아니라 좋은 경험의 창조가 필요하다고 했다. '좋은 경험'이란 무엇인가.

"스티브 잡스는 2010년 아이패드를 출시하면서 '우리는 기술만으론 부족했다. 그래서 기술에 인문학과 인간성(Humanity)을 결혼시켰더니 비로소 소비자의 심장이 노래하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애플의 아이폰과 삼성의 갤럭시는 기술 면에서 큰 차이가 없지만, 애플 유저들은 더 비싼 값을 지불하고 아이폰을 산다. 이유는 애플 제품만이 가진 '느낌적인 느낌' 때문이다. 애플은 포장을 제거하는 과정부터 사용 단계까지 압도적인 경험을 선사하고자 집착했고, 그 결과 수많은 팬을 양산했다.

하지만 우리 기업들은 카메라 화소수를 늘리고 배터리 수명을 늘리는 기술에만 집중해 왔다. 경험의 주인은 인간이다. 제품의 경험을 디자인하고 판매하려면 소비자 중심으로 모든 전략을 바꿔야 한다.

다행히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삼성전자는 올해 대규모 조직개편을 단행하면서 기존의 IT모바일 부문, 소비자가전 부문을 DX(Device eXperence) 사업부, 즉 제품 경험 사업부로 통합했다.

단순히 하드웨어를 만들어 파는 게 아니라 좋은 경험을 창조하고 팔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는 디지털 문명 시대에 맞는 현명한 선택이라 볼 수 있다. 좋은 경험을 만들고 팬덤을 창조해야 미래가 열린다."

2016년 6월 유튜브에 업로드된 아기상어 영상은 현재 조회수가 118억 회가 넘는다. 최 교수는 메타버스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대중(소비자)에게 선택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튜브 캡처

-대중의 선택을 받는 게 중요하겠다.

"콘텐츠 스타트업이던 더핑크퐁컴퍼니가 만든 '아기상어'의 유튜브 조회수가 118억 회다. 왜 아이들은 디즈니를 안 보고 아기상어를 볼까? 또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에 왜 전 세계가 열광할까?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그들의 자발적 선택이다.

대제불가토큰(NFT) 시장도 메타버스 플랫폼도 모든 결정권은 소비자의 선택에 달려있다. 예전엔 물건을 하나 팔려면 강력한 오프라인 유통망에 잘 보여야 성공할 수 있었다. 그래서 수십 년간 구축된 시스템은 강력한 권력이 됐고, 그걸 잘 이용하는 능력이 필수였다.

그러나 디지털 문명으로 전환하면서 중앙집중형 권력 시스템은 해체되고, 모든 권력이 소비자에게로 이동하고 있다. 지금의 소비자는 통제할 수 없고, 취향도 다양하다. 문화를 경험하는 데 있어 장벽도 없다.

얼마 전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으로 에미상을 받은 배우 이정재가 수상 소감으로 '콘텐츠 산업에서 언어의 장벽이 없어진 것 같다'라고 했는데, 내가 보기에 그 말은 틀렸다. 문화를 소비하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 1980~2004년생)가 언어의 장벽이 없어진 것이다.

소비자가 왕이 되고 소비자의 마음을 살 수 있는 것이 생존의 조건이 되는 사회로의 진화, 그것이 디지털 문명 생태계가 나아갈 방향이다."

-유통기업들은 어떻게 기회를 찾아야 할까?

"좋은 문화를 경험하게 하고, 커뮤니티 기반의 팬덤을 일으킬 수 있는 소비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가수 박재범이 만든 원소주가 좋은 예다.

박재범은 오랜기간 팬들과 소통하며 전통주를 만들겠다고 했고, 한정판 2만 병을 온라인으로 판매해 40초 만에 매진시켰다. 이후에도 끊임없이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마케팅을 벌여 주류 시장에서 사세를 키웠다.

무신사가 내놓은 일명 '유아인 바지'도 절대적인 팬덤을 기반으로 50만 벌 넘게 팔았다. 이 바지 하나에 달린 댓글만 11만 개다. 지금 온라인 소비자들은 우호적인 댓글의 수가 많은 제품을 구매한다.

이는 웹3.0의 개념과도 통한다. 웹3.0은 본질적으로 참여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시스템이다. 예컨대 한 패션 브랜드가 NFT 3만 개를 발행했다면, 3만 명의 팬이 확보된다.

이들을 대상으로 상품을 할인해 주고, 오프라인 이벤트에 초청하고, 신상품을 출시할 때 투표로 정하는 권한을 주면 어떨까?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올라가고, 직접 팬덤을 만들고 홍보하는 기회까지 얻게 될 것이다."

-메타버스와 같은 신기술은 잠재력과 부작용이 공존한다. 이를 수용함에 있어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게 좋을까.

"우버와 에어비앤비와 같이 규제만 할 게 아니라, 미래에 방향을 두고 공존하며 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닥칠 자율주행 시대, 하우스 공유의 시대를 준비할 수 있다. 지금이라도 가상자산, 블록체인 금융을 준비하지 않으면, 결국 앞선 해외 기업들에 우리 시장을 내어줄 수밖에 없다.

부작용이 강조되는 이유는 기존의 권력을 가진 기득권들이 미래로 가길 두려워 하기 때문이다. 뉴노멀은 말 그대로 모든 표준의 변화를 의미한다.

'코로나가 끝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겠지'라는 생각은 안일하다. 이미 인류는 팬데믹을 겪으며 불가역적인 디지털 문명을 맛봤다. 모든 변화의 데이터는 인류의 자발적 선택의 결과다. 새로운 문명의 선상에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지난달 28일 조선비즈와 만난 최재붕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 /김은영 기자

-메타버스 시대에도 양극화가 발생할 거라 진단했다.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면.

"IT 산업이 발전하면서 디지털 양극화가 심화된 것처럼 메타버스 세상은 준비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엄청난 차별을 가할 것이다. 이것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함께 준비하고, 함께 공부하는 것뿐이다.

예컨대 소매 점포에 키오스크가 보편화되면서 고령층을 중심으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이 경우 키오스크 자체가 잘못된 게 아니라, 키오스크의 디자인이 잘못된 거다. 디지털이 표준 문명이라면, 고령자들도 사용하기 쉽게 직관적으로 만들고 그들을 대상으로 시험해야 하는데, 젊은 층을 대상으로 보기 좋은 기기를 만드니 문제가 생긴 것이다.

디지털 양극화는 사회 전반의 디지털 역량을 끌어올려야만 해결할 수 있다. 새로운 표준 문명에 맞춰 불편한 사람들이 없도록 동반성장을 이뤄내야 한다. 새롭게 정의된 표준 문명에 맞춰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야 한다."

-향후 소비재 기업이 갖춰야 할 리더십은.

"플랫폼 경제가 대세지만, 누구도 플랫폼을 강요한 적은 없다. 사람들이 써보고 좋으니까 그게 플랫폼이 된 것이다. 소비재 기업 역시 소비자들의 자발적 선택을 끌어내야 한다.

승부처는 경험을 디자인 하는 것이다. 메타버스 플랫폼이라는 기술을 공부할 게 아니라 거기서 뛰어 노는 사람을 연구해야 한다. 지금의 젊은 세대가 이끄는 소비 문화 방식과 커뮤니티 활동, 그들이 유행을 일으키거나 좋아하는 것들을 잘 학습한 기업이 결국 그 세대를 잡아 미래를 바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