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전자상거래 시장 4위 업체인 11번가가 이베이코리아 인수전 실무를 담당했던 투자 전문가를 이사회에 새로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11번가 모회사였던 SK텔레콤(017670)이 지난 11월 투자회사 SK스퀘어(402340)를 분할 출범한 데 따른 인사 조치로 11번가가 국내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본격적인 세 불리기에 나섰다는 평가다. 11번가는 늦어도 2023년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8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11번가는 최근 맥쿼리·도이치뱅크 등 주요 투자은행(IB)에서 경력을 쌓은 송재승 SK스퀘어 최고투자책임자(CIO) 1 MD를 이사회 내 기타비상무이사에 올렸다. 기타비상무이사는 상시적 업무에는 참여하지 않지만, 주요 사업 추진을 결정한다. 기존 기타비상무이사였던 유영상 SK텔레콤 이통통신(MNO)사업대표는 SK텔레콤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11번가 로고. / 11번가 제공

11번가가 송 이사 선임으로 본격적인 투자 행보에 나설 것이란 분석이다. 송 이사는 지난 8월 말 11번가가 아마존과 선보인 해외 직구 서비스 제휴를 직접 주도한 인물로 꼽힌다. 특히 그는 IB 경력을 바탕으로 별도의 글로벌 IB 선임 없이 아마존과 직접 논의를 시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 인맥을 활용해 아마존 내 고위 임원과 접촉해 거래 발굴부터 마무리까지 담당했다.

송재승 SK스퀘어 최고투자책임자(CIO) 1 MD

송 이사는 지난 3월 11번가가 국내 이커머스 시장 경쟁력 강화를 위해 추진한 이베이코리아 인수전도 주도했다. 11번가는 신세계그룹 전자상거래 기업 SSG닷컴에 밀려 기회를 놓쳤지만, 파주 물류센터 확보 등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송 이사는 이른바 인수합병(M&A) 직거래 문을 연 사람”이라며 “11번가가 투자 경쟁에 돌입한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내 전자상거래 시장은 절대 강자가 없는 춘추전국시대로 누가 더 좋은 투자를 하느냐가 향후 경쟁력을 판가름할 수 있는 상황이다. 거래액 기준 점유율 1·2위인 네이버쇼핑(17%)과 쿠팡(13%)도 10%대 점유율에 그친다. SSG닷컴이 3조4000억원이란 거금을 이베이코리아에 쏟은 것도 12%인 이베이코리아 시장 점유율을 바탕으로 주도권을 챙기기 위한 것이다.

11번가는 지난 8월 31일 아마존 미국 상품을 11번가에서 구매할 수 있는 '아마존 글로벌 스토어'를 선보였다. / 11번가 제공

업계에선 시장 점유율 30%를 누가 갖느냐로 국내 전자상거래 시장이 재편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이 좋은 예다. 아마존은 오랜 기간 적자를 면치 못했지만 2015년(점유율 39.8%) 이후 수익을 내고 있다. 지난해는 3860억 달러(약 438조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여기에 사업 영역을 콘텐츠, 제약 등으로 넓히며 시장 장악력을 더욱 키우고 있다.

11번가의 전자상거래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와 비슷한 6% 수준이다. 올해 들어 3분기까지 누적 매출액은 3918억원으로 전년 동기(3933억원) 대비 0.5% 감소했고, 순이익은 마이너스(-) 390억원으로 돌아섰다. 물류센터 등 투자를 지속하며 지난 3분기에만 전년 동기 대비 48% 넘게 매출을 늘린 쿠팡과 대조된다. 같은 기간 SSG닷컴 매출도 15% 가까이 늘었다.

송 이사는 당장 국내 1세대 이커머스 기업들과 인수합병으로 반전의 기회를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티몬, 위메프, 인터파크 등 2010년대 초반 출발한 이들 기업은 이미 한차례 출혈경쟁을 치르며 성숙기에 접어든 만큼 대규모 자금을 마련하거나 적자를 감수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인터파크는 지난 7월 적자 끝에 매물로 나왔고, 숙박 플랫폼 야놀자에 인수됐다.

송 이사가 윤풍영 SK스퀘어 CIO와 함께 11번가 기업 가치 제고를 이끌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윤 CIO는 SK하이닉스(000660) 인수와 11번가 분할 펀딩 및 웨이브 출범을 이끈 인물이다. 지난해 2월 사임했다가 1개월여 만인 지난 3월 다시 11번가 기타비상무이사에 이름을 올렸다. 근거리 정보기술(IT) 플랫폼인 바로고 투자에 윤 이사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11번가는 2023년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매출 등 사업 규모를 키우는 모양새다. 직매입상품을 늘리는 등 외형 확장에 주력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사업 확장에 나선 11번가로 송 이사가 합류하면서 11번가에 신규 투자 물색 드림팀이 꾸려졌다”고 말했다. 한편 11번가 측은 “SK텔레콤-SK스퀘어 분할에 따른 인사로 투자 확대 등 계획은 아직 정해진 바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