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서울 CJ CGV(079160) 강남, 홍대, 신촌, 대학로, 여의도 극장 곳곳이 남성 아이돌 그룹 세븐틴의 멤버 버논 사진으로 꾸며졌습니다. 이 공간은 현재 상영하는 영화와 관련한 콘텐츠나 외부 광고로 채워졌던 곳인데요. 수년 전부터 아이돌 팬들이 생일이나 그룹 데뷔일, 드라마 출연일 등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광고주를 자처하고 공간을 사고 있습니다.
극장 운영업체가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사업일 것 같지만, 애초 아이디어 자체가 아이돌 팬들에게서 나왔다고 합니다. 아이돌 팬들이 생일 축하 광고를 버스 정류장, 지하철 역사 등에 싣는 것이 흔해지자 새로운 채널로 상영관을 주목 하기 시작한 건데요. 짧게는 1주일, 길게는 한 달 동안 특정 상영관 안팎을 아이돌 멤버 사진으로 채우고 상영관 이름을 멤버 이름으로 바꾸는 이벤트가 유행처럼 번졌습니다.
CJ CGV가 이런 팬덤 비즈니스에 본격 도전장을 냈습니다. 작년 5월 선보인 온라인 플랫폼 '팬 어라운드(FanAround)'을 통해 아이돌 팬덤과 적극 소통하고자 한 것인데요. 현재 온라인 홈페이지에서 아이돌 팬들의 최근 활동을 소개하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CGV 상영관이나 지하철 역사 내에 광고를 직접 의뢰할 수도 있습니다. 7개월 만에 가입자 수가 10만 명을 넘었습니다.
이 서비스는 작년 7월 신설된 스크린콘텐츠팀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CJ ENM(035760) 출신 허민회 대표가 2020년 말 취임한 이후 공간콘텐츠팀과 함께 만든 조직인데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텅 빈 극장을 어떻게 채울까 하는 고민이 담겨있습니다. 공간콘텐츠팀이 상영관 공간 활용 방안을 고민한다면, 스크린콘텐츠팀은 영화 이외에 관객이 즐길 수 있는 신규 콘텐츠를 만드는 데 집중합니다.
이 스크린콘텐츠팀이 야심 차게 준비한 것이 오는 23일 전국 26개 CGV 극장에서 개봉하는 숏폼(short form·짧은 형태) 콘텐츠 '에이핑크 스페셜 무비: 혼'입니다. 앨범 제작 과정과 공연 준비 모습 등을 담은 일종의 다큐멘터리인데요. CJ CGV가 에이핑크 소속사와 기획한 영상으로, 극장에서 이런 형태의 짧은 영상을 선보이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티켓가격은 5000원으로 영화 관람료(1만4000원)의 3분의 1 수준입니다.
CJ CGV의 한 관계자는 "팬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과 소통하고 싶어 하면서 형성된 일종의 팬덤 비즈니스가 계속 성장 중이라는 점에 주목했다"며 "팬과 아티스트의 협업, 소통을 돕기 위해 숏폼 콘텐츠를 계속 제작하고, 팬들이 소장하고 싶어 할 만한 다양한 굿즈(기념품)를 기획·판매하려 한다"고 전했습니다.
팬덤 비즈니스는 수익성에 특히 큰 도움이 될 전망입니다. CJ CGV는 지난해 10월 CJ올리브네트웍스의 광고 사업부문을 흡수했는데요. 코로나19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의 인기로 대작 영화 개봉이 이전보다 줄면서 스크린 광고 수요는 위축됐습니다. 반면 팬들의 영화관, 지하철 광고 요청은 끊이지 않습니다. CGV 압구정 1관의 광고 비용이 일주일 기준으로 418만원에 달하는데도 말입니다.
CJ CGV의 작년 매출은 전년 대비 26.2% 증가한 7363억원, 영업적자는 2411억원으로 전년(3887억원)보다는 개선됐습니다. 지난해 스파이더맨: 노웨이 홈, 이터널스 등 할리우드 대작이 개봉한 덕분입니다. 다만 김수강 한국신용평가 애널리스트는 "국내 주요 배급사는 아직 올해 상반기 개봉일정을 확정하지 않은 상태여서 당분간 수요 회복 수준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코로나19로 텅 빈 극장에 팬들이 활기를 찾아줄지 주목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