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장 차림에 주문을 받는 직원도, 다과를 가져다 주는 컨시어지도 없다. 도시 전경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통창문도 없다. 통상 VIP 라운지가 들어서는 건물 꼭대기 층이 아니어서다.
대신 패션·잡화·인테리어 셀렉트샵과 중고 명품 리셀샵, 비건 화장품 스토어가 들어선 지하 2층에 자리 잡았다. 상아빛 조명을 단 입구에 ‘YP HAUS’라는 푯말만 없으면 영락 없는 셀카존 혹은 파우더룸처럼 보인다.
여의도 더현대서울 YP하우스는 리셉션 데스크를 외부에 뒀다. 일반 고객의 눈을 피해 철저하게 분리된 백화점 VIP 라운지와는 정반대다. YP는 ‘Young VIP’라는 의미의 로고다.
입구 앞 원형 테이블 위로 ‘PICK UP’ ‘RETURN’ 표시가 눈에 띈다.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처럼 음료를 받고 직접 반환하는 공간이다. 주문 줄은 없다. 현대백화점 어플리케이션(앱)에서 비대면으로 주문하고, 앱으로 제조 완료 알람을 받는다.
곡선의 겨자 빛깔 의자와 갈색 테이블은 양 옆이 둥근 벽에 둘러 쌓여있다. 90평 규모의 널찍한 공동 공간이면서도 각 좌석을 완전히 개방하지 않는 방식으로 독립 공간을 만들었다.
의자와 테이블부터 조명, 문 손잡이, 패턴, 선명한 노란색의 진열장과 유리잔, 꽃병까지 기성품은 하나도 없다. 미국 타임지가 ‘가장 영향력 있는 크리에이터 100인’으로 꼽은 스페인 출신 산업 디자이너 하이메 아욘이 직접 작업한 소품들이다.
두 번째 문을 지나면 원색의 유쾌한 조각이 공간을 채운다. 뒤편에는 무대 모양의 진열대도 놓였다. 체험형 콘텐츠를 전시하기 위한 공간이다.
이곳에선 명품 브랜드 펜디의 ‘신상품 프리오더’부터 몽클레르의 ‘스프링 꽃꽃이’ 클래스, 룰루레몬의 ‘요가와 명상’ 클래스, 프레쉬의 ‘오벌 솝(비누) 래핑’까지 YP 전용 문화 클래스를 체험할 수 있다.
금요일 오후 12시 30분을 넘기자 직장인 두 무리가 라운지 안으로 들어섰다. 픽업 테이블에서 음료를 찾은 이들은 20여분 간 티타임을 즐긴 뒤 나갔다. 일부는 편안한 옷과 샌들 차림으로 책을 읽거나 친구들과 셀카를 찍기도 했다.
◇커피부터 명품까지...“핵심은 현대百으로 소비 채널 통합”
YP하우스는 현대백화점(069960)이 국내 유통업계 최초로 만든 2030 전용 VIP 라운지다.
1984년 이후 태어난 20세 이상 39세 이하 고객 중 연간 구매 실적이 3000만원 이상인 경우 또는 내부 심사를 거쳐 Club YP(클럽와이피) 회원을 선정하고, 라운지와 할인 등 각종 혜택을 제공한다.
라운지는 여의도 더현대서울과 판교점에서 운영 중이다. 구매 실적이 아무리 높아도 2030이 아니면 출입 불가다. 리셉션 데스크에서 현대백화점 앱으로 멤버십을 체크한 뒤 입장할 수 있다.
최근 유통업계 전반이 MZ를 타깃으로 하지만, 대부분 ‘명품 또는 고가 상품을 구매하는 큰 손’이라는 키워드에 머물러 있다.
반면 현대백화점 클럽와이피의 핵심은 ‘소비 채널 통합’이다. 식사와 간단한 쇼핑은 물론 명품 구매 채널을 현대백화점으로 통합해 구매 실적을 한 곳에 쌓도록 한 것이다. 단순한 ‘젊은 부자 공략’과 차별화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여의도와 판교점 라운지 모두 평일 고객 중 다수가 인근 직장인”이라며 “백화점에서 점심 먹고 커피 마시러 YP하우스에 잠깐 들른 뒤 다시 일하러 가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퇴근 후 간단히 장을 보고 식사도 하고, 저렴한 브랜드와 명품까지 모두 현대백화점에서 사는 식으로 연간 구매 실적을 쌓을 수 있다”며 “그러려면 이들이 ‘머물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날 YP하우스에서 만난 두 남녀를 IT기기 액세서리 브랜드 케이스티파이 매장에서 다시 마주쳤다.
6층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라운지에 들른 뒤 용정 콜렉션과 번개장터 랩(BGZT LAB), 지하 1층 디저트 코너 등을 둘러볼 계획이라고 했다. 통상 떠올릴 만한 ‘VIP 라운지 이용객’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30대 직장인 커플’이었다.
SPA 브랜드와 나이키 티셔츠를 입은 이들은 “먹고 놀기 편하고 새로운 볼거리도 많아 자주 온다”며 “멤버십이 있으니 주로 현대백화점에서 쇼핑을 하는데, 2030 전용 라운지가 있으니 뭔가 대우도 받고 관리 받는 기분”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