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공룡 쿠팡과 식품공룡 CJ제일제당이 '갑질' 공방을 벌이고 있다. /각 사

식품공룡 CJ제일제당(097950)과 유통공룡 쿠팡이 ‘갑질’ 공방을 벌이고 있다. 통상 소매 시장에서 유통업체는 ‘갑’, 식품업체는 ‘을’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번엔 양사 모두 서로를 갑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쿠팡은 최근 햇반과 비비고 만두, 김치 등 CJ제일제당의 일부 상품 발주를 중단했다. 현재는 쿠팡에서는 햇반을 구매할 수 있지만, 재고가 소진되면 살 수 없다. CJ제일제당은 쿠팡에 햇반과 만두 등 총 1000여 개 품목을 납품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쿠팡이 과도한 마진율을 요구하다 받아들이지 않자, 일방적으로 상품 발주를 중단했다”라고 주장했다.

반면, 쿠팡은 “CJ제일제당이 연초부터 여러 차례 공급가 인상을 요구하고, 약속 물량의 절반만 공급하자 내년도 마진율 협상에 이견이 발생하면서 일부 상품의 발주를 중단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일방적으로 전 상품의 발주를 중단했다는 CJ제일제당 측의 주장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쿠팡 “CJ제일제당 공급가 15% 올려줬는데 납품률은 50%”

앞서 CJ제일제당은 올해 각종 원부자재 가격 및 물류비 상승을 이유로 햇반과 비비고 등 주요 제품의 가격을 인상했다. 2월에는 고추장·된장·쌈장(9.5%), 비비고 만두(5~6%), 3월엔 햇반(7~8%), 4월엔 냉동 피자(약 10%), 5월엔 김치(11%)의 가격을 올렸다.

쿠팡은 “올해 CJ제일제당의 공급가 인상 요청을 수용해 작년보다 평균 공급가를 전년 대비 15% 올려줬다”며 “백설 콩기름의 경우 지난해에만 140%를 올렸다”라고 했다.

이에 CJ제일제당은 “공급이 중단된 햇반의 경우 올해 가격을 한 차례 올렸을 뿐 수 차례 가격을 인상하지 않았다”라며 “쿠팡 뿐만 아니라 모든 유통사에서 공급가를 올렸기 때문에 문제 될 게 없다”고 설명했다.

쿠팡 등 유통업계에 따르면 이번 발주 중단의 원인은 공급가 마진율 협상 결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CJ제일제당 측이 쿠팡과 약속한 발주 물량을 보내지 않으면서 신뢰 관계가 허물어졌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CJ제일제당은 올해 쿠팡이 주문한 물량의 50~60%만 납품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외 여건상 주문량 만큼의 생산이 어려워 공급에 차질이 있었다는 게 CJ제일제당 측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 CJ제일제당과의 거래상 손실을 본 쿠팡은 오뚜기 등 타 식품 제조사들이 납품률을 90% 이상 유지하는 것을 들어 지난 10월 CJ 측에 입고율을 개선해 달라고 요구했다. CJ 측이 번번이 약속한 물량을 입고하지 않으면서 물류센터 공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손실이 생겼다는 게 쿠팡 측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CJ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쿠팡 측은 거래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해 CJ에 내년도 마진율을 인상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CJ 측은 거래하지 않겠다고 맞섰고, 이에 쿠팡은 햇반 등 주요 상품의 매입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식품공룡 vs 유통공룡 ‘갑을 공방’에 피해 보는 소비자

CJ제일제당 관계자는 “발주 물량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은 햇반 등 일부 품목에 대한 얘기”라며 “올해 햇반은 판매량이 크게 늘면서 생산량이 발주량에 미치지 못해 대부분 유통 채널에 공급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쿠팡의 경우 타 채널에 비해 발주량 대비 공급량 비율이 높은 편이라는 게 이 관계자의 주장이다.

그러나 쿠팡 사정을 아는 한 관계자는 “타 식품사가 입고율을 제대로 지키는 데 반해 CJ제일제당만 입고율이 낮은 건 문제가 있어 보인다”라며 “쿠팡처럼 직매입으로 운영되는 유통사의 경우 발주 물량의 절반만 상품이 들어오면 물류창고를 비워둬야 해 운영에 차질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국내 즉석밥 시장에서 햇반 점유율은 67%가량을 차지한다. 햇반의 경우 전체 판매량의 30%가 쿠팡에서 팔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바라보는 유통업계의 시각은 다양하다. CJ제일제당을 옹호하는 여론은 쿠팡이 이커머스 시장에서의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가격 결정권을 쥐고자 상품 발주를 중단했다고 보고 있다.

반면, 대기업 제조사들이 신흥 유통 회사인 쿠팡을 길들이는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CJ제일제당처럼 히트 상품이 많은 경우 제조사가 갑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CJ제일제당은 즉석조리식품과 즉석밥, 냉동만두 등의 분야에서 국내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CJ제일제당이 쿠팡과의 납품 계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면 문제가 있다”며 “생산 여력이 있어도 공급 물량을 제한하는 것은 식품 대기업으로서 소비자를 위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앞서 쿠팡에서 제품 판매를 중단했던 LG생활건강 사태가 재연될 수도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2019년 LG생활건강은 ‘경쟁 이커머스 제품 판매가 인상 요구’ 등을 강요한 쿠팡을 공정위에 신고했고, 이에 쿠팡은 LG생활건강을 로켓배송서 제외했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두 회사 다툼으로 인해 상품 판매가 중단되면 피해를 보는 건 결국 소비자”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