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경험을 원한다면 메타버스(부터) 하지 마세요. 메타버스는 수단일 뿐 목표가 아닙니다. 대체불가능토큰(NFT)을 먼저 발행했다고 메타버스에서 승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김태환 딜로이트코리아 디지털 부문 리더(파트너)는 메타버스 시대 유통업계의 디지털 고객 경험 전략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전 세계 메타버스 시장 규모는 2025년 427조원(딜로이트 컨설팅)으로 추정된다. 모두가 메타버스 산업의 잠재력에 주목하는 시대에 그가 ‘메타버스를 하지 말라’고 말한 속뜻은 신기술은 수단일 뿐, ‘고객 경험’이란 분명한 목표 설정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김 파트너는 “기술의 변화는 당연히 모니터링하고 잘 활용해야 하지만, 수단이 목적을 왜곡해선 안 된다”라며 “우리 브랜드(기업)가 조준하는 고객을 명확히 하고, 고객에게 줘야하는 경험이 무엇인지를 구체화한 후 신기술을 선택해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으면 비용만 낭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선비즈는 지난달 28일 김 파트너를 만나 메타버스 시대의 디지털 고객 경험 전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김 파트너는 현재 디지털 부문 리더를 맡아 다양한 기업들을 컨설팅하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김태환 딜로이트코리아 디지털 리더(파트너). /김은영 기자

‘고객 경험’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

“1980년대 소비재가 다양해지고 기업 간 경쟁이 심화하면서 ‘고객을 만족시켜 선택받아야 한다’는 세일즈 마케팅 개념이 등장했다. 이후 고객 만족 관리, 고객 관계 관리(CRM), 고객 경험 관리 등으로 발전했다.

고객 경험이란 고객을 대하는 모든 경영 활동을 의미한다. 고객 관계 관리가 이미 고객이 경험한 결과에 기반해 전략을 짜는 공급자 마인드라면, 고객 경험 관리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고객에게 발생하는 경험을 관리하는 것이다.

전자가 고객의 거래 구매 데이터를 분석하거나 고객 대상 설문 등을 기반으로 한다면, 후자는 고객 입장에서 발생하는 경험 자체를 연구하고 그 맥락(컨텍스트) 안에서 우리 기업(브랜드)과 어떻게 관계하는지를 살피는 차이가 있다.”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고객 경험이 더 중요해진 듯 하다.

“오프라인 세상에선 볼 수 없던 걸 디지털 세상에선 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스마트폰을 24시간 들고 살게 되면서 기업들은 소비자들이 소비하고 고민하는 바를 더 정확히 관찰하고 분석할 수 있게 됐다.

예컨대 가방을 만든다면 예전엔 단순히 디자인이나 효율성부터 따지는 게 논리적인 접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가방을 드는 사람에 대해 연구한다. 컨설팅 회사에 다니는 A라는 사람의 페르소나를 만들고, 외부 미팅이 많고 출장도 자주 가는 A에게 필요한 가방이 뭔가를 생각해 본다.

일단 색은 중요하지 않을 테니 가방 색상은 무채색으로 정하고, 이어 구조를 정하는 식으로 상품을 개발한다. 이른바 휴먼 센터드 디자인(Human Centered Design), 즉 인간 중심 디자인이다.”

많은 기업이 고객 경험을 내세우지만, 정작 소비자는 상품이나 서비스에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고객 경험이라는 목표를 확실히 설정하고, 기업의 모든 업무 프로세스에 상시로 적용해야 하는데 이런 사이클이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사가 추구하는 고객 경험 목표가 확실하더라도, 각 부서가 중복해서 업무를 수행하거나 서로 상충된 메시지를 전달하면 고객 입장에선 혼란스럽다. 일관되지 않은 경험이 쌓이고, 결국엔 브랜드를 신뢰할 수 없게 된다.”

조말론은 고객들의 사적인 경험에 주목해 향수를 개발한다. /조말론

그렇다면 어떤 부서에서 고객 경험 전략을 주도하는 게 효과적일까?

“고객 경험은 CEO(최고경영자)의 아젠다가 되어야 한다. 고객 구매 여정을 살펴보면 초기엔 영업팀이 관장하고, 나중엔 마케팅팀이나 서비스팀이 주도권을 갖게 되는데, 각 부서가 목표나 실적 등에 집중하다 보면 고객 경험이라는 미션은 뒤처지게 되고 경험의 일관성도 떨어지게 된다.

