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 아래 홀드 밟으면 쉬워" "나이스"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CGV피카디리1958 내에 자리한 클라이밍짐 '피커스(PEAKERS)'. 평일 오전이었지만 10여명 클라이머가 공간을 채운 채 탄식하거나 환호했다. 앞서 벽을 오르는 사람이 길을 못 찾거나 실수하면 같이 아쉬워하고, 성공하면 함께 기뻐했다.

피커스를 운영하는 위탁업체 훅클라이밍의 김영진 부장은 "휴일이었던 지난 2일은 하루에만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CGV피카디리1958을 찾아 영화가 아닌 클라이밍을 즐겼다"고 말했다.

CJ CGV가 서울 종로구 CGV피카디리1958에서 선보인 클라이밍짐 피커스를 찾은 한 클라이머가 자신의 등반 모습을 촬영하고 있다. /배동주 기자

CJ CGV(079160)의 영화관 CGV피카디리1958이 젊은 클라이머들의 도심 속 성지로 자리 잡았다. 지난 1월 7일 CJ CGV가 극장가 불황에 맞서 지하 4층 7·8관 359석 규모의 상영관 두 곳을 개조해 클라이밍짐으로 변신한 지 약 한 달 만이다.

오수진 CGV 공간콘텐츠팀장은 "2021년 7월 영화관이란 공간을 새롭게 꾸미는 공간콘텐츠팀이 새로 출범했다"면서 "영화와 같이 고객들이 꾸준히 즐길 수 있는 여가가 어떤 것이 있을지 고민하다 영화관의 높은 층고를 활용할 수 있는 클라이밍짐을 떠올렸다"고 설명했다.

클라이밍은 자연 암벽을 형상화한 손잡이(홀드·hold)를 잡거나 발을 디뎌 오르는 스포츠다. 정해진 코스를 빠르게 오르는 스피드, 15m 이상 높이를 오르는 리드, 4m가량 낮은 벽을 오르는 볼더링 등으로 구성된다. 최근엔 실내서 즐기기 쉬운 볼더링이 인기를 끌고 있다.

영화관을 개조한 CJ CGV의 첫 클라이밍짐 피커스는 볼더링 코스가 주를 이룬다. 각 코스를 '문제'라 부르는데 피커스는 영화 상영관을 활용해 문제의 최고 높이가 5.7m에 달하는 점이 인기 요소로 꼽힌다. 최고 높이 기준 볼더링 코스의 기준인 4m 이상을 훌쩍 뛰어넘는다.

서울 종로구 CGV피카디리1958 내에 자리한 클라이밍짐 '피커스'. /배동주 기자

2년차 클라이머 이창훈(38)씨는 "홀드가 설치된 벽이 서울에서 방문해 본 그 어떤 곳보다 높아 문제를 푸는 재미가 있다"면서 "최근 들어선 이곳만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람이 많아도 동선이 겹치지 않아 쾌적하다"고 설명했다.

피커스는 스크린이 위치했던 상영관 전면과 객석이 위치한 후면 공간 각각 둘로 나눠 2개 상영관을 총 4개 공간으로 구분했다. 이곳을 다시 총 5개의 볼더링 벽으로 세분화하고 문제 구성 등 운영 전반을 클라이밍짐 운영 전문업체인 훅클라이밍에 위탁했다.

피커스에는 총 140개 코스가 있다. 각 코스별로 같은 색의 홀드가 놓인다. 어떤 홀드가 어떻게 배치돼 있느냐에 따라 코스, 즉 문제의 난이도가 달라진다. 훅클라이밍은 각 볼더링 벽의 문제를 1주일에 한 번씩 교체해 새로운 문제를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CJ CGV가 CGV피카디리1958 내 상영관을 개조해 만든 클라이밍짐 피커스. 최고 높이가 5.7m에 달한다. /배동주 기자

CJ CGV 내부에선 클라이밍짐으로의 이번 변신이 성공적이란 평가가 나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영화관을 찾는 발길이 줄고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확산하는 데 따른 자구책이었지만, 고객 유입 성과로 나타나면서다.

CJ CGV에 따르면 지난 한 달여 기간 동안 피커스를 찾은 고객 수만 약 30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황재현 CJ CGV 커뮤니케이션팀장은 "기존 8개였던 상영관이 6개 관으로 줄었지만, 영화 관람객 수는 그대로인 반면 피커스를 찾는 고객이 늘면서 방문 고객이 순증했다"면서 "지역 특성상 2030세대 젊은 층의 유입도 적었는데 피커스를 통해 고객 구성도 달라졌다"고 말했다.

피커스는 CJ CGV의 실적 개선 돌파구로도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하루 2만원인 이용권 판매 수익이 모두 CJ CGV의 매출로 잡히기 때문이다. 정기 회원권은 1개월에 13만원, 3개월에 30만원이다. CJ CGV는 훅클라이밍으로 위탁 운영비만을 지불한다.

CGV피카디리1958의 상영관 옆으로 클라이밍짐 피커스가 붙어있다. /배동주 기자

이 회사는 2019년 개별 기준 1조원을 넘어섰던 매출이 2020년 3258억원으로 68% 줄었다. 이 기간 2037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 전환했다. 황 팀장은 "아직은 피커스가 실적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지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CJ CGV는 새로운 공간 실험을 계속한다는 계획이다. 그동안 좌석 띄어 앉기, 자동차 극장 등 안전한 관람환경을 내세우며 반등을 노려왔지만, 영화 시장의 침체로 개봉하는 영화가 현저히 줄어 전환점을 찾는데 실패했다.

오 팀장은 "총 8명의 공간콘텐츠팀이 스포츠 공간으로의 전환, 상영관 고급화 등을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다"면서 "영화 감상을 넘어 클라이밍과 같이 전혀 새로운 여가활동을 제안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확장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