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상거래 기업 마켓컬리가 올해 상반기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전자지급결제대행(PG) 업체를 인수했다. 오픈마켓 전환으로 몸집을 불리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많지만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들은 김슬아 대표가 더 큰 그림을 그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고객 록인(lock in·가두기)에 도움이 되는 마이데이터와 선불식 충전사업으로 확장하기 쉬운 여건이 마련되서다.
4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마켓컬리 운영사 컬리는 작년 9월 PG업체 페이봇을 인수한 뒤 사명을 컬리페이로 바꾸고, 자본금을 11억8000만원에서 54억8000만원으로 대폭 확대했다.
컬리페이 대표이사는 김종훈 컬리 최고재무책임자(CFO)가 맡고 사내이사에 박진경 재무실 시니어리더, 조문옥 커머스 개발총괄 리더, 감사에는 김주희 사내변호사를 선임하는 등 이사진을 교체했다.
정관상 사업목적에는 기존 전자결제대행업을 삭제하고 ▲전자금융업 ▲멤버십서비스업 ▲본인신용정보관리업을 추가했다.
전자금융업은 전자금융거래법상 전자결제대행업을 비롯해 ▲전자자금 이체 ▲직불 전자지급수단 발행·관리 ▲선불 전자지급수단 발행·관리까지를 포괄한다. 기존 페이봇이 하던 결제대행업을 넘어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같은 충전식 선불사업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자본금을 확대한 것도 이런 방향성과 관련 있다. 전자금융거래업에 속하는 사업을 하려면 금융위원회로부터 충분한 전문인력과 전산설비 등 물적 시설을 갖췄는지 등에 대해 자료를 제출하고 등록해야 한다.
자본금 요건은 PG업이 10억원, 직불·선불 전자지급수단 발행·관리업은 20억원, 전자자금 이체업은 30억원이다. 등록 서류가 동일하므로 일단 PG사로 등록을 한 뒤 자본금을 확충하면 전자금융업 내 다른 업종으로의 확장이 쉽다.
커머스 분야에서 주목하는 건 선불업이다. 네이버페이와 카카오페이처럼 소비자가 은행 계좌나 신용카드와 연결해 미리 돈을 충전해 놓고 쓸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컬리는 현재 적립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상품을 100% 직매입하고 있어 회사의 손익에만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컬리가 올해 외부 입점업체를 받기로 한 만큼, 고객이 적립금을 입점업체 상품을 구입할 때도 쓸 수 있게 하려면 선불전자지급수단으로서 금융위 등록이 필요하다.
또 하나 눈여겨볼 부분은 '본인신용정보관리업'을 새롭게 추가했다는 점이다. 정부가 올해 본격 시행하는 본인신용정보관리업은 '마이데이터'라고도 부르는데 금융사와 빅테크 등에 흩어진 모든 개인 데이터들을 한데 모아 관리하는 것이다.
금융사와 통신사 등 개별기업에 흩어진 정보를 소비자의 동의를 받아 혼합, 분석해 개인 맞춤형 상품을 제공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금융위의 허가를 받아야 사업 추진이 가능한데, 컬리는 아직 신청은 하지 않았다.
컬리 측 한 관계자는 "페이봇 인수는 위탁 매매 과정에서 발생하는 결제·전산 상 문제를 해결하고 결제 시스템을 고도화하기 위한 목적"이라며 "이제 인수 서류 작업을 마무리 했기 때문에 지금 바로 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마이데이터 사업도 본격 추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커머스 기업 가운데선 11번가가 작년 9월 금융위에 마이데이터 예비허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에 앞서 2020년 농협은행과 업무협약(MOU)을 맺고 은행 금융정보와 11번가의 유통 정보를 결합한 신용평가 모델을 구축해, 데이터를 기반으로 맞춤형 상품 추천 서비스를 고도화하기로 했다.
컬리는 회원 수가 1000만명까지 늘어난 만큼 이들의 고객 데이터를 외부 금융사나 통신사 등과 연계해 상품 검색·추천 서비스를 고도화 할 수 있다.
마이데이터와 유사한 사업을 하는 영국의 디지미(Digi.me), 네덜란드ING은행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욜트 등은 광고 수익이나 데이터를 가공한 뒤 외부업체에 제공하는 방식으로 돈을 번다.
고객의 구매 데이터를 기반으로 상품을 추천한 뒤 구매가 이뤄지면 판매업체로부터 중개수수료를 받는 모델이다. 혹은 고객 동의하에 데이터를 외부 업체가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도록 가공해 판매할 수도 있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PG사를 직접 보유하고 있으면 결제금액의 2~4% 정도 되는 대행수수료를 아낄 수 있을 뿐 아니라 간편결제 서비스를 개발해 다른 회사에 팔 수도 있고 신사업으로 활용할 여지가 무궁무진하다"며 "카카오가 카카오페이를 분사해 상장까지 성공 시켰듯 컬리도 이커머스와 연계해 신규 수익원을 확보하려는 목적인 것 같다"고 전했다.
컬리는 올해 이커머스 1호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이달 중 한국거래소에 예비심사청구서를 제출한 뒤 상반기 내 IPO를 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난달 홍콩계 사모펀드 앵커에쿼티파트너스에서 2500억원 규모의 프리IPO(상장 전 지분 투자)를 받으면서 기업가치 4조원을 인정 받았다.
매출은 지난해 2조원에 육박해 전년 대비 2배 성장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2020년(1162억원 적자)에 이어 작년에도 적자를 냈다.
전문가들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후 이커머스 기업은 거래액 증가율로만 평가 하는 경향이 강했지만 차츰 수익성을 증명해야 하는 시기가 도래할 것이라고 본다.
한태일 한국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그동안 시장점유율(MS)만 확보하면 적자가 나도 괜찮다는 분위기였지만 이제는 슬슬 흑자 전환을 언제 할 수 있을 것인지를 이야기할 시기가 됐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