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쇼핑을 이끄는 수장들이 파격적인 소통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외부에서 수혈된 대표들을 중심으로 보수적이고 경직된 문화에서 벗어나 수평적이고 개방적인 조직문화로 탈바꿈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올해부터 롯데 유통군HQ(헤드쿼터) 총괄대표가 된 김상현 부회장은 취임 시작부터 직원들에게 "샘 킴(영어 이름)이나 김상현 님으로 불러달라"며 소통에 나섰다. 지난달부터는 롯데쇼핑 창립 이래 처음으로 직급을 없앴다.

지난달 롯데 유통군HQ 사내 소통 프로그램 '렛츠 샘물'에 참석한 김상현 부회장(왼쪽에서 네 번째)과 유통군 직원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롯데쇼핑

홈플러스와 DFI리테일 그룹 대표 출신으로 해외 기업 문화에 익숙한 김 부회장은 계열사 직원들과 '렛츠(Let's) 샘물'이라는 명칭의 티 미팅을 한 달에 2~3회 진행하고 있다. 김 부회장의 영어 이름(샘)을 따 '샘에게 물어보세요'라는 뜻을 담은 캐주얼 미팅이다.

최근에는 고객 상담 업무를 하는 담당자 십여 명과 함께 현장에 대한 애로사항과 지원 방향을 청취했다. 이 자리에서 김 부회장은 자신의 초임 팀장 시절의 성공과 실패 경험담을 나누며 직원들과 진솔한 시간을 가졌다.

이외에도 김 부회장은 의미 있는 성과를 내거나 사내에서 주목 받는 직원들에게 직접 칭찬과 격려가 남긴 이메일을 보내며 소통한다. 일부 직원은 김 부회장의 메일을 보고 스팸 메일로 오인하기도 했다고 한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처음엔 부회장님과의 만남을 어려워 하는 직원들도 있었지만, 부회장님이 워낙 편하게 소통하시다 보니 회의가 끝난 후에는 '옆집 아저씨 같다'는 평이 나올 정도였다"라며 "실무자들과 직접 이메일이나 메신저로 소통하는 등 이전보다 대표와의 소통이 훨씬 수월해졌다"라고 했다.

백화점을 이끄는 정준호 대표는 회사 인트라넷에 대표 직속 게시판인 '주노 뭐하지'를 만들고, 직원들과 소통하고 있다. 그는 얼마 전 방한한 앙리 피노 구찌 회장과 만난 후에도 직원들에게 직접 회담 내용을 공유했다.

회의도 팀장급 이상의 소수 인원만 참석하는 방식이 아닌, 온라인 화상 회의 플랫폼에서 최대 1000명의 임직원들이 회사의 비전과 의견을 나누는 '타운 홀' 미팅을 수시로 연다. 또 매주 수요일 오후엔 '모든 곳이 나의 사무실(Everywhere is my office)'이라는 슬로건으로, 직원들이 원하는 곳에서 자유롭게 시장조사와 미팅을 하도록 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입사 100일 된 사원 40여 명과 함께 '랜선 회식'을 진행하고, 이들의 부모님들에게 정 대표가 직접 쓴 자필 편지와 함께 꽃바구니를 전했다.

롯데마트 강성현 대표는 수시로 직원들의 공간을 찾아 업무를 논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과거엔 임원급 보고자가 결재서류를 들고 대표 집무실을 찾아 업무 보고를 하는 형식이었다면, 강 대표는 임원실이나 팀장 자리를 직접 찾아 실무자들과 스탠딩 미팅하는 걸 즐긴다. 컨설턴트 출신으로 롯데네슬레코리아 대표를 지낸 강 대표는 2020년 12월부터 롯데마트를 이끌고 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과장이나 대리급 직원이 대표와 직접 소통하는 문화가 안착하고, 제타플렉스 보틀벙커 등의 신규 사업이 순항하면서 직원들의 사기가 무척 높아졌다"라고 전했다.

온라인 쇼핑몰 롯데온을 이끄는 나영호 대표는 최근 초등학교에 입학한 임직원 자녀 40여 명에게 응원 편지와 책, 학용품을 선물로 보냈다.

나 대표는 <괜찮아, 우리 모두 처음이야>라는 책과 함께 '친구 안녕하세요^^ 친구의 아빠 엄마와 일하는 홈즈(나영호 영어 이름) 아저씨에요. 친구의 초등학교 입학을 축하해요. 회사에서 누구보다 멋지게 활약하는 아빠 엄마처럼 친구도 학교에서 밝고 씩씩하게 지내고 좋은 친구도 많이 사귀어서 학교 가는 매일이 즐거움이 가득했으면 좋겠어요. 홈즈 아저씨가 항상 응원할게요'라고 편지를 썼다.

나 대표는 작년 4월 취임 이후 롯데의 수직적인 조직 문화를 바꾸고 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일하고 주 40시간만 채우면 되는 '출퇴근 시간 유연화'를 통해 직원들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업무 효율을 끌어올렸다.

매주 월요일에는 직원들에게 '먼데이 레터'를 한 주도 빠짐없이 보내고 있다. 최근 본 영화 얘기부터 회사의 비전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데, 이에 답장을 보내며 화답하는 직원들도 많다고 한다.

롯데쇼핑의 이 같은 변화는 수평적이고 개방적인 조직문화를 강조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주문이 바탕이 됐다. 신 회장은 특히 유통군 HQ의 우선 과제로 '조직문화 개선'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 1월 신년사에서 "융합된 환경 속에서 연공서열, 성별, 지연 · 학연과 관계없이 최적의 인재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철저한 성과주의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며 "역할 중심의 수평적인 조직구조로 탈바꿈해야만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해 나갈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