이는 대기업의 고질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이 경우 CEO가 전사의 고객 경험을 책임지고, 전 부서가 일관적으로 전략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고객 경험은 어떻게 설정하나.

“우선 경쟁사보다 확연한 차이를 낼 수 있는 고객 경험을 포지셔닝하는 게 중요하다.

영국 니치 향수 브랜드 조말론이 니치 향수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한 이유도 고객 경험에 있다. 조말론은 기분 좋은 향, 타인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향이 아닌 ‘행복한 순간의 기억을 떠올리는 향수’로 브랜드 콘셉트를 잡았다.

예컨대 첫 데이트 할 때의 설렘, 결혼식 날의 가슴 벅찬 감정을 재현하는 식이다. 각각의 경험을 담다 보니 향수 종류만 30가지가 넘는다. 단지 품질이 좋아서가 아니라, 창업자가 고객 경험에 초점을 두고 브랜드 전략을 설계한 결과 성공할 수 있었다.

나이키도 좋은 예다. 나이키가 러닝화를 팔기 위해 추구한 고객 경험은 ‘달리는 경험을 주는 것’이다. 신발의 기능과 디자인이 좋은 것은 기본이고, 고객들이 러닝을 잘할 수 있도록 러닝 애플리케이션(앱) ‘런 클럽(NRC)’을 만들고 고객들이 함께 뛰도록 했다. 또 사용자들의 데이터를 분석해 필요한 상품을 제안했다.

이처럼 고객 경험을 정립하고 나면 업무 프로세스가 재정렬되고, 우선순위가 정해진다. 목표 경험을 설정하고, 그에 맞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 반영하는 식으로 프로세스를 설정해야 한다.”

나이키의 고객 경험 전략이 담긴 '나이키 런 클럽'(NRC) 애플리케이션(앱). /나이키

좋은 고객 경험을 구성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5가지를 들 수 있다. 개인화되고(Personalized), 의미 있고(Meaningful), 신뢰할 수 있고(Trustworthy), 맥락에 맞으며(Contextualized), 감정에 호소할 수 있는(Emotional) 경험이 그것이다. 철저히 소비자 중심에서 봐야 한다.”

메타버스 시대의 고객 경험 전략은 어떻게 짜야 하나.

“메타버스 시대라고 해서 고객 경험이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다만, 전술이 달라질 순 있다.

특히 서비스 간 접근이 제한된 ‘닫힌 정원(Walled Garden)’ 상태인 메타버스가 당분간 지속될 거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페토의 프로 유저라고 해도, 로블록스에선 아무 것도 아니다. 지금처럼 폐쇄적이고 난립한 메타버스 시장에서 유통기업이 모든 플랫폼을 일일이 관리하는 건 무리다. 이런 방식은 비용만 많이 들고, 효율적이지 않다.

유통기업은 진정한 고객 경험에 대한 이해를 통해 데이터가 여러 플랫폼에서 안전하게 연동되는 멀티버스(Multiverse)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자사가 디지털상에서 고객에게 주고 싶은 경험 자체에 집중해야지, 서비스 사업자에게 끌려다니거나 종속돼선 안 된다.”

최근 NFT를 발행하거나 메타버스 마케팅에 뛰어드는 유통기업들이 많은데, 이들에게 조언 한다면.

“역설적이지만, 메타버스를 시작하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다. 메타버스를 하기 전에 ‘우리가 타깃 고객에게 주고자 하는 고객 경험이 독창적이고 명확한가?’라고 자문해야 한다.

메타버스도 NFT도 결국 수단일 뿐이다. 메타버스 자체가 목표가 되어선 안 된다. 우리 회사가 겨냥하는 고객이 명확한 상태에서, 그 고객에게 줄 경험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구체화한 뒤 그것을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메타버스를 선택·활용해야 한다.

당연히 기술의 변화는 계속 모니터링하고 활용해야 한다. 하지만 거기에 매몰되거나, 목표를 왜곡해선 안 된다. NFT를 먼저 발행했다고 해서 메타버스에서 승리하는 건 아니다. 전투에 참여하는 게 목표가 아니라 이기는 게 목표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