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손민균

"오늘 저녁에 한강에서 만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된 작년 8월, 편의점 CU가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 연 한강공원점은 화려하게 치장한 시민들로 북적였다.

이곳에선 마스크를 낄 필요도 없이 편의점 군것질거리를 먹으며 친구(아바타)들과 수다를 떨며 놀 수 있다. CU가 지난해 제페토에 개설한 편의점은 3개점으로, 월평균 550만 명이 방문했다. 제페토용 화폐로 구매할 수 있는 아바타용 유니폼과 가방, 신발 등은 총 45만 개가 팔렸다.

메타버스(Metaverse)에 대한 유통업계의 관심은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메타버스란 초월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세계·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현실과 연동된 3차원 가상세계를 뜻한다.

처음엔 게임 속 세상으로 치부됐지만,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혼합현실(MR) 등 첨단기술과 결합한 입체 공간에서 소통하고 소비하며 현실세계와 가상세계를 연동하는 개념으로 확장하고 있다.

백화점 짓고 가상모델 만들고… 메타버스 올라타는 유통업계

메타버스는 이제 막 시장을 형성하는 단계다. 하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붐을 주도했던 페이스북이 메타버스로 돈을 벌겠다며 사명을 '메타'로 바꾸고,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 등 빅테크 기업도 VR기기 및 메타버스 플랫폼 개발에 뛰어든 만큼 5~10년 후면 완전한 메타 제품과 서비스가 나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는 메타버스 시장 규모가 2020년 4787억 달러(약 569조원)에서 2024년 7833억 달러(931조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메타버스가 차세대 소셜 미디어와 스트리밍, 게임 플랫폼을 대체하며 최대 8조 달러(약 9000조원)의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관측했다.

유통업계도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다. 나이키와 구찌 등 글로벌 브랜드를 비롯해 GS리테일(007070), 이마트(139480) 등 국내 기업들도 메타버스 플랫폼에 매장을 내거나 신입사원 채용설명회를 진행했다. 롯데쇼핑(023530)은 한 발 나아가 상품 전시와 구매가 가능한 독자적인 메타버스 백화점을 올해 안에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메타버스가 뜬 이유는 소통과 체험에 대한 소비자들의 요구가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로 1년 넘게 비대면 생활이 지속되면서 체험의 욕구를 풀 수 있는 가상공간이 주목받았다. 가구점에 가는 대신 이케아의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AR로 주거공간을 인테리어 해보고 주문하는 식이다. VR이나 AR을 활용한 접근 방식은 SNS보다 더 몰입감을 높여준다.

미래 소비 주역인 Z세대(2000년대 중반 이후 출생한 세대)를 중심으로 메타버스 이용자가 늘고 있다는 점도 업체들이 주목하는 이유다. 포트나이트, 로블록스, 제페토 등 주요 메타버스 서비스 가입자는 각각 2억~3억 명으로, 10대가 9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이 가상현실 속 아바타 꾸미기에 집중하면서 아바타에게 디지털 의류를 파는 D2A(Direct to Avatar) 시장도 성행한다. 로블록스에서는 구찌의 한정판 디지털 핸드백이 실제보다 더 비싼 값에 팔렸다.

CU의 메타버스 전략을 총괄하는 오영란 BGF리테일(282330) 마케팅 실장은 "Z세대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들어가기 위해 제페토와 손을 잡았다"며 "단순히 둘러보고 나가는 장소가 아니라 고객이 새로움을 얻고 직접 참여하고 경험하는 살아있는 플랫폼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5년 후엔 메타버스 상거래 가능할 것

일각에선 메타버스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앞서 2003년 VR 기반의 게임 '세컨드 라이프'가 호응을 얻지 못했듯, 가상공간에 대한 수요가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에서다. 현재의 마케팅 수준을 넘어 상거래(커머스)로 발전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품는 이도 많다.

<메타버스>를 쓴 김상균 강원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메타버스의 본질에 대한 이해 없이 제페토만 하려니 사고가 협소해 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투명 인터랙티브 디스플레이가 장착된 자율주행차를 타고 이동하며 쇼핑을 하는 것도 메타버스가 가져올 미래"라며 "다양한 기기와 플랫폼을 활용해 고객 경험을 확장하는 새로운 세상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기술적으로 메타버스 플랫폼에 쇼핑몰을 만들고 그곳에서 물건 사는 게 가능한 상황이지만, 당장은 소비자들의 접근성이 낮아 추천하지 않는다"며 "현실과 메타버스를 연결해 가치를 창출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미국 멕시칸 식당 치폴레는 로블록스에서 핼러윈 이벤트를 진행했다. /치폴레

미국 멕시칸 레스토랑 치폴레는 매년 핼러윈 데이에 매장에서 열던 부리토 증정 행사를 지난해 로블록스에서 진행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가상 매장을 방문한 이들에게 핼러윈 코스튬 아이템과 함께 실제 매장에서 부리토를 받을 수 있는 코드를 제공해 오프라인 매장 방문을 유도했다.

이케아 대만은 종이 카탈로그 속 이미지를 닌텐도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의 아이템으로 재현해 자사의 디지털 전환 방침을 홍보했다. 이케아는 지난해 70년간 출간해 온 종이 카탈로그를 폐간했다.

오프라인 매장에도 메타버스를 도입할 수 있다. 점포의 증축 공사 등으로 영업이 어려울 때 해당 점포를 AR 공간으로 만들어 고객들이 계속 쇼핑을 할 수 있게 돕는 식이다.

콘텐츠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트렌드 정보회사 트렌드506을 운영하는 이정민 대표는 "가상세계에서 삼성과 LG의 품질을 구별하기란 쉽지 않다. 제품과 서비스의 차이를 강조하기 어렵기 때문에 스토리와 콘텐츠로 차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가 로블록스 안에 나이키 본사를 본 딴 '나이키 랜드'를 세우고 현실에서 파는 옷과 신발을 아바타에게 입혀 게임하게 해 브랜드의 도전 정신을 강조했듯, 확실한 브랜드 가치와 스토리가 있어야 소비자들과 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실에선 맬 수도 없는 4115달러(약 486만원)짜리 가방이 팔린 이유도 장인이 한땀 한땀 만들어서가 아니라 그 자체가 '이탈리아 명품 구찌'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