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가 떠나도 팬은 남는다. 철없는 청소년들의 취미 활동으로 평가절하 됐던 팬덤에 기업들이 주목하는 이유다. 각기 다른 스토리와 정체성을 가진 브랜드가 범람하며 소비자 선택권이 넓어지자 ‘어떻게 소비자를 우리의 팬으로 만들 것인가’가 기업에 가장 중요한 질문이 됐다.
조선비즈는 팬덤이 어떻게 새로운 소비혁명을 이끄는지를 국내외 전문가들과 진단하는 2022 유통산업포럼을 오는 31일 개최한다. 포럼에 앞서 팬덤을 만드는 플랫폼, 로컬 브랜드, 공간 전략은 무엇인지 3편의 인터뷰를 통해 알아본다. [편집자 주]
“팬덤 커뮤니티로 성장한 브랜드는 인터넷 시대 이전부터 있었습니다. 이제는 기술 발전으로 체계화된 프로세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죠. 브랜드의 진정성, 스토리가 있다면 티몬이 성장할 수 있는 종합 솔루션, 이른바 ‘브랜드 풀필먼트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게 앞으로의 비전 입니다.”
쿠팡, 네이버(NAVER(035420)), 이마트(139480)가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으며 이커머스 주도권 경쟁에 돌입한 작년, 티몬의 새로운 사령탑에 국내 이커머스 업계 최초 개발자 출신 장윤석 대표가 올랐다.
인터뷰를 시작하려하자 ‘이게 눈앞에 있어야 안정이 된다’며 노트북을 꺼내든 자칭 공돌이다. 그의 노트북 속에는 티몬이 나아갈 방향을 마인드맵으로 이미지화 한 문서가 있었다. 이 문서에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가 ‘브랜드’다.
장 대표는 티몬의 새로운 비전으로 브랜드 풀필먼트 서비스를 제시했다. 풀필먼트(fulfillment)는 ‘이행’이란 뜻이지만 유통업계에선 상품 보관부터 재고관리까지 일괄 대행 하는 서비스를 칭한다. 아마존이 1999년 일괄 대행 개념을 물류에 처음 도입하며 풀필먼트란 단어를 썼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브랜드 풀필먼트는 브랜드의 강력한 팬덤을 만들어주는 종합 솔루션이다. 브랜드의 정체성을 담은 웹예능을 제작하거나 브랜드 홈을 만들고 소비자들의 응원 활동을 독려하는 플랫폼이 되겠다는 것이다.
티몬 메인화면을 커머스 버전의 인스타그램처럼 바꿀 것이라고 했다. 인플루언서의 콘텐츠에 하트를 누르듯, 브랜드를 구독하는 팬덤 커뮤니티를 만들어줄 계획이다.
장 대표는 아마존, 쿠팡으로 대표되는 이커머스 2.0 시대의 핵심이 싸고 빠른 배송이었다면, 곧 다가올 3.0 시대는 브랜드와 콘텐츠가 좌우할 것이라고 봤다. 장 대표는 “나이키처럼 팬들과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성장하는 방식이 베스트 프랙티스(best practice·모범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콘텐츠가 핵심인 회사의 경쟁력은 기획력과 아이디어다. 장 대표는 취임 후 넷플릭스의 리드 헤이스팅스 CEO가 쓴 ‘규칙없음(No rules rules)’ 100권을 사 직원들에게 돌렸다. 이 책에서 헤이스팅스는 넷플리스의 성공 비결로 ‘자유와 책임 문화’를 꼽았다. 정해진 출퇴근 시간, 근무시간 없는 자유로운 의사결정 구조를 채택하는 대신 성과에 대해 엄격히 평가한다.
장 대표는 티몬에 자리잡은 유통업 특유의 군대식 상하관계를 없애기 위해 직급을 폐지하고 사무실 자리를 없애기로 했다. 본사 기능을 최소화 하고 직원들이 언제 어디서나 일할 수 있게 상반기 내로 스마트·리모트 워크를 전사에 도입할 계획이다. 공간 제약에서 오는 비효율을 없애고 전국 각지의 유능한 인재를 불러 들이기 위해서다.
올해 목표로 했던 기업공개(IPO)는 티몬을 커머스 유통 기업에서 IT 서비스 기업으로 완전히 변신시키는 작업이 끝난 뒤 추진할 계획이다. 그는 “IPO가 목표는 아니다”라며 “좋은 파트너가 있거나 제휴가 필요하다면 인수합병(M&A)도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장 대표와 일문일답.
취임 후 티몬에 새로운 사업모델을 제시하고 조직에도 큰 변화를 줬다.
“티몬의 경쟁력이 약해진 게 사실이다. 그 이유는 남들과 같은 선상에서 경쟁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봤다. 이커머스가 가격 경쟁을 벌이는 게임 판에서는 티몬이 남들보다 뛰어나게 잘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지금의 이런 경쟁이 지속 가능하지 않고 산업의 판도도 바뀌어가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커머스 산업 판도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나.
