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를 ‘팬’으로 만드는, 요즘 잘 나가는 기업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브랜딩이나 마케팅에서 ‘내러티브’를 잘 활용하는 기업은 열렬한 소비자의 사랑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매출 증대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 내러티브란 비전과 세계관 등 특정 관점이나 가치관을 담아낸 강력한 서사로, 감성을 기반으로 한다. ‘방탄소년단(BTS)’ ‘에스파’ 등 최근 K팝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세계관’도 내러티브 전략 중 하나다. 이제 우리는 물건을 사고 음악을 들을 때도 내러티브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됐다. ‘이코노미조선’은 브랜딩에 내러티브를 성공적으로 적용한 기업을 조명하고 소비자들의 내러티브에 매료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조명했다. [편집자주]

광고 업계에서 ‘세계관 장인’으로 우뚝 선 7년 차 광고대행사가 있다. 파격적인 회사명 발음만큼 연일 파격적인 광고를 만드는 ‘스튜디오좋’이다. 스튜디오좋은 2020년 빙그레의 세계관 광고, ‘빙그레우스 더 마시스’ 왕자님으로 그야말로 ‘빵’ 떴다. 이후 인기 프로게이머 ‘페이커’가 출연해 수많은 밈(meme·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사진이나 영상)을 양산한 ‘클레브’ 광고로도 수많은 마니아층을 얻었다.

빙그레 제품으로 휘감은 분홍 머리의 잘생긴 왕자님이자 빙그레 왕국의 후계자인 빙그레우스가 ‘인스타그램 계정 관리를 잘해야 왕위를 계승할 수 있다’는 사연이 알려지면서 세계관 놀이에 푹 빠진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됐다. 빙그레 공식 인스타그램 구독자는 빙그레우스 덕에 17만 명에 가까워졌다. 이번엔 ‘삼양식품’ 세계관도 만들었다. 화제성과 함께 실력을 인정받은 스튜디오좋은 2021년 대한민국광고대상과 서울영상광고제에서도 상을 휩쓸었다.

‘이코노미조선’은 1월 10일 서울 신사동 스튜디오좋 본사에서 세계관 ‘끝판왕’ 해리포터 ‘덕후’라고 소개하는 제일기획 카피라이터 출신인 남우리 CD와 제일기획 아트디렉터 출신인 송재원 감독을 만났다. 둘은 부부로,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세계관으로 광고판을 흔든 빙그레우스를 만들었다.

남우리 “2020년부터 빙그레우스 광고를 기획·제작하고 인스타그램 운영을 맡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소셜미디어 운영 전문이 아니라서 기존 운영 문법대로 안 하고 우리가 잘하는 ‘영상’으로 접근했다. 인스타그램은 하나의 매체일 뿐, 애니메이션을 론칭한다고 생각했다. 무식해서 오히려 독특했다.”

송재원 “인스타그램은 화자가 누구냐에 따라 매력이 달라진다. 빙그레 제품의 집합체인 빙그레우스 캐릭터를 통해 빙그레 소식과 이야기를 전달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비비빅 같은 캐릭터들이 더해지면서 세계관과 광고 요소가 풍부해졌다.”

엔터 업계도 아닌, 유통기업과 세계관이라니, 조합이 신선했다.

남우리 “빙그레라서 세계관 설정이 가능했다. 제품군이 굉장히 다양하다. 오래된 제품과 신제품도 섞여 있다. 세계관을 만들기에 매우 적절한 브랜드였다. 빙그레우스 세계관에서 우리는 제품 특성을 그대로 녹였다. 가령, 빙그레에서 가장 오래된 아이스크림인 ‘투게더’는 빙그레우스 집안을 계속 이끌어온 집사인 ‘투게더리고리경’이 됐다. 사람들이 캐릭터를 좋아하면 그 제품 특성을 다 알게끔 했다.”

송재원 “주로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를 먼저 보고 재미를 느끼면 굿즈를 산다. 그런데 빙그레는 역으로 이미 굿즈(빙그레 제품)가 있고 거기에 맞는 콘텐츠를 역으로 붙인 격이다. 특히 바나나맛 우유, 메로나와 같이 빙그레 제품은 대부분 스테디셀러다. 브랜드를 캐릭터로 치환하는데, 사람들이 그 브랜드를 모르면 캐릭터를 친근하게 느끼기 어렵다. 이미 우리는 십수년간 빙그레 제품을 먹어왔기 때문에 캐릭터 개발이 수월했다.”

QR코드를 찍으면 ‘빙그레 메이커를 위하여’ 영상이 재생됩니다.

빙그레우스 세계관 설정 과정이 궁금하다.

