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광역시 대종로 480번길을 지명으로 부르는 대전 시민은 거의 없다. 이곳의 또 다른 이름, ‘성심당 거리’로 더 유명하다.
두 블록에 해당하는 이 길에는 성심당 3대 제과 브랜드인 성심당, 성심당케잌부띠끄, 성심당옛맛솜씨와 외식사업부에서 운영하는 플라잉팬, 테라스키친, 삐야또, 우동야 등 식당이 즐비하다.
대전 시민들은 성심당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 지역의 자랑으로 여긴다. 단순히 맛있는 빵을 잘 굽기 때문만은 아니다. 성심당이 대전을 대표하는 로컬 브랜드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지역 공헌 활동을 꾸준히 실천했기 때문이다.
성심당에 들어서면 ‘성심당은 대전의 문화 입니다’란 문구를 볼 수 있다. 이 회사는 설립 초기부터 당일 제조, 당일 판매 원칙을 세우고 남은 빵을 다음날 아침 지역단체나 노숙인에게 기부했다. 수도권 백화점의 입점 제안에도 오직 대전에서만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성심당처럼 잘 자리잡은 로컬 브랜드의 성장 전략을 분석한 ‘로컬 브랜드 리뷰 2022′의 저자 모종린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동네다움을 갖춘 로컬 브랜드는 대기업도 건드릴 수 없다”며 “우리나라 모든 동네를 로컬 브랜드로 만들면 먹고 사는 걱정은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모 교수는 책에서 국내 대표 로컬 브랜드로 ▲연희동 사러가쇼핑센터 ▲대전 성심당 ▲이태원 보마켓 ▲제주도 재주상회 ▲제주도 코코리제주 ▲강릉 테라로사 ▲전주 한복남 등을 꼽았다.
모 교수는 “로컬 브랜드가 가장 쉽게 팬덤을 구축하는 방법은 지역 사랑을 이용하는 것”이라며 “요새 젊은 사람들은 나다움, 동네다움을 추구하고 자기 동네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기 때문에 동네 브랜드를 어떻게든 밀어주고 싶어한다”고 설명했다.
로컬 브랜드가 잘 되려면 대기업은 경쟁자가 되는 대신 플랫폼 역할을 해야 하고, 지자체와 정치권은 읍·면·동 단위의 상권 관리 시스템을 만들고 창업 지원 예산을 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골목길 경제학자’로 불리는 모종린 교수는 전국 곳곳을 다니며 골목길 상권 지도를 완성할 만큼 로컬 브랜드 전문가다. 경리단길과 익선동 등 서울 유명 골목상권 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골목상권을 발굴했다. 골목상권을 둘러싼 경제현상을 설명한 책 ‘골목길 자본론’과 ‘머물고 싶은 동네가 뜬다’ 등을 썼다.
지난해 6월에는 당시 야권 유력 대권주자이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을 서울 연희동에서 만나 ‘골목상권’에 대해 4시간 가까이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모 교수는 당시 “골목문화를 이해하고 있는 정치인은 윤석열 당선인이 유일하다”고 했다. 다음은 모 교수와의 일문일답.
왜 지금 로컬 브랜드에 주목해야 하나.
“1990년대까지 우리나라는 소득 기준으로 잘 사는 나라가 아니었기 때문에 삶의 질, 인생의 멋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다. 잘 산다는 기준이 좋은 동네, 좋은 집, 좋은 차 처럼 획일적이었다. 다양한 삶에 대한 욕구가 없었다.
2000년대 들어오면서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탈물질주의, 개성, 다양성, 삶의 질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이런 욕구를 대기업들이 충족을 못 시켜주고 있다. 기업들은 모든 소비자를 만족시키려고 하고 특정 라이프 스타일을 만족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글로벌 브랜드를 보면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해서, 특정 라이프스타일을 충족시켜 성장한 경우가 많다. 이런 기업이 늘어야 우리나라가 브랜드 강국이 된다. 예를 들어 경주에서 사찰 음식 기반의 비건(vegan·채식) 관련 기업이 나오길 바란다.”
(책에 나오는 사례로 일본의 아웃도어 용품 전문 기업 ‘스노우피크’가 있다. 이 회사 창업주 야마이 유키오는 본인이 쓸 등산장비를 만들면서 사업을 시작했다. 본사가 있는 니가타현은 일본의 명산 다니가와다케가 있고 등산장비 제작에 쓰이는 금속가공업이 유명한 곳이다.
창업주 2세인 야마이 도루 CEO는 매년 최소 100회 이상 캠핑을 하겠다고 약속했고 본사에 대규모 캠핑장을 만들어 누구나 사용하도록 했다.)
우리나라에서 로컬 브랜드가 가장 많이 생겨난 곳은 어딘가.
