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글로벌 리테일 기업에서도 이런 경험을 가진 팀을 본 적이 없다."

최근 한국을 찾은 프랑수아 앙리 피노 케링 그룹 회장은 정준호 롯데백화점 대표에게 이렇게 말했다. 케링 그룹은 구찌, 발렌시아가 등을 보유한 세계적인 명품 기업으로, 지난 13일 롯데백화점의 럭셔리(MD1)본부와 미팅을 갖고 사업 협력을 논의했다.

한 시간 반가량 진행된 이번 회동에서 피노 회장은 언어와 정서에 대한 장벽 없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롯데백화점 상품본부의 전문성에 "어메이징(놀랍다)"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샤넬, 지방시, 루이비통 출신으로 구성된 일명 '엘벤져스(롯데+어벤져스)'팀을 두고 한 말이다.

이날 피노 회장은 "최고 경영자(CEO)부터 지사장까지 브랜드 전문가들이 변화를 이끄는 것에 신뢰를 느낀다"라며 "새로운 롯데백화점과 장기적으로 좋은 파트너십을 맺고 협력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1일 롯데쇼핑(023530) 백화점사업부 대표가 된 정준호 대표가 취임 100일을 맞았다. 정 대표는 20년 넘게 신세계에 몸 담았던 인물로, 2019년 롯데쇼핑 패션 계열사인 롯데GFR 대표를 거쳐 지난해 롯데백화점 대표 자리에 올랐다. 창사 42년 만에 비(非)롯데맨이 백화점 대표에 선임된 건 처음이다.

그래픽=이은현

그는 취임 후 과감한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3개로 나뉘었던 지역별 관리 시스템을 하나로 통합하고 상품본부를 세분했다. 또 명품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명품 전문가들을 임원으로 영입했다.

샤넬과 지방시코리아 지사장 출신의 이효완 전무를 럭셔리 사업을 총괄하는 MD1부문장으로 선임하고, 루이비통·신세계·삼성물산 등에서 경력을 쌓은 업계 선수들로 팀을 꾸렸다. 롯데백화점이 조직의 핵심인 상품본부 수장에 외부 출신 여성 임원을 발탁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조직문화 개선도 시도했다. 스타트업들이 주로 쓰는 업무용 협업 툴 '잔디'를 전사에 도입하고, 직원들을 대상으로 회사의 비전과 정책을 설명하고 의견을 듣는 '타운 홀' 미팅도 수시로 개최한다.

다음 달엔 상품본부 직원 230여 명이 강남의 공유 오피스 위워크로 사무실을 옮길 예정이다. 대표와 직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화상 회의 플랫폼 줌을 통해 술을 마시며 소통하는 '랜선 회식'도 정 대표 취임 후 처음 시도된 문화다.

이런 변화에 일각에선 '롯데가 스타트업처럼 변모하고 있다'라고 평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정 대표는 조직문화만이 부각되는 걸 경계했다.

그는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조직문화의 중요성이 지나치게 강조되선 안된다"라고 17일 말했다. 조직문화가 필요한 이유는 좋은 회사라는 인식을 외부에 알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마음껏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는 "청바지 입고 후드티 입는다고 조직문화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슈트 입고 넥타이를 매더라도 명확한 비전을 가진 회사에서 개개인이 전문성을 갖고 성장할 수 있다면 회사의 로열티는 생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는 '뉴 롯데'라는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일하는 방식에 있어서의 변화를 시도했다. 대표와 임원, 본부장은 3~5년 후의 롯데를 대비하고, 현업은 팀장을 중심으로 그를 지원하는 형태로 일하는 수평적 조직문화를 조성했다.

예컨대 회의를 하더라도 기존의 팀장 이상이 참석한 '영업 실적 회의'가 아니라, 원하는 직원이라면 누구나 들을 수 있는 '영업 전략 컨퍼런스'를 줌으로 진행한다. 최근 열린 컨퍼런스에는 982명의 직원이 참석해 회사의 비전을 경청했다.

그는 회사의 비전을 직원들에게 최대한 공유한다. 피노 회장과 미팅을 마친 후에도 전 직원이 있는 메신저 창에 "피노 회장과 잘 이야기 했다. 롯데는 잘 되는 일만 남았다는 믿음이 오늘까지 유효하게 진행 중이다"라고 썼다.

너무 많은 내용이 직원들에게 공유돼 경쟁사에게 사업 전략이 새나갈까봐 우려하는 시각도 있지만, 외부로 정보가 나갈 게 두려워 내부 소통을 소극적으로 하는 것보다 전 직원이 회사의 전략적 방향성을 이해하고 의사 결정에 참여한다는 자부심을 갖게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올해 롯데백화점은 '1등 백화점'이라는 명성을 되찾기 위해 리브랜딩 전략을 수립했다. 본점, 강남, 잠실, 인천 등 경쟁력이 있는 점포에 투자를 집중해 수익성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이미 리뉴얼 중인 소공동 본점은 '최장수 백화점'이라는 명성에 맞게 명품 상품을 강화하는 전략으로 업그레이드하고, 강남점과 잠실점은 '강남권 1등 백화점'을 목표로 개편을 시도한다.

업계 일각에선 연매출 2조4000억원의 신세계 강남점에 대항해 매출이 훨씬 못 미치는 강남점을 1등으로 만들겠다는 포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나온다.

이에 정 대표는 "1등 점포가 '매출 1등' 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잠실점은 상권에 맞는 상품과 마케팅을 통해 신세계 강남에 대항할 수 있는 우위를 갖추고, 강남점은 6성급 호텔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오십화점' 수준의 소규모 점포로 인근의 '영 앤 리치' 고객을 만족시키는 럭셔리 백화점으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