남우리 “진짜 나라를 세운다고 생각했다. 당시 카피라이터 팀원에게는 빙그레 세계관에서 쓸만한 국어사전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직급체계부터, 빙그레 세계 속 신을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등 단어 모음집을 집대성한 것이다. 또 우리는 병렬식 구조 세계관을 설정했다. 직렬식 이야기 구조면 하나가 잘못돼면 내용이 엉킨다. 팀원 각자가 자기 맘대로 하면서도 세계관이 꼬이지 않으려고 빙그레우스 캐릭터하에 모든 캐릭터가 병렬식으로 구성되도록 판을 짰다.”

송재원 ”빙그레우스 작업은 아이디어를 내는 규칙만 내부적으로 공유돼 있는 상태에서 이뤄졌다. 영업 기밀이지만⋯, 규칙 중 하나는 ‘세계관 뼈대에서 빙그레 제품으로 바꿀 수 있는 것들은 다 바꾼다’였다. ‘예뻐서 이렇게 그렸어요’는 안 된다. 빙그레 왕국 성 기둥은 빙그레 제품 실루엣이다. 성 맨 꼭대기는 바나나맛 우유 모양으로 돼 있다. 실제로 바나나맛 우유가 빙그레 매출 ‘톱’이기 때문이다. 빙그레우스 왕관도 바나나맛 우유다. 또 빙그레 제품 중 끌레도르 아이스크림이 있는데 끌레도르 뜻이 ‘열쇠’다. 그래서 빙그레우스가 비밀의 방문을 열 때 끌레도르를 사용한다. 이는 철저한 조사와 치환 작업이다.”

최근 뮤지컬 형식의 삼양식품 세계관도 만들었다.

남우리 ”빙그레우스가 유명해지고 여러 기업이 광고 요청을 했다. 이번에 삼양은 60년 된 기업이라 세계관 재료가 많기도 하고, 최초의 라면인 ‘삼양라면’과 최근 큰 인기를 끈 ‘불닭볶음면’을 동시에 갖고 있는 점이 재밌어서 작업했다. 신구의 대비다. 우리는 작업할 때 삼양 측에 사소한 것까지 다 말해달라고 했다. 회사가 60년을 버틴다는 건 이미 방대한 서사(敍事⋅narrative)가 그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송재원 ”이번 광고에서 ‘불닭(불닭볶음면 캐릭터 이름)’이 기존 ‘삼양63(삼양라면 캐릭터 이름)’을 따르지 않고 혼자만의 길을 가는 장면이 있다. 이것도 사장님이 따님과 함께 명동에 갔을 때 사람들이 더 매운 음식을 울면서도 먹고 있는 것을 보고 개발하게 됐다고 한 이야기를 토대로 넣은 장면이다.”

어떻게 ‘서사, 세계관 장인’이 됐나.

남우리 ”젠체하지 않으려다 보니 서사 형식의 광고를 만들게 됐다. 있어 보이는 말과 그림 등 낭비하는 모든 초 수를 배제하다 보니 서사적으로 접근하는 게 제일 압축적이면서 효율적이더라. 세계관을 만들 땐 ‘뻔뻔함’이 가장 중요하다. 세계를 만들기로 마음먹었으면 내가 그 세계를 믿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광고 영상을 보면 ‘이 세상은 이런 세상이란다’라는 설명 없이 바로 시작한다. 그게 내가 사람들을 몰입시키는 방법이다. 그러려면 세계관을 만들 때 그런 설명 없이도 가시적으로 보이는 서사를 만들어야 한다.

페이커와 ‘불 좀 꺼줄래? 내 램 좀 보게’ 밈으로 화제가 됐던 클레브의 발광 램 광고도 사실 세계관을 접목한 광고다. 마음속 대표작이다. 발광 램은 사실 컴퓨터 본체 안에 들어가면 빛이 안 보인다. 그래서 광고 속 세계는 램 불빛이 가장 중요한 세계로 설정했다. 기분도 램 색깔로 말하고, 불 끄고 종일 램 불빛을 보고 있고. 뻔뻔하게 세계관을 내비쳤다.”

세계관 광고 반응은 어땠나.

남우리 ”삼양라면 광고가 공개된 첫날 매출이 1400% 뛰었다고 해 뿌듯했다. 사람들이 삼양라면 광고 해석본을 댓글로 올려주더라. 신입사원이나 할법한 브랜드 분석을 소비자가 세계관을 통해 한 것이다.”

송재원 ”인터넷에 우리가 만든 콘텐츠를 정리해서 올려놓는 분들도 있다. 많이 감사하다. 직접 정리한 사람이나 우리가 만든 브랜드 광고를 본 사람 입장에서는 그 브랜드는 더는 단순한 브랜드가 아니게 된다. 깊이가 훨씬 깊어지고 서사가 있는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 어딘가에서 제품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소비자는 서사를 아는 브랜드의 제품을 선택할 것이다.”

최근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스튜디오좋을 인수했다.

남우리 ”삼양라면이나 빙그레우스 등 세계관 광고는 지식재산권(IP) 역할도 한다. 시리즈화할 수 있고, 영상 자체가 콘텐츠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카카오엔터는 이를 확장 가능성이 큰 커머셜 IP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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