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업계가 스타트업 키우기에 나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업황(業況)이 불확실한 만큼 참신한 아이디어와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스타트업들도 기업의 자금과 연구 인프라·데이터·판로 등을 활용하기 위해 투자금 유치에 적극 나서는 분위기다.
20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현대백화점(069960)그룹은 매년 2월과 8월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체인지엑스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스타트업을 선발해 계열사와 사업할 기회를 제공한다. 최대 5000만원까지 초기 투자하며 재무적 투자(FI)로 후속 투자도 가능하다. 모집 분야는 유통·패션·리빙·식품 등 기존 사업, 뷰티·헬스케어·바이오·친환경·고령 친화·교육 등 신규 사업, 인공지능·클라우드·블록체인 등 디지털 사업이다.
체인지엑스 프로젝트는 국내 최초 가상자산거래소 코빗, 뷰티 MCN(다중 채널 네트워크) 레페리 등을 발굴한 케이스타트업과 진행한다. 앞서 현대백화점그룹은 2020년부터 작년까지 뷰티 MCN 디퍼런트밀리언즈 등 4개 스타트업에 180억원을 투자했다. 현대백화점그룹 관계자는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스타트업을 발굴해 새로운 사업 모델을 창출하고 동반 성장할 수 있다"며 "선순환 구조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신세계(004170)그룹 벤처캐피탈(CVC) 시그나이트파트너스는 지난달 중고 거래 애플리케이션(앱) 번개장터에 신규 투자했다. 번개장터는 빅데이터 스타트업 부스트, 스니커즈 커뮤니티 풋셀, 중고 골프용품 거래 플랫폼 에스브릿지, 의류 편집숍 마케인유 등을 인수한 바 있다. 시그나이트파트너스 측은 "중고 거래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며 "신세계 계열사와 시너지 창출을 고려했다"고 했다.
시그나이트파트너스는 유망 스타트업에 투자해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 2020년 7월 설립됐다. 3개 펀드를 결성해 1000억원 이상의 자금을 운용하고 있다. 국내에선 에이블리(패션 플랫폼), 휴이노(디지털 헬스케어), 만나CEA(스마트팜), 슈퍼키친(신선식품·간편식) 등에 투자했으며 해외에선 동남아시아 차량 호출·배달·금융 서비스 플랫폼 그랩에 투자했다. 비대면과 관련된 리테일테크(유통+기술), 푸드테크(음식+기술) 등에 향후 투자할 계획이다.
롯데그룹 벤처캐피탈 롯데벤처스는 국내 스타트업의 동남아 진출을 돕기 위해 작년 하반기 베트남 법인을 세웠다. 베트남 정부의 기업 등록 발급 승인을 받은 외국계 벤처 투자 법인은 롯데벤처스가 처음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롯데벤처스는 지난 2016년부터 베트남 엑셀러레이터(창업 기획자) 베트남 실리콘밸리와 스타트업 발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2월 신선식품 유통사 샤크마켓에 투자했다. 회사 측은 "1998년 롯데리아를 시작으로 롯데마트 등 19개 계열사가 베트남에 진출한 만큼 양국 스타트업이 성장할 수 있는 가교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GS리테일(007070)은 지난달 푸드 스타트업 쿠캣을 인수했다. 지난 2014년 설립한 쿠캣은 '오늘 뭐 먹지' 등 음식 채널과 200여 개 자체 브랜드(PB) 상품을 판매하는 쿠캣마켓을 운영하고 있다. 쿠캣의 소셜미디어(SNS) 팔로워는 3300만여 명이다. GS리테일은 구주 매수 및 신주 발행 등을 포함해 550억원을 투자했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 1980~2000년대생)를 겨냥한 상품을 편의점 GS25, 슈퍼마켓 GS더프레시, 홈쇼핑 GS샵 등에 선보일 계획이다.
앞서 GS리테일은 작년 5월과 7월 GS25와 GS더프레시에서 쿠캣의 딸기쏙찹쌀떡 등을 선보였는데 각각 냉동 디저트 상품 1위를 차지했다. 이성화 GS리테일 신사업부문 상무는 "글로벌 MZ세대 고객을 1만6000여 개 오프라인 플랫폼으로 모으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감각적이고 차별화된 상품으로 고객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CJ제일제당(097950)은 스타트업 발굴 프로그램 프론티어랩스 2기를 모집하고 있다. 식품 산업 관련 건강, 환경, 빅데이터, 인공지능 스타트업을 선발해 기업당 1억원을 초기 투자하고 3개월간 전문가 멘토링을 거쳐 후속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CJ제일제당은 이를 위해 10억원을 출자했으며 추가 출자할 예정이다.
프론티어랩스 1기에는 인공지능과 초분광 기술로 식품 이물을 검출하는 엘로이랩, 제로웨이스트(쓰레기 없애기) 용기 대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잇그린, 음료 기반 온·오프라인 플랫폼 베러먼데이코리아 등이 참여했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우수한 기술과 플랫폼을 보유한 스타트업이 1기에 참여해 미래 성장 동력에 대한 통찰을 얻고 협업 기회를 만들 수 있었다"며 프론티어랩스를 건전한 성장 프로그램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CJ프레시웨이(051500)는 푸드테크 스타트업과 손잡고 급식·외식 사업자를 위한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모바일 식권 플랫폼 식신과 업무 협약을 맺고 모바일 식권 제공, 빅데이터 기반 외식 트렌드 캐칭 서비스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주방 서비스 플랫폼 쿡썹과는 가상 주방 서비스를 활용한 외식 사업자를 확대할 예정이다. 김종선 CJ프레시웨이 전략기획담당은 "기술 발전과 빠르게 변하는 소비 패턴에 대응하기 위해 협업을 결정했다"고 했다.
하이트진로(000080)는 최근 친환경 제품을 개발하는 슈퍼블릭과 지분 투자 계약을 체결했다. 2020년 2월 설립된 슈퍼블릭은 고체 형태의 합성 세제를 개발해 플라스틱 포장을 줄이고 판매 가격을 낮춘 신개념 세정제로 환경부 그린 뉴딜 친환경 기업에 선정됐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기후 위기 등 세계가 직면한 문제에 관심을 갖고 지속 가능한 제품을 연구하는 핵심 가치가 하이트진로와 부합했다"고 했다.
하이트진로는 지난달 예술품과 소비자를 연결하는 IP(지적 재산) 커머스 스타트업 옴니아트와도 지분 투자 계약을 맺었다. 옴니아트는 예술품, 캐릭터, 기업 로고 등을 등록하면 소비자가 원하는 의류, 가방, 생활 잡화에 이미지를 붙여 커스텀(맞춤 제작) 제품을 제작해주는 얼킨캔버스를 운영한다. 얼킨캔버스는 개인의 취향과 희소성을 중시하는 20~30대에게 주목받으며 월 5만 명 이상이 방문한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기존에 없던 사업 모델을 구축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며 "경쟁력을 갖춘 다양한 스타트업을 발굴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