“홍대와 성수동이다. 지금은 유명 브랜드가 된 스타일난다, 젠틀몬스터, 빈브라더스, 앤트러사이트, 로컬스티치, 폴앤폴리나 등이 모두 홍대에서 시작해 다른 지역으로 뻗어나갔다. 전국에 홍대 같은 산업단지를 50개만 만들면 된다.
일부 연구자들이 1990년대 홍대를 그리워하면서 지금 망가졌다고 얘기하지만, 단편적인 시각이다. 홍대가 만들어낸 브랜드 파워, 관광명소로서 외국인들에게 강하게 어필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홍대의 성공은 우리나라에 강남 이외에도 벤치마킹 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 것이다. "
강력한 팬덤을 구축한 로컬 브랜드의 성공 전략은.
“가장 쉬운 방식이 지역사랑을 이용하는 것이다. 요새 젊은 사람들은 ‘나다움’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내가 사는 동네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우리 세대는 무조건 강남을 바라봤지만, MZ세대(밀레니얼+Z세대, 1980~2004년생)는 내가 사는 곳을 좋은 동네로 만들고 싶어한다.
나다움과 동네다움을 결합한 게 로컬 브랜드다. 예를 들어 연희동이 그룹이라면 연희동에 있는 가게들은 계열사다. 골목길, 건축양식, 쌓인 역사, 주민들, 이 모든 것들이 상호작용하면서 연희동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이걸 대기업이 어떻게 이기겠나. 모든 동네를 브랜드로 만들면 우리나라는 먹고 사는 걱정을 안해도 된다.
로컬에 제대로 뿌리를 박아두면 팬덤 관리는 쉽다. 대표적인 사례가 성심당이다. 대전 사람들의 성심당에 대한 애정은 절대적이다.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에 선 기업들은 대부분 특정 지역에 다른 사람이 복제할 수 없는 생태계를 구축했다. 스타벅스도 시애틀에 생태계를 구축했다. 우리나라 커피 기업이 스타벅스를 이기지 못하는 건 스타벅스 본사가 있는 시애틀의 커피 산업 생태계를 그대로 가져올 수 없기 때문이다.”
로컬 브랜드가 지역에 머물지 않고 다른 지역으로 확장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나.
“미국 에이스호텔의 브랜드 확장 방식을 주목할 만 하다. 에이스호텔은 로컬 문화 체험 프로그램과 주민, 여행자가 교류할 수 있는 라운지를 운영하는 커뮤니티 호텔이다.
에이스호텔은 다른 도시에 출점을 하더라도 그 지역의 로컬이 되려고 한다. 지역 로컬 브랜드나 예술가, 건축가와 협업해서 그 도시 문화를 살리려고 한다. 프랜차이즈 호텔처럼 찍어내는 방식이 아니다.
하지만 특정지역에서만 탄탄하게 자리잡아도 우리나라 경제에 도움이 많이 된다. 현지인처럼 살고 싶다는 관광객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곳은 로컬 브랜드다. 대기업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니다.”
(책에서는 로컬 브랜드의 확장 방식을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한 지역에서만 활동 ▲다른 지역에 진출 할 때도 그 지역의 로컬 브랜드를 지향 ▲전국에 동일한 모델로 진출 ▲창업 초기부터 다수 지역에서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다. 에이스호텔의 확장 방식은 두번째 사례에 해당한다.)
로컬 브랜드 생태계를 확장하기 위해 대기업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마트(139480) 같은 회사가 로컬 브랜드의 플랫폼이 돼야 한다. 로컬 브랜드를 많이 발굴해 브랜드 파워를 키워줘야 한다. 노브랜드 같은 사업은 굉장히 안 좋은 것이다.”
(모 교수는 책에서 대기업의 로컬 브랜드 플랫폼 사례로 현대백화점(069960)의 명인명촌을 소개했다. 명인명촌은 전국 지역 특산물과 장인을 발굴해 자체 브랜드(PB) 상품으로 만든 것이다.
코오롱FnC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에피그램이 2017년부터 팝업스토어(임시매장)을 통해 지역 소도시와 먹거래 브랜드를 소개하는 것과 네이버(NAVER(035420))의 동네시장 장보기, 이마트와 함께 지역명물을 상품화해 온오프라인 매장에서 판매하는 프로젝트도 사례로 제시했다.)
정부와 정치권에선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지자체가 상권 관리를 읍·면·동 단위로 해야 한다. 상인회는 자문기구 역할을 해야 한다. 이들이 변화의 주체가 될 수는 없다. 동네 주민과 상인들, 건물주가 ‘우리 동네의 콘텐츠는 뭐지? 우리 동네에 부족한 건 뭐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정부의 투자가 기술 창업 스타트업 중심으로 이뤄지는 것도 불만이다. 정부는 소상공인을 구조조정 대상, 사양산업이라고 보지만 우리나라 미래에게 굉장히 중요한 자본이다. 로컬 브랜드 중에 대기업이 나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