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백화점이 신사업 강화를 골자로 정기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올해 최대 실적을 이끈 손영식 신세계(004170) 대표가 사장으로 승진하고, 차정호 신세계 백화점부문 기획전략본부장 사장이 퇴임했다.
회사 측은 차 사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퇴임했다고 밝혔지만, 업계에선 인수합병(M&A) 등을 통한 신사업 강화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인적 쇄신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기획전략본부 재정비... 서울옥션 인수 속도 붙나
27일 신세계그룹이 발표한 '2023년 정기 임원인사'에 따르면 손 대표는 최대 실적을 이끈 공을 인정받아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손 대표는 1987년 삼성그룹 공채 28기로 신세계백화점에 입사해 신세계백화점 상품본부장과 패션본부장, 신세계디에프 사업총괄 겸 영업담당 부사장을 거쳐 2016년 신세계디에프의 첫 대표이사가 됐다.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실적 부진에 책임을 지고 퇴진했다가, 작년 10월 (주)신세계 대표이사로 백화점에 복귀했다.
이후 지역마다 초대형 점포를 두고 경쟁사를 압도하는 '지역 1번점' 전략을 수행, 최대 실적을 끌어냈다. 신세계의 올해 상반기 매출은 3조 6436억원으로 전년 대비 34%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60% 늘어난 3510억원을 기록했다. 증권가는 올 3분기에도 실적 성장세가 이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반면, 기획전략본부를 이끌던 차 사장은 신세계 지원본부장을 맡던 허병훈 부사장에게 자리를 내주고 물러났다. 차 사장은 2017년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에게 발탁돼 신세계인터내셔날(031430)의 성장을 주도한 데 이어 2019년 신세계백화점 대표로 선임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도 명품 열풍에 힘입어 고성장을 이끌어 왔으나, 1년 만인 지난해 백화점 경영에서 물러나 백화점부문 기획전략본부장으로 보직을 변경했다.
기획전략본부는 그룹과 (주)신세계를 잇는 중간 조직으로 미래 먹거리를 찾는 부서다. 정 총괄사장은 지난해 신세계가 보톡스 전문기업 휴젤을 인수하려다 실패한 만큼, 기획전략본부에 재무 기획·코스메틱·온라인사업 태스크포스(TF)팀 등을 신설하고 임원도 1명에서 7명으로 늘리며 힘을 실어줬다. 그러나 별 성과를 내지 못했다.
신세계는 지난해 12월 국내 최대 미술 경매업체 서울옥션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4.82% 지분을 보유한 뒤 1년 가까이 인수를 장고(長考)하는 상황이다. 금리와 환율이 동반 상승하는 등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커진 것이 이유다.
올해 7월에는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앤드컴퍼니(McKinsey & Company)에 미래 사업과 관련한 컨설팅을 받았다. 그러나 신사업 대안으로 도출된 '폐기물 관리'와 미래 사업과 맞지 않는다는 판단이 나오는 등 긍정적인 평가를 끌어내지 못하고 원점으로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책임을 지고 차 사장이 물러났다는 분석이다.
◇신세계인터내셔날·라이브쇼핑, 외부 전문가 영입 내실 다져
손 대표는 기획전략본부장으로 선임된 허 부사장과 손잡고 M&A 등 신사업 전략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허 부사장은 1988년 삼성물산에 입사해 경영지원실장을 거쳐 2011년 호텔신라 경영지원실장, 2015년 호텔신라의 호텔 앤 레저부문장 전무를 맡았다. 2018년 신세계그룹 전략실에서 부사장보와 부사장을 지냈고, 지난해에는 신세계 지원본부장 부사장을 맡으며 M&A 등을 뒷받침해 왔다.
신세계 관계자는 "기획전략본부는 백화점 부문 전체의 시너지를 위해 미래 산업을 고민하는 부서"라며 "회사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에 더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했다.
패션 계열사 신세계인터내셔날(031430)도 외부 전문가 영입을 통한 인적 쇄신을 예고했다. 신세계 측은 "아직 외부 영입 단계라 밝힐 수 없다"라며 "기존의 이길한 대표는 공동 대표를 맡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인수한 신세계라이브쇼핑 대표에는 최문석 신세계까사 대표가 선임됐다. 최 대표는 이베이코리아 부사장, 써머스플랫폼(에누리닷컴) 대표, 여기어때컴퍼니 대표 등을 거친 이커머스 전문가로 신세계까사 자사몰 '굳닷컴' 등을 통해 온라인 전략을 강화한 점을 인정받았다.
신세계는 지난해 신세계백화점이 이마트(139480)와 신세계아이앤씨가 보유한 신세계라이브쇼핑 지분 76.1%를 인수해 백화점 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올 상반기에는 LG헬로비전에서 황금 채널인 8번을 확보하며 'S급(지상파 사이 번호)' 채널에 진입하는 등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했다. 그런 만큼 신세계가 이커머스 전문가인 최 대표에게 거는 기대가 클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 신세계까사 대표에는 영업 전문가인 김홍극 신세계라이브쇼핑 대표가, 신세계사이먼 대표에는 상품기획(MD) 전문가인 신세계디에프 상품본부장 김영섭 전무가 내정됐다.
신세계 관계자는 "엄격한 성과주의, 능력주의 인사를 실시했다"면서 "사업별 비즈니스 전문성을 극대화하고, 혁신과 성장을 가속화 하며, 미래 산업 생태계를 주도할 수 있는 신규 비즈니스 강화를 위해 대표이사 진용을 공고히 구축하는 한편, 외부 인재 영입 및 전문 조직 체계를 강화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