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서울 한 백화점의 나이키 매장. 쌀쌀해진 날씨에 맞는 외투를 찾아봤지만 매장엔 경량패딩 두 벌과 얇은 바람막이 점퍼 몇 벌이 전부였다. 더 두꺼운 외투가 없냐고 묻자 점원은 "코로나 영향으로 생산이 지연돼 겨울 아우터가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베트남 생산공장의 장기 봉쇄로 인한 패션업계의 공급난이 현실화 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으로 7월 중순부터 9월 말까지 현지 공장의 가동률이 30% 수준으로 줄면서 제품 생산이 지연됐기 때문이다.
베트남에 112개의 공장을 두고 신발과 의류 제품의 3분의 1을 생산하는 세계 최대 스포츠 의류·용품 브랜드 나이키는 10주간의 생산 중단으로 1억 켤레의 신발을 만들지 못했다. 회사 측은 이로 인해 향후 8개월간 제품 공급이 수요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국내 의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들도 베트남발(發) 생산 대란을 피하지 못했다. 베트남 생산 비중이 66%인 화승엔터프라이즈(241590)는 베트남 내에서도 셧다운이 길었던 호찌민 인근에 주력 공장이 위치해 피해가 컸다. 아디다스를 고객사로 둔 이 회사는 3분기 수주분 생산이 차질을 빚은 데다, 전용 하역장의 통행이 막히며 2분기 생산분 선적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증권가에선 이 회사의 올 3분기 매출이 2018년 1분기 이래 최초로 2000억원을 밑돌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베트남 생산 비중이 58%인 한세실업(105630)도 영업이익 감소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갭, 월마트 등을 고객으로 둔 이 회사는 베트남 법인 3곳이 10주간 봉쇄되자 베트남 중북부와 중남미, 인도네시아 등으로 생산처를 옮겨 대응했다. 하지만 베트남 정부의 최소 공정 허가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노무비를 늘린 상황에서 선박 운임까지 올라 원가가 증가했다.
이달 1일부로 베트남 공장의 봉쇄 조치는 풀렸지만, 생산 라인이 정상화되는 시점은 12월쯤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증권가는 이들 업체의 감익 기조가 4분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내수 판매를 주로 하는 패션업체들도 가을옷을 제때 출시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연 매출의 60~70%를 가을·겨울에 버는 패션계는 통상 8월부터 가을·겨울 옷을 판매한다. 5월부터 겨울용 다운점퍼를 판매하는 곳도 있다. 하지만 올해는 베트남에 생산기지를 둔 의류 업체들이 현지 공장의 봉쇄로 예년보다 한 달가량 늦게 가을 신상품을 출시하면서 이런 분위기가 수그러들었다. 이랜드 관계자는 "셧다운 영향이 없는 하노이와 인도, 국내 등으로 생산처를 분산 시켜 공급난을 해결했다"며 "현재는 수급이 안정화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생산시설을 다각화할 여력이 없는 중소 의류업체들은 여전히 공급난에 시달리고 있다. 발주량이 적어 새로운 생산처를 찾지 못하거나, 인건비가 높은 국내 생산을 감당할 수 없어 현지 생산 라인의 정상화를 기다리는 업체들이다. 한 남성복 업체 관계자는 "지금 팔아야 할 경량패딩의 입고를 기다리는 곳도 있다"며 "보통은 겨울옷을 미리 생산해 창고에 보관해 두고 날씨에 맞춰 매장에 옷을 출고하는데, 올해는 제품이 들어오는 대로 매장을 채우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생산처 이전과 해상 화물운임 상승, 원단 가격 인상 등으로 인해 옷값이 인상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나이키의 경우 지난달 실적 발표에서 올해 하반기 중 가격을 인상하겠다고 밝혔다.