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공약으로 내세운 광주 복합쇼핑몰 유치 이행 여부에 유통가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단순 쇼핑몰 건립을 넘어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진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게 민관(民官)의 공통된 생각이다. 조선비즈는 복합쇼핑몰로 촉발된 광주 상권의 현재를 3편에 걸쳐 조명한다. [편집자 주]

3일 오후 광주 신세계백화점 1층 중앙 로비. 상품 진열대 없이 시민 휴게공간으로 조성했다. /김은영 기자

새 대통령 취임을 일주일을 앞둔 3일 오후, 광주신세계(037710)는 ‘지역 최대 백화점’이라는 명성이 무색하게 입구부터 한산했다.

화려한 명품과 고가 화장품이 진열된 여느 백화점과 달리, 이 백화점 1층 중앙엔 미술품을 전시하는 갤러리와 휴게공간이 조성됐다. 광주시 종합버스정류장 부지에 백화점을 짓는 조건으로 1층을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포 한쪽에 임시로 마련된 선글라스 할인 판매대와 스타벅스 커피숍에만 사람들이 북적일 뿐, 중앙 휴게공간을 이용하는 시민은 드물었다.

지인을 기다리고 있다는 한 중년 여인에게 복합쇼핑몰이 생기면 어떻겠냐고 묻자 “쇼핑몰이 들어오면 좋지요. 그런데 쉽진 않을 것”이라는 건조한 답변이 돌아왔다. 광주 토박이인 그에게 광주는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하기엔 어려운 도시였다.

◇여야 막론 “복합쇼핑몰 유치하겠다”

이날 오전 광주 서구 치평동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광주 복합쇼핑몰 공약 이행을 위한 정책 간담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인수위)는 복합쇼핑몰 추진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복합쇼핑몰 유치를 통해 소비자 선택권을 확대하고 도시 경쟁력 제고 및 청년 일자리 창출을 도모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지방선거를 한 달여 앞둔 시기인 만큼 구체적인 발언은 자제하는 모습이었다.

김수철 인수위 기획위원은 “민과 관을 나누는 이분법적인 사고로는 도시의 경쟁력이 커질 수 없다”라며 “실질적으로 광주 시민들이 뭘 원하는가에 대해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해당 공약을 제안했다는 곽승용 국민의힘 부대변인은 “청년들이 광주를 떠나는 이유는 일자리도, 유익하게 시간을 소비할 공간도 없기 때문”이라며 “복합쇼핑몰은 쇼핑, 문화, 레저 등 총체적인 것을 뜻한다. 젊고 새로운 도시로 바꿔 인구가 유입되는 광주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3일 대통령 인수위가 주관한 광주 복합쇼핑몰 유치 정책 간담회. /김은영 기자

장석주 광주시 혁신추진위원회 대전환위원장(호남대 교수)은 “복합쇼핑몰 유치는 지역 경제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소상공인들과 상생할 방안을 포함한 접근이 이뤄져야 한다”며 “테마파크형 쇼핑몰로 도심 내 역세권에 세우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토론 참석자들은 복합쇼핑몰 유치가 ‘민간의 영역’이라는 데 동의했다. 민간이 광주에서 사업을 활발히 추진할 수 있도록 행정기관은 허가 과정의 문턱을 낮추고 속도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승규 광주시 민생경제과장은 “대형 쇼핑몰이 광주 지역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전남·전북을 포함 쇼핑 인구 700만 명의 대형 상권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 과장은 “이런 이유로 쇼핑몰 건립을 문의하는 업체들이 상당히 많다”며 “광주시도 원스톱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해 행정 절차를 압축하고 공정한 절차를 걸쳐서 쇼핑몰이 빠르게 건립되도록 처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관건은 소상공인과의 ‘상생’

광주 시민들의 복합쇼핑몰 유치 요구는 뜨겁다. 지난달 더불어민주당 광주시당이 18~69세 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광주시 현안 2위로 ‘복합쇼핑몰 등 쇼핑·문화 생활시설 확충’을 꼽았다.

