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배달대행으로 유명한 바로고가 1t 트럭(사륜차)을 들이고 배달이 아닌 배송으로 사업 범위를 넓히고 나섰다. 지난해 8월 서울 강남구에 거점을 구축, 직접 진행했던 퀵커머스(즉시 배송) 서비스 '텐고'도 접었다. 대신 배송 물량을 받아 처리하는 B2B(기업간 거래)로 전환했다.
이는 바로고의 성장 발판이 됐던 배달 시장이 둔화된 성장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높아진 라이더 몸값도 부담이다. 배달대행에서 일찌감치 배송대행으로 사업 범위를 확장하며 연매출 3000억원을 이룬 '메쉬코리아식' 성장을 바로고가 그대로 차용하고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27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바로고는 기존 '늘찬 배달업', '계약 배달 판매업' 등에 그쳤던 사업 목적에 '일반 창고업', '냉장 및 냉동 창고업', '화물 자동차 운송업'을 각각 새로 추가했다. 여기에 '화물 운송 중개', '대리 및 관련 서비스업 화물 포장업' 등도 추가했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달 말 서울 강남구 역삼동 인근에 661㎥(200평) 규모 사륜차 물류 거점을 마련했다. 유통 채널의 '당일배송'을 물량을 받고, 화주사의 거점을 활용한 '전담배송' 서비스도 운영할 예정이다. 식자재 유통 플랫폼에 투자, 식자재 배송에도 나서기로 했다.
2014년 설립된 바로고는 그동안 배달대행 스타트업으로 분류됐다. 오토바이 배달 기사를 배달 애플리케이션(앱)과 음식점주 등과 연결해 주는 근거리 물류 플랫폼으로 운영돼 왔다. 바로고에 등록된 배달 기사는 약 3만6000명, 제휴 음식점은 11만여개 수준으로 알려졌다.
바로고 관계자는 "올해 초 사업 정체성 재검토를 진행했고, 향후 사업 방향을 초연결 배달·배송 서비스 플랫폼으로 정했다"면서 "다양한 형태의 라스트마일(운송 서비스 마지막 단계)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선 이륜차 외에 사륜차가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배달 시장의 성장 둔화가 바로고의 사업 확장으로 이어졌다. 바로고는 코로나19에 따른 배달 수요 급증을 타고 2020년 771억원으로 매출을 늘렸지만, 최근 상황이 달라졌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치솟은 배달비에 대한 소비자 반발심 등으로 배달 주문 자체가 줄어들었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거리두기가 해제된 4월 18~24일 배달의민족·요기요·쿠팡이츠 등 배달앱 3사의 총 이용자 수는 5047만5131명으로 전월 동기 대비 11% 감소했다. 같은 기간 배민 하루 평균이용자는 전월 대비 9%, 요기요는 16%, 쿠팡이츠는 18% 줄었다.
음식 배달 주문이 줄면 이를 대행하는 바로고의 매출도 줄 수밖에 없다. 여기에 배달 기사에게 지급해야 하는 배달비는 이미 천정부지로 치솟은 상태다. 배달 앱 1위 배민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최근 정규직 배달 기사 채용 조건에 연 급여 4560만원을 내걸었다.
배달업계 관계자는 "배민이 하루 8시간 근로, 주5일제 근무하는 정규직 배달 기사에 4500만원 넘는 급여를 내 건 이유는 이렇게 하는 게 오히려 저렴하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라면서 "배달 주문이 줄어드는 데도 한번 올라간 배달비는 내려가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바로고는 역삼동·논현동 일대에서 직고용 배달 기사를 통해 운영했던 퀵커머스 서비스를 비용 부담 등으로 지난 13일 종료했다. 대신 GS리테일(007070)이 출범한 퀵커머스 서비스 '요마트'의 배송을 대행하기로 했다. 바로고는 이마트에브리데이 퀵커머스 물량도 대행하고 있다.
시장에선 바로고가 메쉬코리아 따라하기에 나섰다고 보고 있다. 종합물류 서비스인 '부릉'으로 유명한 메쉬코리아는 음식 배달대행 서비스로 성장했지만, 지금은 사륜차 활용 상품 배송 대행이 주력이다. B2B 배송 대행 법인 고객사만 564곳으로 지난해 3038억원 매출을 냈다.
바로고가 메쉬코리아와 같이 풀필먼트(종합물류) 센터 구축으로 사업을 넓힐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메쉬코리아에서 사업을 총괄했던 김희종 최고사업책임자(CBO)가 바로고로 자리를 옮겼기 때문이다. 김 CBO는 지난 3월 말 바로고 등기이사에도 오르며 신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배달대행 업체의 사업 확장은 업계 전반으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배달대행 플랫폼 '영웅배송 스파이더(SPIDOR)'를 운영하는 스파이더크래프트 역시 음식 배달이 아닌 상품 배송으로 전환에 나섰다. 앞서 SPC그룹 섹타나인과 B2B 배송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정연승 한국유통학회장(단국대 경영학부 교수)은 "음식 배달 피로감이 커진 것은 맞지만, 온라인 소비 규모는 오히려 계속 늘어날 전망"이라면서 "배송은 배달대행 업체가 배달에서 쌓은 데이터를 그대로 사용할 수도 있는 만큼 유용한 사업 포트폴리오 확장 수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