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도 끊임없는 도전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고 어떻게 추진력을 발휘하는 걸까. 조선비즈는 유통업계에 활기를 불어넣는 유통인들을 만나 연쇄 인터뷰를 진행한다. [편집자주]

김영애 롯데백화점 아트비즈니스실장. /롯데백화점

"백화점이 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이유요? 이 시대의 가장 큰 볼거리가 예술이기 때문이죠."

최근 새단장한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5·6층 남성관, 곳곳에 예술 작품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전광영, 김홍식, 차영석, 전영경 등 미술계의 주목받는 작가의 작품들로 구성된 '뮤지엄 비지터(The Museum Visitior)' 전시다. 작품들은 한데 모여있지 않고, 상점의 벽과 에스컬레이터 옆, 본점과 애비뉴엘(명품관)을 잇는 복도 등에 배치돼 조화를 이룬다.

지난 8일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만난 김영애 아트비즈니스실장(상무)은 "공간 개편 작업을 할 때부터 그림 걸 곳을 생각했다"며 "남성층은 묵직한 작품을, 여성층은 화사한 작품을 걸었는데, 고객들로부터 많은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고 했다.

김 상무는 지난해 9월 롯데백화점이 신설한 아트비즈니스실장으로 합류해 예술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롯데쇼핑(023530)이 1979년 롯데쇼핑센터 개관과 함께 롯데갤러리를 선보인 이래 미술 전문가를 임원급으로 영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상무는 이화여대 서양화과 졸업 후 프랑스 에콜 뒤 루브르에서 박물관학 석사를 취득하고, 파리8 대학에서 미디어아트 미학으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이후 국내에서 이안아트컨설팅을 설립해 운영하다 롯데에 합류했다. 그는 "예술이 사람들의 삶에 들어가는데 백화점이 많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 상무와의 일문일답.

백화점이 미술 사업을 강화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백화점이 미술 사업을 한 역사는 오래됐다. 1955년 이중섭 화가가 전시한 갤러리가 미도파백화점 화랑, 지금의 롯데백화점 영플라자 본점 건물이다.

롯데백화점은 롯데쇼핑센터 설립 당시 '롯데 화랑'을 개관한 후 현재 '롯데갤러리'에 이르기까지 43년째 미술 사업을 해오고 있다. 상업 화랑이 빈약하던 초기엔 주요 작가 전시를 열어 화단의 성장을 지탱했고, 민간 화랑이 늘어난 2000년대엔 미술 대중화에 초점을 두고 갤러리를 운영해왔다.

작년을 기점으로 미술 시장이 부상하면서 유통업계에 "미술 사업을 제대로 해보자"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롯데백화점도 지난해 갤러리 전담 조직인 아트비즈니스실을 신설하고, 고객들에게 더 전문적으로 미술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롯데백화점 본점 4층 여성복 매장에 전시된 김홍주 작가의 작품. 6작품이 한 세트다. /김은영 기자

아트 비즈니스실이 하는 일을 소개해 달라

"본점, 잠실점, 인천터미널점, 동탄점, 광복점, 광주점 등 6곳에서 갤러리를 운영 중이다. 점포 내 아트월(Art wall·디자인된 벽)에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일도 담당한다. 작품 옆에 설명과 함께 아트비즈니스실 전화번호를 표기해 뒀는데, 고객에게 연락이 오면 직접 작품 상담을 해준다. 지금도 큐레이터 한 명이 고객을 만나는 중이다.

온라인 갤러리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온·오프라인 플랫폼을 통해 선보인 작품은 총 1000여 점으로, 이 중 200여 점이 판매됐다."

반응이 좋은 작품은 무엇인가.

"단색화의 인기가 좋다. 가장 비싸게 팔린 작품도 6억원짜리 단색화였다. 최근 본점 아트월에 선보인 작품 중에선 김홍주 작가의 판화 시리즈가 3세트 팔렸고, 이소윤 작가의 작품이 완판됐다.

백화점 갤러리엔 집에 걸어 두는 용도로 작품을 찾는 개인 컬렉터가 많다. 가격 상승이 기대되는 유명 작품뿐만 아니라, 취향에 맞는 적당한 가격대의 작품을 선호한다. 패션과 명품에 관심이 있는 MVG(롯데백화점의 VIP)가 처음 작품을 구매하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시각적인 만족도가 높은 작품을 소개하려고 한다."

지난해 8월 개장한 롯데백화점 동탄점 1층, 데이비드 호크니의 대형 작품이 걸려있다. /김은영 기자

동탄점에 전시된 데이비드 호크니 작품을 인상 깊게 봤다. 롯데뿐 아니라 백화점 업계가 미술 사업을 강화하는 추세인데, 롯데만의 차별화 전략이 있다면.

"일부 백화점이 맥락 없이 돈이 되는 작품을 가져다 전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획일적인 전시는 지양한다. 고객들이 쇼핑을 하면서 지적인 영감을 얻을 수 있도록, 콘텐츠 기반의 전시를 선보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예컨대 롯데 설립의 영감이 된 작가 괴테를 주제로 한 작품을 선보이거나, 여성 작가들의 작품만 모아 전시하는 식이다.

작품 가격대도 다양하다. 수 억원대 유명 작가 작품부터 30만원짜리 신진 작가의 작품도 판다. 현재 미술 시장에서 인지도가 낮더라도, 성장 가능성이 높은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해 고객들이 다양한 미술을 향유하도록 제안하고 있다. 실제 일부 작품은 팔리자마자 가격이 올랐다."

아트테크(미술품 투자)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향후 미술 시장을 전망한다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풀린 유동 자금이 미술 시장으로 옮겨오면서 아트테크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올해 국내 미술 시장 규모가 1조원을 돌파할 거란 전망도 나온다.

나는 이런 흐름이 지속될 것이라 예상한다. 한 번 높아진 취향은 내려가지 않기 때문이다. 가정집이 나오는 TV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그림이 안 걸린 집이 없다. 우리의 일상에 이미 미술이 스며들었음을 의미하는 대목이다. 컬렉터의 연령대가 낮아지고, 온라인 구매가 늘고 있다는 점도 미술 시장의 꾸준한 성장을 예상케 하는 이유다."

롯데백화점 본점 5층에 전시된 곽철안 작가의 조형 작품. /김은영 기자

초보 컬렉터를 위해 작품 고르는 팁을 소개한다면.

"향후 차액 실현이 목적이라면 옥션(경매)에 가길 권한다. 주식 차트를 보듯 6개월 정도 들여다보면, 뜨는 작품이 보일 것이다. 미술품 리셀(재판매)이 주로 옥션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옥션의 흐름을 잘 분석하는 게 중요하다.

작품을 즐기는 게 목적이라면 작가의 프로필을 보라. 출신 학교가 아니라 미술에 대한 작가의 진정성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그 작가를 관리하는 갤러리가 어디인지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좋은 갤러리일수록 소속 작가의 가치를 높이는 기술이 뛰어나다.

컬렉터의 힘도 중요하다. 작품성은 떨어지지만, 대기업 회장이 구매해 '사업이 잘된다. 돈이 들어온다'고 소문이 나 가격이 오르는 경우도 종종 있다."

앞으로의 목표는?

"쇼핑이 온라인으로 대체되고 있지만, 경험과 체험에 대한 소비자들의 욕구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그런 분들이 백화점에서 지적 자극과 영감을 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전시를 선보일 계획이다. 롯데백화점에 가면 볼거리가 많다는 평가를 얻을 수 있도록 실험적인 프로젝트도 구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