특히 이번 대선 정국에 앞서 2015년 광주신세계와 광주시가 복합쇼핑몰과 호텔을 세우려다 지역 정가와 시민단체의 반대로 무산된 사실이 재조명되면서 유통시설 건립을 정쟁의 도구로 봐선 안 된다는 여론이 커졌다.

그간 광주·호남 지역은 대기업들의 점포 건립 계획이 번번이 철회되면서 ‘유통업계의 무덤’이라 불릴 만큼 기업들의 기피 지역으로 꼽혀왔다.

그래픽=손민균

상황이 이렇자 쇼핑몰 유치에 반대해 온 호남 지역 민주당 후보들도 6.1 지방선거 주요 공약으로 복합쇼핑몰 유치를 들고 나섰다.

광주시장 후보인 강기정 후보는 “대기업 2곳의 임원과 만났다”라며 복합쇼핑몰 유치 공략을 강하게 피력했고, 순천, 여수, 전주 시장 후보도 주요 공약으로 복합쇼핑몰을 내세웠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대선 정국에서 화제가 되기 전인 작년 8월부터 복합쇼핑몰 유치를 검토하고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관건은 지역 소상공인과의 ‘상생 방안’이다. 쇼핑몰이 들어오면 주변 상권이 살아나는 건 명백한 사실이나, 한쪽(지역)만 살릴 순 없다는 게 광주시의 입장이다.

광주가 외부 인구 유입이 활발한 관광도시가 아닌 만큼 시민이 소비할 수 있는 총량이 한계가 있는데, 소비 쏠림 현상이 발생하면 지역의 균형 있는 발전은 물론 지역 사회의 갈등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이승규 과장은 “광주는 소상공인이 차지하는 비중(51%)이 전국 평균(44%)보다 높다. 그만큼 지역 경제를 받치고 있는 이들에 대한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라며 “소상공인 대상 디지털 기반 물류망 구축, 소상공인 중점 지원 지역 지정 등 대안을 마련해 달라”고 인수위에 건의했다.

장석주 위원장은 “인구 규모 등이 비슷한 대전의 복합쇼핑몰 신세계 아트앤사이언스의 사례를 참고해 지역 소상공인 상생 협약 방안을 구상 중”이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대전신세계는 유성구청과 지역협력계획 이행 협약을 맺고 종사자 95% 지역인재 채용, 80억원 규모의 소상공인 상생 기금 활용, 로컬 농수축산물 마켓 입주 등 지역 협력 이행 계획을 수행하고 있다.

지난해 8월 27일 문 연 대전 신세계 아트앤사이언스. 약 6500억원의 투자금이 투입됐다. /신세계

◇ “본사 배만 불리는 것 아니냐”… 현지 법인화해야

복합쇼핑몰을 찬성하는 이들 사이에도 대기업 유통사를 견제하는 시각은 있다. 한 택시 기사는 “쇼핑몰이 생기는 건 좋은데, 결국 서울에 있는 본사가 다 벌어가는 것 아니겠냐”며 우려를 표했다.

이런 맥락에서 새로운 복합쇼핑몰은 현지 법인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실제 광주신세계, 대전신세계 등이 현지 법인 형태로 운영 중이다.

복합쇼핑몰 유치를 선심성 공약으로 삼았다는 비판도 여전하다. 구체적인 전략도 없이 너도나도 공약만 앞세우다 보니 진정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김수철 위원은 “대선 공약이었느냐 시장 공약이었느냐를 따지는 건 불필요한 논란”이라며 “일단 호남이 살고 봐야 한다. 민관이라는 이분법적 구분보다는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쇼핑몰이 유치되길 바란다”고 했다.

쇼핑몰 개발의 키를 쥔 유통업계는 대기업과 소상공인의 선악(善惡) 구도가 완화된 것만으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시각이 많다.

유통업체 한 관계자는 “조 단위 투자금이 들어가는 복합쇼핑몰 개발을 추진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불모지였던 광주·호남 지역의 개발 기회가 열렸다는 것만으로도 반가운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