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은 소비자들에게 여전히 어려운 술이다. 맛과 가격대가 천차만별이고 마셔보기 전까지 내 취향에 맞을지 알 수 없다. 가성비 와인으로 입문한 소비자들이 중·고가 와인을 추천 받아 샀다가 실패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롯데마트의 와인 전담 조직 프로젝트W팀이 올해 초 와인 애호가 200명을 대상으로 한 심층 인터뷰에서도 "대형마트에서 와인을 가장 많이 사지만, 와인에 대한 정보가 미흡하고 맛을 연상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다.

23일 서울 송파구에 문 연 제타플렉스 1층 와인 전문매장 '보틀벙커'에는 와인을 조금씩 마셔볼 수 있는 테이스팅 랩이 설치 됐다. 전용 팔찌에 돈을 미리 충전하면 80여종의 와인 중에서 원하는 것을 50ml씩 시음할 수 있다. 50ml는 종이컵 절반 정도 되는 양이다. 한잔 가격은 1000~8000원이고 시음 가능한 와인은 1만원대부터 30만원대까지 다양하다. 프로젝트W팀이 꼽은 제철 와인을 시음할 수 있으며 트렌드에 맞춰 계속 조금씩 교체된다.

지난 5월 프로젝트W팀 리더로 롯데마트에 입사해 보틀벙커를 총괄한 강혜원 상무는 "여전히 와인을 어려워하는 고객들이 많다"며 "보틀벙커가 그 문턱을 낮추고, 와인 애호가들도 만족할 만한 장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했다. 테이스팅 랩을 둘러보던 한 60대 주부는 "10만원이 넘는 와인은 시음도 안 해보고 덜컥 사기 어렵다"며 "괜찮은 아이디어 인 것 같다"고 말했다.

보틀벙커는 롯데마트의 야심작 제타플렉스의 핵심이다. 롯데마트는 기존 잠실점을 대대적으로 재단장(리뉴얼)하면서 점포명을 제타플렉스로 바꿨다. 10의 21제곱을 뜻하는 제타(ZETTA)와 결합된 공간을 뜻하는 플렉스(PLEX)의 합성어다. 이곳은 전체 영업면적이 1만4214㎡(4300평)로 롯데마트 매장 중 가장 크다. 온라인 업체가 판매할 수 없는 와인이나, 소비자들이 직접 보고 사기를 원하는 신선식품, 리빙, 반려동물 용품에 특화한 대표 매장으로 키운다는 포부다.

서울 송파구 잠실 제타플렉스 1층 보틀벙커 내부 모습. / 이현승 기자

제타플렉스에 들어서자 마자 보틀벙커 매장이 가장 먼저 보였다. 대형마트가 와인 전문매장을 입구에 바로 배치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매장 규모도 400평으로 1층 전체 면적의 70%에 달한다. 로마네꽁띠부터 가성비 와인까지 4000여종을 판다. 이곳에서 가장 비싼 와인은 2014년산 도멘 드 라(DRC) 로마네꽁띠다. 1병 가격이 7000만원으로 다른 와인 5병과 함께 구성한 세트는 8900만원에 판매 중이다.

이승우 보틀벙커 점장이 매장 최고가 와인인 2014년산 도멘 드 라(DRC) 로마네꽁띠를 들어보이고 있다. 한병 가격은 7000만원대다./ 이현승 기자

생산국가별, 종류별(레드·화이트·샴페인·스파클링 등)로 와인이 진열돼 있고 특정 상황에 맞는 와인을 추천하는 코너도 곳곳에 마련돼 있다. 예를 들어 '배달 음식과 함께 먹기 좋은 와인', '제철음식에 제격인 와인' 등을 추천해준다.

와인의 맛이나 어울리는 음식이 궁금하다면 가격표에 붙은 QR코드를 찍어보면 된다. 스마트폰을 갖다대면 데이터 기반 와인 추천 스타트업 와인그래프가 제공하는 정보 페이지로 연결된다. 롯데마트는 향후 보틀벙커 전용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선보일 예정이다. 스마트폰 QR코드 이용이 불편하다면, 현장에 상주하는 이승우 점장에게 직접 문의할 수 있다. 이 점장은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출신으로 와인 소믈리에 자격증(WSET)을 보유하고 있다.

보틀벙커의 콘셉트는 '와인의 모든 것'이다. 와인을 모르는 사람도 일단 이 매장에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와인과 관련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프로젝트W팀 직원들이 직접 작성한 와인 산지별 특징이나 추천 이유를 곳곳에서 읽어볼 수 있다. 와인 뿐 아니라 와인과 어울리는 치즈, 햄 등 안주류와 와인잔 등 관련 액세서리도 판다. 와인을 주제로 쓰여진 책도 비치돼 있다. 매장 한켠에는 50만원 이상 고가 와인을 보관해두는 코너와 위스키 특화 코너가 마련돼 있다.

보틀벙커 한켠에 마련된 와인 페어링 코너. 곁들이기 좋은 음식을 진열해 놨다. / 이현승 기자

확 바뀐 지하 1층 식품 전문매장에는 평일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몰렸다. 소비자의 요구에 맞춰 제품을 카테고리별로 진열하는 게 아니라 주제별로 배치했다. 일례로 과일은 맛별로 나눴다. 스위트(단맛) 코너에는 바나나, 메론, 수박을 시트러스(신맛) 코너에는 오렌지, 파인애플, 토마토 등을 놓는 식이다. 과일 당도 뿐 아니라 산도, 수분, 경도도 표시했다. 찾는 사람이 많은 샐러드와 밀키트, 치즈 전용 코너를 대폭 확대했고 축산 매장에는 양고기 전문 코너를 선보였다.

제타플렉스 지하 1층 과일 코너. / 롯데쇼핑 제공

상품기획자(MD)의 손길이 들어간 제품 설명도 새로웠다. 토마토 미트볼 리조또를 판매하는 곳에는 '함께 곁들여 먹으면 좋은 와인'을 추천하는 설명글이 붙어 있었다. 샐러드 진열대에는 롯데그룹 통합 온라인몰 롯데온 고객이 "양도 많고 푸짐하고 넉넉해요"라고 쓴 후기가 붙어있었다. 기존에 마트에서 팔지 않던 타조알이나 이베리토스, 델리시우스 등 프리미엄 통조림 브랜드 제품들도 새롭게 선보였다.

이날 제타플렉스를 방문한 강성현 롯데쇼핑 마트사업부 대표는 향후 기존 점포 10여개를 제타플렉스로 개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역대 가장 공격적인 목표를 잡았다"며 "다만 매출을 올리기 위해 밀어팔고 할인하는 싸구려 점포로는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1970년생인 강 대표는 글로벌 컨설팅 기업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출신으로 2009년 롯데그룹에 입사했다. 마트 체질 개선을 이끈 성과를 인정 받아 지난달 인사에서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