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1979년 롯데쇼핑(023530) 출범 이후 처음으로 유통 사령탑에 외부 인사를 영입하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롯데백화점 대표에 신세계(004170) 출신을, 롯데컬처웍스 대표에 CGV 출신을 앉히고 호텔롯데 대표엔 호텔 근무 경력이 없는 인사를 외부에서 데려오는 파격 인사를 했다. 이들 외부 인사가 창사 이래 최대 위기라고 평가 받는 롯데 유통 부문의 구원투수가 될지 주목된다.
25일 롯데그룹은 38개 계열사의 이사회를 열고 조직개편 및 2022년 정기 임원인사를 했다고 밝혔다. 지난 2017년 3월 도입한 ▲유통 ▲화학 ▲식품 ▲호텔·서비스 4개 비즈니스 유닛(BU) 체제를 ▲식품 ▲쇼핑 ▲호텔 ▲화학 4개 헤드쿼터(HQ) 체제로 바꿨다.
BU 체제는 계열사 간 시너지를 내기 위해 도입했지만 옥상옥 구조를 만들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롯데정보통신, 롯데글로벌로지스 등 IT·데이터·물류회사의 경우 4개 BU 가운데 포함시킬 만한 산업군이 없었는데 인위적으로 유통, 호텔·서비스에 묶이면서 시너지 창출이 어려웠다. 이 계열사들은 HQ 체제 하에선 별도 관리한다는 방침이다.
이번 인사에선 신 회장이 "변화와 혁신을 주도할 초(超)핵심 인재를 확보하라"고 주문하면서 외부 인재를 대거 영입한 것이 특징이다. 롯데그룹 유통 부문을 총괄하는 롯데쇼핑 총괄대표에 사상 처음으로 롯데백화점 출신이 아닌 외부 인사를 내정했다. 지난 2019년 유통 BU장에 취임한 뒤 부실 점포 구조조정을 주도했던 강희태 부회장은 물러난다.
1963년생인 김상현 신임 유통군 총괄대표는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교에서 정치학과 경제학(와튼스쿨)을 전공한 뒤 1986년 P&G에 입사해 미국, 한국, 일본, 싱가포르 등 세계 각국에서 근무했다. 2016~2018년 홈플러스 대표(부회장)로 재직한 뒤 2018년부터 홍콩 소매유통 회사 DFI 리테일그룹의 동남아시아 유통 총괄대표, H&B 총괄대표를 맡았다.
김 총괄대표는 유통 명가 롯데의 위상을 재건해야 하는 무거운 과제를 안게 됐다. 국내 매출 기준 1위 유통기업인 롯데는 2015년 경영권 분쟁을 시작으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되고 2017년 중국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로 인한 한중 관계 악화, 작년 코로나19 확산 사태가 겹치며 실적이 악화됐다.
올해 3분기까지 누적 매출은 11조7892억원으로 전년 대비 3.6% 감소했고 영업이익도 983억원으로 40.3% 줄었다. 특히 롯데마트 매출이 3분기 누적으로 7.8% 감소헀는데, 같은 기간 경쟁사인 이마트(139480)는 6.2% 증가했다. 소비 패턴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지만 작년 출범한 통합 온라인몰 롯데온은 네이버, 쿠팡의 약진 속에서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흐릿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롯데그룹은 김 총괄대표에 대해 "글로벌 유통 전문가로 국내외에서 쌓은 전문성과 이커머스 경험을 바탕으로 롯데의 유통사업에 혁신과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롯데백화점 사업부 대표에는 황범석 대표가 퇴임하고 정준호 롯데GFR 대표가 내정됐다. 1965년생인 정 대표 내정자는 성균관대를 졸업한 뒤 1987년 삼성그룹 공채로 신세계백화점에 입사해 신세계인터내셔날 해외패션본부 본부장, 조선호텔 면세사업부 사업 담당, 신세계 이마트 부츠 사업 담당을 거쳐 2019년부터 롯데GFR 대표를 맡고 있다. 손영식 신세계백화점 대표와 입사 동기다.
기존 호텔 부문을 이끌었던 이봉철 사장이 물러나고 안세진 전 놀부 대표가 호텔군 총괄대표로 선임됐다. 1969년생인 안 총괄대표는 글로벌 컨설팅 회사 커니에 재직한 뒤 LG화학, LG상사, 알릭스파트너스, LS그룹을 거쳐 2018년부터 놀부 대표이사를 지냈다. 호텔에 몸담은 적이 없다는 점에서 파격적이다.
롯데그룹은 안 총괄대표가 신사업 전문가로, 향후 호텔 브랜드 강화와 기업가치 개선을 주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총괄대표는 호텔롯데 상장이라는 무거운 과제도 맡게 된다. 롯데그룹은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2016년부터 호텔롯데 상장을 추진했으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무기한 연기했다. 호텔롯데는 일본 롯데홀딩스 등 일본 자본이 지분 대부분을 보유하고 있는데 롯데그룹은 상장을 통해 일본 측 지분을 희석시킨다는 계획이다.
롯데컬처웍스 기원규 대표가 물러나고, CGV 출신 최병환 대표가 선임됐다. 롯데멤버스에는 신한DS 디지털본부장 출신 정봉화 상무가 DT전략부문장으로 임명됐다.
신 회장의 '신상필벌' 원칙에 따라 좋은 실적을 낸 계열사 대표들은 승진했다. 롯데그룹에 따르면 승진 임원과 신임 임원 수가 전년 대비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이동우 롯데지주 사장은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이 부회장은 1986년 롯데백화점으로 입사해 2012~2014년 롯데월드 대표이사를, 2015년~2020년 롯데하이마트 대표이사를 지낸 뒤 작년부터 롯데지주 공동 대표이사로 비즈니스 전략과 재무를 맡고 있다. 최근에는 바이오, 헬스케어 등 신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김교현 화학 BU장은 화학군 총괄대표를 맡으면서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롯데케미칼 등 화학 계열사 실적이 코로나19 사태 이전으로 회복한 성과를 인정 받았다. 이영구 식품 BU장은 식품군 총괄대표를 맡으면서 롯데제과 대표이사를 겸직한다.
고정욱 롯데캐피탈 대표이사는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롯데지주 재무혁신실장으로 이동한다. 추광식 롯데지주 재무혁신실장은 롯데캐피탈 대표이사로 이동한다. 김용석 롯데이네이오스화학 대표이사는 부사장으로 승진한 후 롯데정밀화학 대표이사로 내정됐다. 정승원 롯데캐미칼 전략본부장은 전무 승진 후 롯데이네오스화학 후임 대표이사로 보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