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001040)그룹, 오뚜기(007310), SPC 등 유통 대기업들이 정권 교체 시기에 현 정부와 '선 긋기'에 나서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기업 경영은 정치권과 상관없이 운영되는 것이 정상입니다만 우리나라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재계 관계자들의 설명입니다. 이른바 정권에 '찍히면(?)' 그룹이 위태할 정도로 타격을 입기 때문이죠.
2013년 청와대의 CJ그룹 경영진 퇴진 요구 사건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청와대는 당시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의 퇴진과 손경식 CJ그룹 회장의 대한상의 회장직 사퇴를 요구하며 압력을 행사한 사실이 알려졌고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재계 안팎에선 CJ가 2012년 대선 당시 'SNL 코리아' 등 CJ 계열 방송 채널의 프로그램에서 당시 박근혜 대통령을 희화화하고,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가 관람해 눈물을 흘리는 등 호평했던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배급해 정권의 눈 밖에 났다고 보고 있습니다.
CJ가 제작에 참여해 2013년 개봉한 영화 '변호인'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 것이 문제가 됐다는 시각도 있죠.
이번에는 CJ ENM(035760)의 예능 프로그램 유퀴즈(유 퀴즈 온 더 블럭)로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국민이 많이 보시고 좋아하는 프로니 한번 나가보라고 해서 나오게 됐다"며 지난 20일 방송에 출연했는데요.
"대통령 자리는 고독한 자리" "고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선거 때만 해도 크게 긴장하지 않고 잠도 잘 잤다. 당선되고 나서부터 숙면이 잘 안 된다" 등의 속마음을 털어놨습니다.
문제는 윤 당선인의 예능 출연 이후인데요. 문재인 대통령의 유퀴즈 출연을 CJ 측이 거절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CJ ENM 측은 "문 대통령 쪽에서 출연을 요청한 적이 없다"고 했고,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지난 21일 "거짓말"이라며 소셜미디어(SNS)에 반박 글을 올렸습니다.
탁 비서관은 "청와대가 작년 4월과 그 이전에 문 대통령과 청와대 이발사, 구두 수선사, 조경 담당자들의 출연을 문의했지만 '프로그램 성격과 맞지 않는다'고 거절당했다"며 "우리가 거절을 군말없이 받아들인 것은 프로그램을 존중해서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도 윤 당선인의 출연이 오로지 제작진의 판단이었다고 믿고 싶다"며 "어떠한 외압도 없었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일각에서는 강호성 CJ ENM 대표이사가 윤 당선인과 서울대 법학과 동문이라는 점에 눈길이 쏠리고 있습니다. 강 대표는 1997년부터 1998년까지 수원지검 성남지청에서 윤 당선인과 1년여 간 함께 근무한 이력이 있습니다. CJ ENM 측은 이와 관련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오뚜기(007310)도 미묘한 거리두기에 나섰습니다. 오뚜기는 현 정부 출범과 동시에 착한 기업으로 떠오른 곳입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기업인과의 대화에 함영준 오뚜기 회장을 초대하며 "갓뚜기" "새 정부의 경제 정책에 잘 부합하는 모델 기업"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참석자 대부분은 대기업 총수였고 중견기업은 오뚜기 뿐이었는데요. 문 대통령이 이 자리에서 직접 오뚜기가 고용과 경영 승계, 사회 공헌 측면에서 착한 기업이라고 홍보해준 셈입니다.
오뚜기는 그러나 정권 말기가 되자 현 정부와 함께 언급되는 것을 꺼리고 있습니다.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지지자들은 작년 말 온라인 플랫폼 '재명이네 슈퍼'를 만들었고 오뚜기 로고를 사용하며 "오뚜기처럼 일어나는 지지율"이라고 홍보했는데요. 오뚜기는 법무팀을 통해 항의하고 해당 게시글을 내릴 것을 요청했습니다.
오뚜기 측은 "특정 정당과 후보를 지지하는 행위에 오뚜기 상표가 무단 도용됐다"고 했고, 이 후보 측 지지자들은 "개그를 다큐로 받는다" "더러워서 안 쓰겠다" 등의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유통업계에선 "오뚜기가 현 정부와 연관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SPC그룹도 현 정부 출범 초기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때마다 빵과 음료를 지원하는 등 물밑에서 후원해왔습니다.
SPC그룹은 2018년 4월과 9월 남북정상회담, 그해 6월 북미정상회담 당시 서울과 싱가포르를 오가며 세계 각국의 취재진에게 간식을 제공했는데요.
허영인 SPC그룹 회장의 부친인 고(故) 허창성 명예회장이 황해도 옹진 출신으로 허 회장도 남북 평화에 관심이 컸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SPC그룹은 그러나 최근에는 현 정부의 외교, 안보 기조와 다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 SPC삼립(005610)은 최근 일본이 저작권을 갖고 있는 포켓몬빵을 선보이며 1400만개(지난 20일 기준)를 판매했습니다.
SPC삼립이 포켓몬빵 판매의 일정 금액을 수수료로 포켓몬코리아에 지불하고 포켓몬 스티커를 빵에 동봉해 판매하는 구조입니다. 포켓몬코리아는 일본 기업 더 포켓 컴퍼니가 지분을 100% 갖고 있습니다. 현 정부의 반일(反日) 정서와 반대되는 행보인 셈이죠.
유통 기업들은 어쩔 수 없다며 하소연을 합니다. 윤 당선인은 3년 전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와 작년 언론 인터뷰에서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를 본인의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끼친 책으로 꼽았는데요.
부친인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가 선물한 책으로 자본주의와 시장 경제를 강조한 책입니다. 규제 일변도였던 현 정부보다 기업의 자유를 강조하는 차기 정부에 발걸음을 맞출 수밖에 없다는 게 유통 기업의 반응입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기업의 가치 창출과 이익, 존망은 정치 권력과 밀접하게 연관돼있어 정치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기업은 거의 없다"며 "차기 정부는 시장 중심적인 방향을 보이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기업 입장에선 신구 권력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줄타기를 하는 게 현실"이라며 어려움을 토로합니다.
이번 정부에선 규제보다 기업이 자유롭게 경영 활동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좋겠다는 이들의 희망이 이뤄지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