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해외 직구 플랫폼 큐텐(Qoo10)이 티몬의 새 주인이 되면서 이커머스 업계가 들썩이고 있다.
인수를 주도한 구영배 큐텐 대표는 문 닫을 위기였던 자본금 10억원짜리 회사를 5년 만에 옥션을 제치고 이커머스 1위로 만든 주역이다.
그가 주당 100원에 산 회사 주식은 24달러(거래 당시인 2009년 환율 기준 2만8000원)로 치솟았다. 이때 손에 쥔 715억원이 시드머니가 돼 티몬을 인수할 수 있었다.
구 대표가 풍전등화 상황인 티몬에서도 꼴찌의 반란을 일으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4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큐텐은 현재 티몬의 조직, 인사 제도를 개편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다음 달 초 전체적인 윤곽이 나올 예정이며 장윤석 대표도 교체될 가능성이 높다.
차기 티몬 대표로는 G마켓 창립멤버 중 한 명인 류광진 전 이베이코리아 부사장과 큐텐의 한국 자회사 지오시스의 김효종 대표 등이 거론된다.
유통업계 관계자들의 시선은 구 대표에게도 향하고 있다. 2000억원대 인수합병(M&A)을 주도했음에도 그에 대해서 대중에게 알려진 바는 많지 않다.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꺼리는 성격인데다 큐텐 본사가 있는 싱가포르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구 대표를 지켜본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들은 수줍음이 많고 겉모습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소탈한 성격이라고 평가한다.
구 대표는 1966년생으로 전남 구례 출신이다. 서울대 자원공학과를 졸업한 뒤 1991년 미국 석유회사인 슐룸베르거에 입사해 8년간 중동, 인도, 오만 등의 유전을 탐사, 개발하는 일을 했다.
인도에서 근무하면서 귀족 계급으로 알려진 현재의 아내를 만났다. 주로 동남아를 대상으로 사업을 하는 큐텐이 2019년 인도 오픈마켓 샵클루스를 인수하고 시장 진출을 선언한 것도 아내의 영향이 컸다.
◇ 자본금 10억짜리 골칫거리, 연 거래액 1兆로 회생시켜
IT업계와 접점이 없었던 그의 인생 경로는 1999년 크게 바뀐다. 지인의 소개로 이기형 당시 인터파크(현 그래디언트(035080)) 회장을 만나 회사에 입사하면서다.
인터파크는 전자상거래 분야에선 존재감이 크지 않았던 데다 1999년 벤처 버블이 꺼지면서 인터넷 사업에 대한 회의감이 내부에서 커졌다.
이기형 회장은 옥션의 성공을 보고 경매 방식의 이커머스에 관심을 갖게 되고 사내벤처 구스닥(G마켓의 전신)을 출범시킨다. 상품을 주식처럼 거래할 수 있게 했다.
구 대표는 구스닥 태스크포스(TF)팀장을 맡아 회사를 키워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2000년 자본금 10억원의 별도 법인으로 출범해 거의 3년간 돈을 까먹기만 했다. 직원들 월급 줄 돈이 없어 주식을 대신 지급했을 정도였다.
회사가 벼랑 끝이던 2003년 구 대표는 구스닥을 G마켓이라는 이름으로 바꾸면서 오픈마켓 방식의 사업모델을 도입했다. 쇼핑몰이 아니라 판매자가 자유롭게 물건을 팔 수 있는 이전에 없던 상거래 개념이다.
그러자 기존에 온라인에서 판매가 안 되던 의류 같은 품목이 불티나게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지마켓의 하루 거래건수는 2004년 1만 건에서 2005년 60만 건으로 급증했고 연 거래액이 1조원을 돌파, 부동의 1위 옥션을 넘어선다.
구 대표는 한 판매자의 판매 물품을 한곳에 모아 보여주는 미니숍, 물품 위치 확인 서비스, 쇼핑 중 클릭했던 상품을 화면 오른편에 5개씩 자동으로 정렬해주는 코너를 직접 제안하는 등 아이디어 뱅크 역할을 했다.
◇ 구영배, 지마켓 주식 100원에 매입해 2.8만원에 매각…715억 현금화
G마켓이 2006년 미국 나스닥 상장 때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서류를 보면 구 대표는 2001~2003년 지마켓 주식을 1주당 100~140원에 살 수 있는 스톡옵션을 200만 주 부여받았고 이를 행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G마켓 공모가는 15.25달러(당시 환율 기준 1만4000원)로 이미 주당 가치가 매입가 대비 140배 올랐다. 지분가치는 389억원에 달했다.
구 대표가 실제로 현금을 손에 쥔 것은 2009년 미국 이베이가 지마켓을 인수했을 때다. 옥션을 보유한 이베이는 G마켓에 1등을 빼앗기자 경쟁 대신 인수를 하기로 한다. 주당 24달러(2만8000원)에 공개매수를 했다.
G마켓 주식 255만9850주(지분율 5.1%)를 보유하고 있던 구 대표는 715억원을 손에 쥐었다. 당시 구 대표의 지분율은 인터파크(29.0%), 야후코리아(9.0%), 이기형 회장(7.2%) 다음으로 높았다.
◇ 경쟁력 약화한 티몬, 직구·블록체인으로 되살아날까
큐텐이 매긴 티몬 기업가치가 2000억원대에 불과하다는 점은 회사가 처한 현실을 보여준다. 2019년 롯데그룹이 티몬을 인수하려고 했을 때 거론되던 기업가치는 1조원대였다.
티몬 전현직 관계자들이 지적하는 회사의 문제는 방향성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네이버(NAVER(035420)), 쿠팡, 신세계(004170)가 대규모 투자나 인수합병(M&A)으로 시장점유율을 확대하는 동안 티몬은 외형 확장, 수익성 개선이란 두 가지 방향 사이에서 표류했다.
작년 매출은 전년 대비 14.6% 감소한 1290억원, 영업적자는 631억원에서 760억원으로 확대됐다.
큐텐은 티몬을 국내 판매자, 소비자 기반을 확대하는 채널로 활용할 전망이다. 현재 동남아에 한국 제품을 수출하는 플랫폼 사업 비중이 높고 국내 소비자 대상 사업은 인지도와 네트워크가 약하다.
특히 물류 자회사 큐익스프레스를 통해 풀필먼트(배송과 보관, 포장, 배송, 재고관리까지 물류 전 과정을 대행하는 것)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 해외 판매에 관심 있는 사업자의 티몬 입점을 유도할 수 있다.
구 대표가 평소 관심이 많은 블록체인을 사업모델에 접목할 가능성도 있다. 그는 2018년 블록체인 기반 쇼핑몰 큐브와 전용 가상화폐 큐코인을 내놨다. 큐브에선 결제·정산 때 큐코인만 쓸 수 있으며 달러 가치에 연동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