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광주송정역 근처 1913 송정역 시장.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각이지만, 썰렁한 분위기다. /김은영 기자

“볼 거 없어요.”

지난 2일 오후 광주송정역, 택시에 올라 기사에게 가볼 만한 곳을 소개해 달라고 하니 단번에 “없어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멋쩍게 다시 묻자 기사는 “진짜 볼 거 없어요. 무등산 등반이나 가면 모를까”라고 했다.

광주 시민들은 광주를 볼거리·놀거리·즐길거리가 없는 ‘3무(無)’ 도시라고 한다. 지난해 한 광주 지역 언론사 조사에 따르면 광주 시민 29%는 시를 연상하는 이미지로 ‘문화 예술’을 꼽았다. 다음은 ‘맛의 고장’(17%), ‘의로운 고장’(14%),’ 재미없는 도시’(13%) 순이었다.

하지만 젊은 층으로 갈수록 결과는 바뀌었다. 30대 미만(18~29세)과 30대 연령층이 ‘재미없는 도시’를 꼽은 비율은 각각 33%, 26%에 달했다.

지난 대선 정국에 윤석열 대통령의 ‘광주 복합쇼핑몰 설립’ 공약이 화제를 모은 것도 “‘노잼도시(재미없는 도시)’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광주는 정말 ‘노잼도시’일까

광주는 ‘예향(藝鄕)의 도시’답게 미술 콘텐츠를 앞세운 도시 활성화 정책을 펼쳐왔다. 대표적인 게 1995년부터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대형 미술 축제 광주비엔날레다. 주최 측은 27년간 821만 명의 관람객을 유치한 ‘세계 3대 비엔날레’라고 자찬한다.

하지만 광주가 ‘노잼도시’라는 오명을 얻게 된 이유는 관(官)이 도시 활성화를 이끌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다.

광주창조혁신센터가 주도한 ‘1913 송정역 시장’이 그 예다. 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와 현대카드가 수십억원을 투자해 2016년 광주송정역 인근에 조성한 전통시장 육성 프로젝트로, 초기엔 개장 2주간 5만 명이 다녀갈 만큼 화제를 모았지만, 현재는 활기를 잃은 시장이 됐다. 지원이 끊기자 자생력을 잃은 것이다.

2일 광주 1913 송정역 시장 내 한 상점, 임대 현수막이 걸린 채 비어있는 모습이다. /김은영 기자

기자가 찾은 2일 정오쯤 170m 남짓한 시장 골목에 늘어선 60여 개 가게 중 8곳은 ‘임대’ 현수막이 붙은 채 비어있었다. 임시휴무인지 개장 시간 전인지 알리지 않은 채 문을 닫은 가게도 여럿됐다. 누구나 팝업스토어(임시 매장)를 열 수 있도록 시장이 마련한 ‘누구나 가게’도 문이 닫힌 지 오래였다.

광주비엔날레가 주도한 ‘광주 폴리(Folly)’ 프로젝트도 실효성을 얻지 못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광주폴리는 201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 당시 도심 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획된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현재 4차까지 진행됐다.

폴리란 ‘어리석은 행동’이나 ‘우스꽝스러운 짓’을 뜻한다. 광주 지역 곳곳에 소형 예술 건축물이나 작품을 세워 시민들이 이를 찾아다니며 도시의 활력을 높이도록 기획됐다.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에 ‘장진우 거리’를 조성한 장진우 셰프와 함께 상업시설을 융합한 ‘쿡(Cook)폴리’도 만들었다. 빈 한옥을 리뉴얼해 레스토랑과 카페 등을 열어 광주청년협동조합이 운영하도록 했다.

호평을 얻은 기획이었지만, 실제로는 시민들의 동선과 충돌하거나 작품 관리가 제대로 안 돼 흉물로 전락했다는 평가가 많다. 10년 넘게 운영되어 왔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 관련 게시물이 1000여 개에 불과하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2일 광주폴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광주 동구 산수동에 조성된 쿡폴리 청미장 외관, 문이 닫힌 모습이다. /김은영 기자

◇ 정치색 버리고 지역색 살려야

광주시는 ‘예향의 도시’를 브랜드 이미지로 삼는다. 광주비엔날레에 이어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 센터를 본떠 2015년 개관한 복합문화센터 아시아문화전당(ACC), 내년에 완공되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광주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옛 전남도청 일대에 들어선 ACC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예술의 전당보다 넓은 부지(16만㎡)에 도서관, 공연장, 전시장 등을 갖췄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전인 2019년 연간 방문객은 288만 명에 불과했다.

ACC 시설 운영비는 연간 550억원으로, 매년 500억원가량의 영업 적자를 내는 것으로 알려진다. 비슷한 공공시설이 수십억원의 적자를 내는 것과 대조적이다.

ACC의 성과가 저조한 이유는 제한된 콘텐츠 탓이다. 민주화 운동의 성지답게 주로 ‘정치’를 소재로 한 전시나 공연에 집중된다.

광주의 뼈아픈 역사를 되돌아보는 기회지만, 이를 경험하지 못한 MZ세대(밀레니얼+Z세대·1981~2010년생)에겐 공감을 얻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감성에 예민하고 이를 SNS에 공유하는 걸 즐기는 젊은이들이 받아들이기엔 다소 어렵다는 지적이다.

2일 광주 아시아문화전당 전경. /김은영 기자

모종린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복합쇼핑몰 조성 등 최근 광주에서 불거지는 이슈의 근원은 세대 간 갈등에서 비롯됐다”라고 짚었다.

그는 “요즘 지역의 젊은 세대는 동네 소주를 안 마시고 참이슬을 먹는다”라며 “개인의 취향이나 스타일을 존중하기보다 공동체 의식이나 연대를 강조하는 기성세대에 저항하는 태도가 복합쇼핑몰에 대한 요구로 튄 것”이라고 분석했다.

호남 출신으로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는 회사원 김모(39) 씨도 “개발에 대한 지역 여론이 연대와 분배를 강조하는 지역 정서를 넘어서지 못했다”라고 지적했다.

◇ 청년 몰리는 골목상권 육성 정책 펼쳐야

광주시의 지역 활성화 프로젝트는 계속될 태세다. 광주시는 전통시장 및 상점가 활성화를 지원하기 위해 올해 144억원을 투입해 ‘2022년 중소벤처기업부 공모’에 선정된 ‘상권 르네상스 사업’을 추진한다.

최근에는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신축 사업이 기획재정부 예비 타당성 조사를 통과했다. 2026년까지 1181억원을 투입해 북구 중외공원 내 주차장 부지에 연면적 2만3500㎡, 지상 3층 규모로 건립될 예정이다.

2일 오후 광주 충장로 거리. '광주의 명동'으로 꼽히는 곳이지만, 곳곳에 폐업한 가게가 많았다. /김은영 기자

광주시장 후보들도 20년 가까이 표류하고 있는 어등산 관광단지 개발, 군공항 이전 등을 비롯해 복합쇼핑몰 유치 등을 해결하겠다고 나선 상황이다.

모 교수는 “서울의 홍대, 상수동이 뜬 이유는 스타필드가 있어서가 아니다”며 “요새 젊은이들은 나다움, 동네다움을 추구하고 자기 동네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기 때문에 동네 브랜드를 어떻게든 밀어주고 싶어 한다”고 했다.

그는 “광주에도 동명동, 양림동 등 전국 최고 수준의 골목상권이 있다”며 “청년들이 몰리는 골목상권을 살리는 정책을 내세워야 광주의 경쟁력이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