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넘도록 매장은 텅텅 비고 임대료만 더 내야 할 처지인데, 특허심사니 입찰 절차니 그런 게 당장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30일 한 대형 면세점 관계자는 조선비즈에 "당사자인 면세점의 고충과는 별 관련이 없는 것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정부와 인천국제공항공사가 과거 입찰 및 특허심사권 문제로 재차 충돌했던 사례를 들며 "이 문제가 갑자기 왜 또 나왔는지 모르지만 서로 권한을 더 가지려는 힘겨루기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라고도 했다.
공항 출국장 면세점 입찰 절차를 둘러싼 관세청과 인천공항공사의 갈등이 다시 불거졌다. 인천공항공사가 올 하반기 신규 면세사업자 선정을 위한 경쟁 입찰 공고를 내려 하자, 관세청이 면세사업자 선정 방식을 '단수 추천'에서 '복수 추천'으로 변경해야 한다며 재협상을 요구한 것이다.
현재 절차는 인천공항공사가 입찰 평가 후 단수(1개사) 사업자를 추천하면, 관세청이 해당 사업자를 심사해 특허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국내 첫 면세점이 개점한 1962년 이후 줄곧 이 방식으로 운영돼 왔다. 그러다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출국장 면세점 입찰을 앞둔 2017년 관세청이 해당 관행에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까지 중재에 나선 결과, 공사가 복수(2개) 사업자 추천→관세청이 최종 선정 및 특허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다만 관세청의 특허심사 점수에 공사의 평가결과를 50% 반영하는 조건을 달았다. 이후 2019년 공사가 단수 사업자를 선정해 관세청에 넘기는 방식으로 되돌아갔다.
코로나19 대유행 초기였던 당시에는 양측의 갈등이 크게 부상하지 않았다. 인천공항 면세점 입찰이 세 차례나 유찰되는 등 면세사업 전반이 위기에 처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잦아들고 각국이 국경을 개방하는 등 여행 수요가 증가하면서, 이들의 '해묵은 전쟁'이 재점화한 것이다.
◇관세청 "법대로 절차 변경" vs 공사 "특허심사는 별개 문제"
관세청은 이번에도 공사가 복수 추천한 사업자 중 한 곳을 최종 선정하고, 공사가 해당 사업자와 임대차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보세판매장 특허심사위원회가 특허 신청자를 평가 및 '선정'한다고 명시한 관세법 176조를 근거로 들고 있다.
관세청 보세산업지원 담당자는 "관세법상 특허심사위원회가 기업의 사회 환원, 관련 인프라, 보세화물관리 역량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사업자를 선정하고 특허를 주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현재는 법이 명시한 의도와 선정 절차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실무진과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공항공사는 즉각 반발했다. 면세점 사업자의 임대차 계약과 관세청의 면세 특허심사는 별개인데, 정부가 사실상 임차인을 지정하려 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면세점 판매시설 확보도 안 된 사업자를 대상으로 정부가 면세 특허를 심사하는 셈이 된다.
공사 측은 "면세 사업자는 경쟁 입찰을 통해 공사와 임대차 계약을 맺고, 이를 근거로 관세청에 특허를 신청해 권한을 받는 것"이라며 "인허가권을 가진 국가 기관이 민간 사업자를 선정하겠다는 것은 과도한 규제이자 입찰 개입"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앞뒤가 맞지 않고 수용할 수 없는 요구"라고 덧붙였다.
◇당사자인 면세점은 '발 동동'...임대료 인상 앞두고 고심
정작 면세업계는 이와 무관한 '공항 임대료' 문제로 벼랑 끝에 몰렸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면세점의 경영난을 고려한 임대료 인하 기한이 올해 6월로 끝나는데, 대유행 이전 대비 이익은 거의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관계 부처인 국토부와 인천공항공사는 여전히 이 문제의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선 새 정부 출범 시기에 맞춘 '주도권 싸움'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간 면세 사업 문제로 인천공항공사와 불편한 관계였던 관세청이 임기 초 주도권을 쥐기 위해 압박 수위를 높인다는 것이다.
관세청은 지난 16일 윤태식 전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을 윤석열 정부 1기 청장으로 맞이했다. 그는 취임식에서 새 정부가 최대 과제로 내세운 '과감한 규제 혁신'을 거듭 약속했다.
반면 공항공사는 문재인 정부에서 국토부 2차관을 지낸 김경욱 사장이 작년 1월부터 사장직을 맡고 있다. 문 정부에서 민주당 후보로 총선에 출마한 그는 윤 대통령과 같은 '충암고-서울대' 라인이기도 하다.
관세청과 공사가 힘겨루기를 하는 동안 실제 당사자인 면세점은 사실상 협상 과정에 참여하지도 못하고 있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신규업체 간 경쟁이 치열한 시기라면 입찰 절차가 큰 변수가 되겠지만 지금은 너나 할 것 없이 적자 신세"라며 "팬데믹으로 강제적인 경쟁 저하에 직면했는데, 특허권이나 입찰권 다툼보다 면세사업이 건강하게 회복되도록 지원해주는 것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한편 올해 1분기 국내면세점은 두자릿수 매출 신장률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영업손실을 냈다. 사회적 거리두기 속에 중국 보따리상 의존도가 높아 매출은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감소한 결과다.
롯데면세점은 이 기간 753억 원, 현대백화점면세점은 140억 원, 신세계면세점은 21억 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신라면세점은 영업이익 127억 원을 냈으나 전년 동기 대비 70% 감소한 수준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