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등 전 세계에서 멘톨(박하향)을 포함한 가향(加香) 담배 완전 퇴출 움직임이 일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 판매되는 가향 담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내 판매 담배 대부분이 가향 담배로 이뤄져 있는 데다 규제도 마련돼 있지 않은 탓이다.

3일 담배업계에 따르면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달 28일(현지 시각) 중독성이 강한 멘톨 담배를 포함한 모든 가향 담배 판매를 오는 2024년 완전 중단한다고 밝혔다. 2009년 멘톨을 제외한 과일향, 캔디향 가향 담배 판매를 금지한데 이은 추가 조치다.

편의점의 담배 매대 모습. /조선DB

가향 담배는 담배 특유의 독하고 매캐한 향 대신 특정한 맛과 향이 나도록 설탕 및 감미료(포도당, 당밀, 벌꿀 등), 멘톨, 바닐라, 계피, 생강 등을 첨가해 만드는 담배 제품을 말한다. 미국은 가향 담배가 청소년과 여성 등의 흡연 장벽을 낮춘다고 보고 있다.

FDA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멘톨 담배를 피우는 미국의 흡연자 수(12세 이상)는 1850만명에 이른다. 같은 이유로 유럽연합(EU)과 캐나다는 각각 2017년, 2020년부터 멘톨 등 모든 가향 담배 판매를 금지했다. 브라질은 2012년 가향 담배 판매를 금지했다.

국내 담배 시장은 거꾸로 가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국내 담배 총 판매량은 2011년 44억갑에서 2020년 35억9000만갑으로 줄었지만, 같은 기간 가향 담배는 2억7000만갑에서 13억8000만갑으로 증가했다. 가향 담배 비중이 6.1%에서 38.4%로 증가했다.

올해는 담배 총 판매량에서 차지하는 가향 담배 비중이 40%를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KT&G 등 담배 회사들이 가향 담배 신제품을 잇따라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KT&G는 올해 '레종 프렌치 썸'을 BAT로스만스는 '던힐 알프스 부스트'를 각각 새로 출시했다.

담배업계 한 관계자는 "부드러운 담배를 좋아하는 국내 담배 시장에선 얼마나 더 많은 가향 담배를 갖추고 있느냐가 판매량을 높이는 핵심"이라면서 "궐련형 전자담배용 담배 스틱 등을 포함하면 국내 담배 회사가 판매하는 담배의 절반 이상이 가향 담배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이은현

이런 가운데 우리 정부의 가향 담배 규제는 국민건강증진법 제9조의 3에 따른 '가향물질 함유 표시 제한' 뿐이다. 가향물질을 표시하는 문구나 그림 사용만 금하면 되는 것으로 커피향 담배의 경우 갈색과 '프레소'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아무런 규제 없이 출시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가향 담배 규제가 금연 정책의 핵심이 돼야 한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담배 특유의 텁텁한 맛을 줄인 가향 담배는 미국이나 EU, 캐나다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청소년이나 여성을 보다 쉽게 흡연으로 이끄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어서다.

2017년 질병관리본부의 '가향 담배가 흡연 시도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흡연 경험이 있는 응답자 5657명 중 63.2%가 가향 담배를 피운다고 답했다. 특히 담배를 배우기 시작한 10대 남성(70.3%)과 만 19~24세 여성(81.7%)층에서 가향 담배의 선호도가 높았다.

가향 물질은 담배 중독성도 더 높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은 2015년 6월 작성한 금연이슈리포트에서 담배 연기를 마실 때 자극이 덜 느껴지는 멘톨 담배로 흡연을 시작한 사람은 일반 담배를 피우는 사람보다 정기적으로 흡연할 확률이 더 크다고 밝혔다.

정부는 그러나 가향 담배 규제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5월 '흡연을 조장하는 환경 근절을 위한 금연종합대책'을 확정하고 가향물질 첨가를 2021년부터 단계적으로 금지한다는 계획을 공개했지만, 현재까지 추가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가향 담배 판매 금지에 따른 세수 확보 부담도 규제 추진 발목을 잡고 있다. 가향 담배 판매 금지 등은 담배사업법 개정이 필요하지만, 담배사업법 소관 부서인 기획재정부가 국민 건강보다 세수확보에 더 관심이 크기 때문이다.

기재부 국고국 출자관리과 관계자는 "가향 담배가 전체 담배 판매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40%에 달하는 상황에서 당장 판매 금지를 진행할 경우 12조원에 달하는 담배 세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면서 "국민 경제적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향 담배 제조·판매를 금지하는 '담배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은 국회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마저 담배규제기본협약을 통해 담배 맛을 높이고자 사용하는 성분을 제한 또는 금지하도록 권고하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문심명 국회입법조사처 보건복지여성팀 입법조사관은 "가향 담배는 담배 유해물질의 흡수성을 높여 중독 또는 암 발병 위험성을 증가시킬 가능성이 있다"면서 "가향물질 첨가 금지 대상 및 범위 등에 관한 심도 있는 논의로 실효성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