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성장하던 창고형 할인점의 성장이 둔화하는 양상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내식이 늘면서 연 매출이 두 자릿수씩 성장했던 창고형 할인점의 성장세가 엔데믹(풍토병화)의 영향으로 한풀 꺾였다는 진단이 나온다. 여기에 창고형 할인점의 주 고객인 자영업자 수가 줄어든 것도 영향을 미쳤다.

◇코스트코·트레이더스 매출 성장세 둔화... “코로나 기저”

18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코스트코코리아의 2021 회계연도(2021년 9월~2022년 8월) 매출액은 5조535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2%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9.3% 늘어난 1941억원을 기록했다.

그래픽=이은현

코스트코가 1994년 국내 시장에 진출한 이래 매출 성장률이 5%로 떨어진 건 2017년 회계연도(3.1%) 이후 처음이다.

코스트코는 2018년 연매출 4조원을 돌파한 후 2년 만인 2020 회계연도(2020년 9월~2021년 8월) 매출이 전년 대비 18.3% 증가하면서 5조원을 넘어섰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4.3% 늘어난 1775억원, 당기순이익은 27.8% 증가한 1347억원을 기록했다.

이마트(139480)의 창고형 할인점 트레이더스 홀세일 클럽의 올해 3분기 매출은 9520억원으로 전년 대비 5.2%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240억원으로 10% 감소했다.

트레이더스는 지난해 매출이 14.5% 증가한 3조3150억원, 영업이익은 7.5% 증가한 917억원을 기록했다. 2020년에도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24%, 61% 증가한 바 있다.

정규진 SK증권 연구원은 “3분기 비식품군의 역신장에도 불구하고 기존점의 영업이익이 소폭 신장(0.2%)했으나, SSG닷컴 관련 PP(Picking & Packing) 센터 수수료 부담으로 이익이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쿠팡에 고객 뺏기고, 자영업자 줄고... 위기감 증폭

유통업계는 창고형 할인점의 성장이 둔화한 요인을 코로나19 기저효과에서 찾았다. 이마트 관계자는 “작년에 코로나19로 식료품 판매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올해 들어 엔데믹의 영향으로 기저효과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마트는 지난달 창고형 할인점 '이마트 트레이더스'의 명칭을 '트레이더스 홀세일 클럽'으로 바꾸고 유료 멤버십을 도입했다. /뉴스1

온라인 쇼핑의 성장이 창고형 할인점 및 마트업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도 나온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코로나19를 거치며 생필품을 온라인에서 구매하는 행태가 보편화됐고, 엔데믹 후에도 이런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라며 쿠팡의 흑자 전환을 증거로 들었다.

쿠팡은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이 7742만달러(1059억원, 환율 1368원 기준)으로 로켓배송 출범 후 8년 만에 첫 분기 흑자를 기록했다. 매출은 51억133만달러(약 6조9811억원)로 원화 기준 전년 동기 대비 27% 증가했다.

일각에선 자영업자 수가 줄어든 것이 창고형 할인점의 실적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대용량 상품을 저렴하게 구매하는 창고형 할인점은 일반 고객뿐 아니라 개인 사업자 고객도 많은데, 경기 불황으로 사업을 포기하는 이들이 늘면서 기업 간(B2B) 판매에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것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비임금 근로 및 비경제활동인구 부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 8월 기준 전체 취업자 수 대비 자영업자 등 비임금근로자 비중은 23.5%로 1982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낮았다.

특히 대면 업종인 도소매업은 2만6000명 감소했고, 숙박·음식점업도 1만9000명 줄었다.

여기에 일부 사업자들이 쿠팡과 배달의민족 등 온라인 쇼핑몰 및 배달앱으로 구매처를 옮기고 있다는 점도 창고형 할인점의 성장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코스트코 새벽 배송 시작... 트레이더스 유료 멤버십 도입

상황이 이렇자 창고형 할인점들은 투자를 강화하는 모양새다. 코스트코는 지난 5월 말부터 일부 수도권 지역을 대상으로 새벽 배송을 시작했다.

새벽 배송은 고정비 부담이 커 기존에 운영해 오던 업체들도 사업을 접는 추세다. 이에 업계에선 매출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개인 사업자 고객을 온라인 몰에 뺏기지 않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코스트코 온라인몰 새벽배송 서비스 '얼리 모닝 딜리버리'. /코스트코 홈페이지

지난 10월에는 고척동에 서울 4호점을 열었다. 코스트코코리아는 익산, 광주, 제주 등에도 신규 출점을 검토 중이다.

트레이더스는 지난달부터 브랜드명을 기존의 이마트 트레이더스에서 트레이더스 홀세일 클럽으로 바꾸고, 연회비 3만~7만원짜리 유료 멤버십을 도입했다. 이마트에 따르면 트레이더스 멤버십 가입자는 한 달 만에 30만 명을 넘어섰다.

회사 측은 멤버십을 통해 차별화된 상품 경쟁력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고, 이를 통해 다시 고객 혜택이 증대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또 사업자 고객을 유입하기 위해 등급을 2개로 나눠 운영한다. 업계에선 유료 멤버십 도입에 따라 4분기엔 멤버십 가입비의 이익 기여도가 증가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롯데마트도 사업 철수설까지 나왔던 창고형 할인점의 명칭을 올해부터 ‘맥스’로 바꾸고 사업 확장을 본격화하고 있다. 기존에 코스트코와 트레이더스가 출점하지 않은 호남, 창원 지역의 롯데마트를 ‘맥스’로 개편하고, 와인 전문점 보틀벙커와 한샘 등 전문 매장을 입점시켜 차별화를 꾀했다.

롯데마트에 따르면 광주 상무점, 목포점, 창원 중앙점 등은 맥스로 간판을 바꿔 단 후 매출 증가율이 70%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리뉴얼 효과로 롯데마트는 올 3분기 매출이 5% 증가한 1조5596억원, 영업이익은 179% 증가한 325억원을 기록했다.

정 교수는 “오프라인 업태 중에서 볼거리가 많은 백화점과 쇼핑몰은 상대적으로 양호한 성장을 보이고 있으나, 온라인과 상품이 중복되는 대형마트와 창고형 할인점, 기업형 슈퍼마켓(SSM) 등은 당분간 성장 둔화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프라인 유통이 줄 수 있는 차별화된 강점을 발굴해야 한다는 조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