“이커머스 2.0 시대에서 3.0 시대로 가고 있다. 2.0 시대는 효율성·편의성 중심의 시장 경쟁이 이뤄졌다. 좋은 제품을 싼 가격에 더 빨리 배송해주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했던 아마존, 쿠팡 같은 회사들이 성장했다.
그런데 이런 플랫폼 기능이 보편화·일반화 돼 가고 있다. 이 경우 플랫폼의 힘이 약해지고 콘텐츠가 중요해진다. 넷플릭스가 거액을 들여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드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티몬도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콘텐츠 커머스로 진화하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이커머스 회사를 콘텐츠 회사로 만드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처음 왔을 때 조직에 군대처럼 하이어라키(hierarchy·계급구조)가 뚜렷했다. 제로투원(0to1·기존에 없던 것을 만드는 것)의 서비스를 만들어야 하는데 새로운 서비스에 대한 다양한 시도가 일어날 수 있는 조직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티몬에 영업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자율적으로 일하고, 기획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필요하다. 넷플릭스처럼 모든 직원이 하나하나의 세포처럼 살아 움직이며 다양한 실험을 하고 그게 한 방향을 향해 수렴해가는 조직문화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
상반기에 직원들을 메타버스(3차원 가상 세계)로 출근 시키기로 한 것도 그런 맥락인가.
“작년 10월부터 거래액, 트래픽이 늘었고 충성고객도 증가하는 게 지표로 나타났다. 이런 성과 덕분에 자신감이 생겼고 글로벌한 인재를 모셔오기 위해선 물리적인 공간 제약을 없애는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대표실도 없어질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모델을 갖고 있나.
“시장에서 브랜드 성장에 대한 니즈가 굉장히 높아졌지만 온라인에서 정형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은 없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카페24(042000) 등을 통해 자사몰을 만들기는 쉽지만 브랜드가 알아서 성장하지는 않는다.
가격 경쟁을 해야 하는 플랫폼에서는 브랜드가 성장하기 힘들다. 2019년 나이키가 아마존을 보이콧하고 자사몰을 만들어 대박이 났다. D2C몰(Direct to consumer·기업이 중간판매자를 거치지 않고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에서 다양한 협업을 하고 소비자 반응을 데이터로 확인하면서 피드백을 함으로서 팬덤을 형성했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빅 브랜드는 위험부담 때문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마케팅을 안 했다. 그러나 (콘텐츠 제공자가 유저에게 일방적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웹1.0 시대를 지나 양방향 소통을 하는 웹 2.0 시대가 되면서 쌍방의 커뮤니케이션이 상당히 중요해졌다.
결국 플랫폼이 브랜드가 성장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해줘야 한다. 이것을 티몬은 ‘브랜드 풀필먼트 서비스’라고 부르기로 했다. 브랜드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게 팬덤 커뮤니티다.”
티몬이 브랜드를 어떻게 성장시킬 수 있나.
“온라인, 오프라인, 메타버스 세 가지 공간과 브랜드를 연결해주는 것이다. 브랜드가 온라인에만 갇혀있지 말고 오프라인으로 나와야 브랜딩이 되고 소비자들이 경험을 통해 브랜드에 애착을 갖게 된다.
예를 들어 경기도 파주의 디저트 업체 말똥도넛은 사람들이 인스타그램을 보고 오프라인 매장에 찾아가 다시 SNS에 인증샷을 올리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 티몬은 오프라인 자산이 있는 자산운용사, 지방자치단체와 협업을 추진중이다.
메타버스와 관련해선 브랜드 토큰을 발행해 이용자들에게 강력한 소속감을 줄 수 있다. 생태계를 만드는 데 기여한 사람들에게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경제적 보상이나 혜택을 주는 것이다.
예컨대 유저들이 브랜드가 자기 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동의하면 일종의 브랜드 코인을 수취할 수 있고, 이 코인으로 할인이나 신제품 얼리 액세스(early access·미리 제공)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런 사업모델이 구체화 되는 것은 언제쯤인가.
“상반기에 구체적인 청사진이 나올 것이다. 브랜드 홈은 상반기, 늦어도 하반기 초엔 가시화 될 것이다.”
상장 계획은.
“티몬이 유통 이커머스 기업에서 IT 서비스 기업으로 완전히 트랜스포메이션(transformation·탈바꿈) 해 시장에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시기가 올해 연말쯤이라고 본다. IPO를 연내에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IPO는 기업의 목표가 아니고 자금 조달 수단일 뿐이다. 좋은 파트너가 있거나 제휴 필요성이 있다면 인수합병(M&A)도 가능할 것이다.”
◇ 장윤석 티몬 대표는
1978년생인 장 대표는 연세대학교 컴퓨터과학과를 졸업한 뒤 2007년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씩스클릭에 이어 2013년 콘텐츠 제작업체 피키캐스트를 창업했다. 티몬 창업주이자 이사회 의장인 신현성 테라 대표와의 인연으로 작년 6월부터 티몬 대표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